가을숲 한복판에 부녀
매서웠던 여름의 여파로
지지부진하게 물드는 가을빛
그러나 신이 선물한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다가와
나무들을 자신의 잎사귀를 떨궈냅니다.
주중에 영하에 가까운 기온이 예보된 바로 전 주말
쨍하고 포근한 한낮이 얼마 안 남았음을 느끼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빵 몇 개와 남은 과자 몇 봉지
물 두병을 챙겨서 찾은 월드컵 공원
사람들의 생각이 매한가지였는지
입구부터 붐비더니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들
가을 햇볕을 한껏 느끼기 위해 텐트는 두고
의자와 매트만 챙깁니다.
부는 바람에 겨우 붙어 있던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숲 한복판
낙엽을 한 움큼 집어 머리 위로 던지는 아가가 바로 앞에 있는 명당자리를 잡고 챙겨간 과자에 매점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한껏 가을을 누려봅니다.
함께 간 가족들은
따릉이 두대를 번갈아 가며 타다 이내 배드민턴으로 종목을 갈아타더니
이젠 캐치볼에 빠졌습니다.
아빠가 던지는 강속구에 손이 아프지만
머리 위로 날아가는 공을 잡기 위해 높이 뛰어야 하지만
서걱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누리는 시간이
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보석과 같습니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녀의 캐치볼 장면을 그려봅니다.
주황, 노랑, 갈색한 가을 풍경에 어울리는
세상을 알아가는 작은 소녀와 세상을 알만큼 아는 남자와의 시간
까르르까르르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타고
단발머리 작은 소녀의 웃음소리가
스케치북 안에 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