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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n 19. 2022

퇴사자의 고백일지

무겁지만 찍을 만해

퇴사하고 연락하지 마.


퇴사를 앞두고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내게 건넨 말은 의외였다. 연락하고 지내자가 아니었다. 여러 말이 오고 가,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도 진짜가 되는 . 관찰이 주업이니 으레 짐작하고 판단 내리기도 쉬운 곳. 긴 호흡보다 짧은 호흡이 익숙한 곳. 이곳에서 몇 년 보낸 나 역시도 그 말 뜻을 몰랐던 건 아니다. 그래도 슬펐다. 이직과 퇴사가 현실이라는 걸 깨달아서.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를 

나왔다.


항상 지나가던 길이 달라 보였다. 이 차를 타고 이 도로를 지나가는 일은 이제 더 없겠구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 회사 소속은 아니겠지. 늘 운전해 주신 이 형님과 볼 일이 없겠다. 이 카메라를 더 이상 들고 탈 일도 없겠지. 빠르게 지나가는 고가도로 사이 속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윽고 오열했다.  뒷자리에 앉아 궁상맞게 홀로 울음을 삼켰다. 꺽꺽거리며 우는 내게 형님은 국회에 도착하고 나서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셨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첫인상이 다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두려고 했던 적도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연기했던 적도 있다. 피하려고도 했었다. 그 사람들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미친 X는 왜 저럴까?'라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없듯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에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태도가 불량해서, 일을 못해서 등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갖다 붙이면 될 일이다. 태도야 그냥 그 사람이 그 시간에 말 못 할 힘든 일을 겪고 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일이야 긴장해서, 혹은 이해하지 못해서 실수했을 수도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노력하며 살려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겠는가.


다만, 우리는 성인이다. 각자의 삶이 있는 성인.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타인의 사정과 실수에 내 개인 시간을 부어서 이해해 줄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더 깊게 보면, 누군가를 알아볼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 일 수도, 혹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일 수도 있다. 미움은 그렇게 바쁨과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친했던 동료들에게 고마웠다. 먼저 선을 넘어줘서. 그 짧은 시간 속에서 계속 선을 넘어줘서. 좋아함의 이유를 계속 찾아봐주려 해서. 사실 인간관계에서 한 번 거절당하면, 다가서기 매우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는 더 두렵다. 그럼에도 내게 다가와 준 사람들에게 고마웠고 미안했다. 나는 비겁했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했지만, 함께의 즐거움을 몰랐던 건 아니다. 그저 먼저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추앙해 주길 바랐지만, 내가 누군가를 추앙할 생각은 없었다.


일하다 힘들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생각날 것이다.


밥 먹다가 울지도 모른다는 선배의 말 끝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래서였는지 퇴사일이 다가올수록 내 자리 근처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밥 한 번 먹여야 되는데 하면서.


헤어지면서 내게 건 저 마법 때문인지, 이따금 선배의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새로운 회사. 새로운 사원증. 새로운 명함. 낯선 선배이자 후배인 내게 신경을 써 주는 새로운 사람들도 생겼다. 그래도 때론 내게 농담을 건네며 장난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종종 사무실 한 켠에서 들린다.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 Jtbc,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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