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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Nov 30. 2024

말의 무게

욕설과 패드립에 빠진 아이들


“나민경 선생님, 잠깐. 교장실로 내려오세요.”


공강시간, 내선 전화로 교장 선생님에게 호출이 왔습니다.

무슨 일로 부르시는 건지 짐작이 갑니다.


“선생님~ 중학교에 와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을 지도하려니 많이 힘드시죠.”


아주 익숙하다는 듯 교장선생님은 지수와 있었던 일에 대해 차분히 물어보셨습니다. 민경샘은 그날의 지도 과정을 자세히 말하고 그동안 학생을 관찰하고 지도했던 여러 가지 일들까지 털어놓았습니다.


"지수 어머님은 담임 선생님이 편애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사실관계만 살펴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지도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수들은 직접 보시지 못했으니 오해하실 수 있죠. 저랑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며 서운한 마음을 들어드렸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지도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니 앞으로도 잘 지도해 주세요."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민경샘에게 교장선생님은 묻습니다.


"아~ 나선생님 그날 종례 안 하고 퇴근하셨어요? 지수 어머님이 지수 일 때문에 화나서 담임이 바로 퇴근했다던데... 제 기억으론 며칠 전에 저한테 말씀하시고 연가 쓰신 것 같아서요."


그날은 매년 받는 건강검진이 있어 3시에 조퇴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습니다.





교무실로 오는 길에 복도에서 아이들의 대화가 들립니다.

"강시은 같은 게..."

"강시은처럼 생겼으면서..."

"강시은이잖아~"


민경샘 반 1번 강시은의 이름이 복도 여기저기에서 들립니다.

다른 반 아이들부터 친할 것 같지 않은 남학생들까지... 너도 나도 같은 이름을 외칩니다.

말하는 뉘앙스는 호칭이라기보다는 대명사 같은 느낌이 듭니다.


...


교무실로 돌아오자 마침 수업 종이 울렸습니다.

민경샘은 부랴부랴 교과서와 유인물 꾸러미 그리고 마이크 가방을 챙깁니다.

복도로 나가니 5반 앞에서 두 학생이 싸우고 있습니다.


"쌤~~ 얘가 저보고 장애인이래요."

"너 말귀 못 알아듣고 분노 조절 안되니까 장애지~"

"개새끼야~ 내가 왜 장애야?"

"너네 아빠도 장애인이잖아~ 그러니까 너도 병신새끼겠지~"


아.... 도돌이표 같은 싸움입니다.

이번 시간 5반 수업도 제대로 진행하긴 그른 거 같습니다.


싸움을 말리느라 어떻게 수업이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교무실로 돌아오니 담당반 자연이가 울면서 민경샘을 찾았습니다.


"선생님... 승찬이가 저 엄마 없다고 다른 애들한테 계속 말하고 다녀요...

저희 엄마가 바람나서 집 나갔다구요... 아닌데..."

자연이는 유치원 때 엄마아빠가 이혼하시고 아빠와 단둘이 사는 학생이었습니다.




다음 쉬는 시간에 승찬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같이 있는 내내 짝다리에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민경샘을 쏘아보고 있었습니다. 승찬이는 다른 반 친구에게서 들은 걸 말했을 뿐이라며 끝까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휴우...."

민경샘은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근거 없는 소문을 떠벌리고 다니면 안 된다는 것...

타인의 아픔을 사실이라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

가정사를 떠벌리고 다닌 너로 인해 자연이의 속상한 마음...

오늘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너무나 당연한 자세와 행동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새치의 혀가 화살이 되어 사람의 마음에 박힌다는 것을 제발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돌아오니 1학년부장 선생님이 잔뜩 화가 나있었습니다.

앞에는 강시은이 울며 앉아있습니다.

시은이는 평소 조용하고 수업도 잘 듣는 착한 학생입니다. 늘 기운이 없고 말도 별로 없지만 교무실에 불려 올 만한 학생은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들어보니 시은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집단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따돌림이 같은 중학교로 온 동창들을 통해 전교로 퍼졌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따돌림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내색을 하지는 않으면서 나쁜 의미... 싫다, 재수 없다, 못생겼다, 운이 없다 등을 대신해서 시은이의 이름을 사용하는 교묘한 따돌림입니다.


그날 이후 시은이를 부를 때 빼고는 '강시은'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출근한 순간부터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쌍욕부터 저주하는 말, 놀리는 말, 가족에 대한 험담, 외모에 대한 비하...

수백 가지의 험한 말들이 서라운드 스피커를 켠 것처럼 하루 종일 민경샘의 귓가를 맵돕니다.

생각없는 말들이 돌덩이가 되서 누군가의 심장을 깨트리는 소리도 민경샘의 마음에 메아리칩니다







희망과 성장을 노래해야 할 곳이 악의와 저주의 말들이 맴도는 공간인거 같아 순간순간 마음이 무너집니다.

장난이란 이름으로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아프게 상대방을 짓누르고 영혼을 파괴하는지

또한 그 말들이 자신에게 어떤 무서운 업보로 다가올지 모른 채 히히덕 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민경샘의 영혼도 서서히 피폐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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