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앞두고 친하게 지낸사람들이 내게 건넨 말은 의외였다. 연락하고 지내자가 아니었다. 여러 말이 오고 가니,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도 진짜가 되는 곳. 관찰이 주업이니 으레 짐작하고 판단 내리기도 쉬운 곳. 긴 호흡보다 짧은 호흡이 익숙한 곳. 이곳에서 몇 년 보낸 나 역시도 그 말 뜻을 몰랐던 건 아니다.그래도 슬펐다. 이직과 퇴사가 현실이라는 걸 깨달아서.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를
나왔다.
항상 지나가던 길이 달라 보였다. 이 차를 타고 이 도로를 지나가는 일은 이제 더 없겠구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 회사 소속은 아니겠지. 늘 운전해 주신 이 형님과 볼 일이 없겠다. 이 카메라를 더 이상 들고 탈 일도 없겠지. 빠르게 지나가는 고가도로 사이 속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윽고 오열했다. 차 뒷자리에 앉아 궁상맞게 홀로 울음을 삼켰다. 꺽꺽거리며 우는 내게형님은국회에 도착하고 나서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셨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첫인상이 다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두려고 했던 적도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연기했던 적도 있다. 피하려고도 했었다. 그 사람들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미친 X는 왜 저럴까?'라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없듯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에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태도가 불량해서, 일을 못해서 등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갖다 붙이면 될 일이다. 태도야 그냥 그 사람이 그 시간에 말 못 할 힘든 일을 겪고 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일이야 긴장해서, 혹은 이해하지 못해서 실수했을 수도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노력하며 살려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겠는가.
다만, 우리는 성인이다. 각자의 삶이 있는 성인.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타인의 사정과 실수에 내 개인 시간을 부어서 이해해 줄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더 깊게 보면, 누군가를 알아볼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 일 수도, 혹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일 수도 있다. 미움은 그렇게 바쁨과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친했던 동료들에게 고마웠다. 먼저 선을 넘어줘서. 그 짧은 시간 속에서 계속 선을 넘어줘서. 좋아함의 이유를 계속 찾아봐주려 해서. 사실 인간관계에서 한 번 거절당하면, 다가서기 매우 어렵다.나이가 들수록 실패는 더 두렵다. 그럼에도 내게 다가와 준 사람들에게 고마웠고 미안했다. 나는 비겁했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했지만, 함께의 즐거움을 몰랐던 건 아니다. 그저 먼저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추앙해 주길 바랐지만, 내가 누군가를 추앙할 생각은 없었다.
일하다 힘들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생각날 것이다.
밥 먹다가 울지도 모른다는선배의말 끝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래서였는지 퇴사일이 다가올수록 내 자리 근처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밥 한 번 먹여야 되는데 하면서.
헤어지면서 내게 건 저 마법 때문인지, 이따금 선배의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새로운 회사. 새로운 사원증. 새로운 명함. 낯선 선배이자 후배인 내게 신경을 써 주는 새로운 사람들도생겼다. 그래도 때론 내게 농담을 건네며 장난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종종 사무실 한 켠에서 들린다.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