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2. 우월감, 열등감 - 둘인 듯 하나
N포 세대, 헬조선
2010년대 초반에 홀연히 한국사회에 등장한 3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어려워진 취업 환경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사치로 여겨 포기하고, 나 하나 잘 사는 게 유일한 목표라는 가치관을 가진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은 급속한 변이를 거쳐 5포(집, 경력 포기), 7포(희망, 인간관계 포기)를 지나 N포 세대로 수렴했다. 포기할 것을 더 이상 나열하는 것을 포기한 거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헬 조선, “한국은 지옥 같은 나라”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요즘애들 배가 불러서 그래, 일 년 내내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하고, 베트남 전쟁터이든, 중동의 건설현장이든, 돈을 벌기 위해서 어디서 무엇이든 해서 이만큼 살게 된 걸 모르고 뭐가 부족하다고 N포를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
”요즘 애들은 너무 나약해 “라고 규정한다.
이런 반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 중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할아버지 세대 보다, 하루 12시간 시간 이상을 휴일 없이 일했던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풍요로운 청춘 시절을 보내지만, 더 크게 절망하고 있는 90년 대생들이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싶은 N포 세대, 절망의 근원은 뭘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경쟁하는 게 싫어요
작년에 어떤 청춘이 나에게 물었다.
“꼭 경쟁을 해야 되나요? 경쟁하지 않고 살면 안 되나요? 나는 경쟁하는 게 싫어요”
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시에 가지고 있던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경쟁은 숙명이야, 특히 네가 한국사회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상 너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어. 주어진 재화를 서로 많이 차지하여야만 하는 게임 룰에서 경쟁 없이 살 방법은 없어. 가끔 자연인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돼. 쾌적한 보금자리, 맛있는 음식, 자극적인 즐거움 등 그런 걸 포기할 마음과 용기가 있다면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있지”
그런데 그 조언이 정말 맞는 말일까? 두고두고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경쟁이 필연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부딪히다 지치고 힘에 부쳐 좀 벗어나고 싶어 한 질문이다. 현실에 대한 공감과 위로를 듣고 싶은 Help Me! 시그널이다.
우월감과 열등감
너무나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 같은 우월감과 열등감이 사실은 등을 맞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차의 성능을 표현하는 말 중에 “하차감”이라는 말이 있다. 차에서 내릴 때 바라보는 주위의 눈빛에서 결정되는 차의 상품력을 하차감이라고 한다.
호텔 로비에 모닝과 그랜저와 포르셰가 도착하고, 차에서 세 사람이 동시에 내리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랜저의 차주가 느끼는 묘한 감정이 바로 우월감과 열등감이 등을 맞대고 있다는 걸 잘 설명해 준다.
Paxabay 이미지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부자가 되는 것이든, 권력을 갖는 것이든, 명예를 얻는 것이든 결국 그 가치는 지극히 상대적이다. 우리나라의 최고 부자인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의 재산도 빌 게이츠가 가진 재산의 10분의 1도 되지 못하는 수준이다. 권력으로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강대국 앞에서 약소국의 외교적 비굴함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고귀해 보이는 명예라는 가치도 그 상대성은 별로 다르지 않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두 개인 듯 하나라는 사실 인식은 우리가 삶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N포 세대, 절망의 근원이 바로 이 상대적 박탈감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청춘은 함께 살아가는 기성세대가 경험한 한국전쟁 시절보다, 한국경제의 태동기 60~80년대 보다, IMF 시절보다 분명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지만, 공무원 학원을 전전하며 혼밥을 하다 보면 대기업에 보기 좋게 합격해서 신입사원 연수받는 사진을 인스타에 올린 친구가 부럽고, 변변한 월세방 얻을 돈도 없는 나를 남자 친구로 둔 여자 친구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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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감과 열등감의 극복 열쇠 - 자존감
“꼭 경쟁을 해야 되나요? 그 친구가 다시 묻는다면, 경쟁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상대의 자리에 불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놓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구보다 늦은 취직, 누구보다 형편없는 급여, 누구보다 힘들 하루,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지’라는 생각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지? ,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지?,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뭘 얻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비교의 대상에 자기의 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가치를 거스르고 산다는 게 마음으로 두렵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동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와 비교한다고 해서 그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내게 저 사람보다는 조금 좋은 상황이지’라고 생각하는 우월감은 나를 나태하게 만들고, 상대방을 해치는 행위이다. 반대로 ‘나는 왜 이래’ 하고 자책하는 것으로는 주어진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고 점점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지. 그래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치열하게 경쟁하되, 경쟁자의 자리에 어제의 나, 오늘의 나를 두어 보는 건 어떨까? “
‘나는 어제보다 요만큼 내 꿈에 가까워졌구나.’ ‘나는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내일은 요만큼 더 자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