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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ylvia Dec 07. 2024

이걸 왜 못해?

아동기에서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


"선생님... 저..."


1교시 시작하기 전부터 교무실 앞에 쭈뼛쭈뼛 서있는 지율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로 왔는지 민경샘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 지율아~ 무슨 일인데? 크게 말해보세요."

"저... 여기가... 아픈데..."


허리를 만지며 웅얼거리는 지율이에게 다시 물어봅니다.

"지율아~ 아픈 데가 있으면 정확하게 말하라고 했지~ 그리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야지 선생님이 들어줄 수 있어. 보건실을 가고 싶은 건지 조퇴를 하고 싶은 건지~"


지율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프다며 찾아오는 민경샘반 학생입니다.

민경샘이 보기에는 조퇴를 할 만큼은 아닌데 늘 찾아와 집에 가겠다고 합니다.

학생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에 그럴 때마다 바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합니다.

"아.... 이번엔 어디가 아프데요? 지율이 좀 바꿔주시겠어요?"


잠시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지율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좀 참으라고 하신 거 같습니다.



점심시간까지는 참아보자고 달래고 교실로 돌려보냈습니다.

보내놓고도 민경샘은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혹여나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 교실을 지나가면서 지율이를 찾았습니다.

지율이는 멀쩡한 얼굴로 교실 뒤편에서 친구들과 과자를 먹으며 큰 소리로 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 지율이에게 더 참으라고 할 권한이 민경샘에게는 없습니다.

어머님과 다시 통화하고 조퇴를 시킵니다.




지율이 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빈번하게 조퇴나 지각을 합니다.

쓰러질 정도로 아픈 게 아니라면 감히 중간에 집에 가는 걸 생각해 본 적 없는 옛날 사람인 민경샘에게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만 아파도

조금만 다쳐도

혹은 친구와 싸워서 조금만 마음이 불편해도


아이들은 참지 않습니다.

아니 참는 법을 모릅니다.





지율이를 보내고 5교시 수업을 바치고 교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자리에 앉아 나이스를 켜고 지율이의 조퇴를 기록합니다.

이번달 출석 사항을 보니 역시나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습니다.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무단 지각이 40회가 넘는 학생도 있습니다.

혼내도 보고 벌청소도 시키고 반성문도 쓰게 하고 방과 후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등교를 하지 않아 전화해 보면 전화기를 꺼져 있고 부모님의 전화는 울리기만 할 뿐 받지를 않습니다.

전화도 문자도... 어떤 연락도 없이 안온날도 10번 가까이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나... 민경샘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민경샘~ 샘 반 진서 문 앞에 계속 서있는데... 선생님 보러 온 거 같은데..."


옆자리 사회 선생님 말에 문쪽을 보니 진서가 한쪽 눈만 빼꼼히 내밀고 서있습니다.


"진서야~ 왜? 무슨 일이야? 들어오세요~"

"선생님... 저 시간 있으세요? 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이번에도 무슨 일인지 예상이 됩니다.


"선생님... 애들이... 절 싫어해서 너무 힘들어요... "

앉자마자 진서는 눈물을 터트립니다. 오전에 체육시간에 피구를 했는데 반 아이들이 진서가 공을 잡을 때마다 뒤에서 째려보고 비아냥거렸다는 겁니다. 원래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 체육 시간마다 더 위축되는 진서는 아이들의 비웃음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민경샘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괴로워하는 진서에게 가장 적합한 말을 찾으려 단어들을 조합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욕설과 함께 남자아이 두 명과 7반 담임 선생님이 한꺼번에 교무실로 쏟아지듯 들어왔습니다.


"이 개새끼야~! 죽여버린다!!"

"정경후! 이거 놓고 말해~ 악~~~"


등교 첫날 담임을 아동학대 신고했던 바로 그 남학생이 7반 규철을 죽일 듯이 달려들고 있었고 그 중간에 7반 여자 담임 선생님이 끼어서 온몸으로 막고 있었습니다.


교무실 안에 있던 선생님들은 깜짝 놀라 함께 경후를 저지했고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진 틈을 타 7반 담임이 경후를 밀치고 규철이를 안으며 교무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문을 닫고 잠근 버튼을 눌렀습니다. 문밖에서는 분이 풀리지 않은 경후가 쌍욕을 하며 문을 발로 차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민경샘은 내선으로 교감 선생님과 학교 보완관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고

7반 선생님과 규철이를 살폈습니다.

7반 선생님 팔은 긇혀 있었고 규철이의 옷은 찢기고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잠시 후

연락을 받고 온 선생님들이 경후를 데리고 갔는지 밖이 조용했습니다.

울면서 상담 중이던 진서는 갑작스러운 난리에 어느새 눈물은 쏙 들어가고 멋쩍은 얼굴로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정신없는 오후가 지나가고 청소 시간이 되었습니다.

빗자루로 먼지를 사방에 날리고 있는 학생에게 빗질을 알려주고

대걸레로 바닥에 물만 바르고 있는 학생에게는 걸레질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청소할 때마다 유난히 더러운 자리가 있습니다.

바닥엔 쓰레기가... 책상 위는 책이 가득... 대부분의 책들은 찢겨 있거나 너덜너덜...

가방을 바닥에... 운동화는 내팽겨져 있고요.

몇 개월 동안 수없이 잔소리를 했지만 고쳐지지 않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있는 날이라 담당 아이들에게 종량제 봉투를 주며 쓰레기를 담게 했습니다.

쓰레기를 담는 내내 냄새가 난다 손에 쓰레기가 묻었다... 난리를 치던 아이들이

봉투가 다 차자 가만히 서있습니다.


"얘들아~ 뭐 해? 묶어서 버려야지"

"어떻게 묶어요?"

"봉투 묶어본 적 없어?"

"네..."


양쪽을 잡고 돌려서 묶는 법을 보여주고 해 보라고 하니 한번 돌려 묶고는 가만히 서 있습니다.


"한번 더 묶어야 안 풀리지!"

"어떻게요?"

"....."



만으로 13살


더 이상 아동이 아닌 이 나이에 알고 있어야 할 당연한 것들을

배우지 못하고 몸만 큰 아이들


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시간이 갈수록 민경샘의 맘은 더 어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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