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멈출 수 없다
잉글리쉬 빙글리쉬(English Vinglih) - 배움의 시작점
유럽행 비행기를 탔던 적이 있다. 여행이란 매우 설레는 일이지만, 10시간 가까이 이코노미 좌석에서의 시간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온몸이 뒤틀리고 빨리 지상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지루한 시간을 좀 때워 보려고 고른 영화가 “굿모닝 맨해탄”이었다. 인도의 한 부유한 가정의 평범한 전업주부가 자기 발견을 해 가는 성장 스토리(?)이다. (원제는 잉글리쉬 빙글리쉬인 것은 나중에 알았다)
영화를 통해 인도 사회를 엿볼 수 있다. 서민층은 일상생활에서 힌디어를 쓰고, 상류사회와 비즈니스 세계에는 영어를 쓰는 듀얼 랭귀지 사회이다. 배경은 전업주부 샤시의 가정이다. 잘 나가는 남편은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고, 중산층의 좋은 교육을 받는 두 자녀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하지만, 전통 교육만을 받은 주인공 샤시는 빙글리쉬(우리말로 표현하면 콩글리쉬) 수준의 영어 구사력을 가지고 있다. 샤시는 영어 대화가 원활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춘기 딸과 남편에게 암묵적인 무시를 받느다. 자신을 빼놓고 영어로 대화에 열중하는 부녀와 그 사이에서 샤시가 느끼는 소외감이 그려진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갈등의 징조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미국 맨해튼에 사는 샤시의 조카가 결혼을 하게 되고, 조카의 결혼식을 돕기 위해 맨해튼에 혼자 도착하게 된다. 샤시는 거리를 다니며, 언어의 장벽 앞에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사건을 겪는다. 그 사건을 계기로 지나가는 버스에 붙어있는 단기 영어 마스터 강좌 광고를 본 샤시는 영어 학원에 등록하게 된다. 샤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조카의 결혼식 날 영어로 자신을 소외시켰던 가족들 앞에서 떠듬떠듬이지만 영어로 분명히 말한다. “가정은 언제나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곳이어야 해”
샤시가 영어 배움에 도전을 하지 않았어도. 인도로 돌아간 샤시는 별 어려움 없이 평온한 일상의 삶을 누리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들의 배려 없는 행동에 조금 불편한 마음을 감내하면서 살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샤시는 용기 있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영어가 장벽인 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두려움을 이기고 장벽을 넘기 위한 배움에 도전했다. 배움의 시작점은 무엇인가 한계의 벽을 만났을 때다. 꿈을 꾸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그때가 배움의 시작점이다.
배움의 유익 - 현실감이 생김
배움은 내가 뭘 모르고, 뭘 알고 있는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알려준다. 살면서 나보다 별로 잘난 것도 없고,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은 친구가 뭘 하든 잘되는 경우를 본다. 친구의 잘됨이 나의 기쁨이면 좋겠는데 많은 경우 친구의 성공은 나의 배 아픔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뭔가를 배우다 보면 그 친구가 왜 잘됐는지 알게 된다. 내가 나의 알량한 경험과 근거 없는 직감을 믿고 무식하게 꿈을 향해 돌진을 시도하고 있을 때, 그 친구는 밤새 그 꿈을 공략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전문분야 스터디를 참여하면서 실력을 향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와 그 친구의 차이가 뭔지를 좀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학창 시절, 시험 보기 전날, 같이 신나게 놀고 시험장을 나와서는 둘이 같이 이번 시험 망쳤다고 투덜대던 친구인데 막상 시험 결과를 받아보면 나와는 다른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보통은 내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친구가 좋은 결과를 보여준 데는 두 개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시험 보기 전날 이미 공부를 다 끝내 놓았던지 아니면, 신나게 놀고 집에 가서 밤새 공부를 한 결과다. 인생에서는 어쩌다 한번 우연히 행운이 오기도 하지만, 그 우연이 2번, 3번 반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지속적인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 배움은 바로 내 실패의 이유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세밀하지 않게 봤을 때는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배움을 통해 보면 아, 거기서 차이가 났구나를 비로소 알게 된다.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고 나니까, 왜 어떤 커피점은 텁텁한 맛이 나고 어떤 커피점은 맑고 신선한 맛이 나는지를 알게 됐다. 커피를 주문하면 점원이 커피 내리기 전 포타 필터 청소를 잘하는지를 유심히 보게 됐다. 에스프레소 커피는 짧은 시간 고온, 고압으로 커피 성분을 추출해 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한번 커피 성분을 추출한 찌꺼기가 다시 고온, 고압의 수증기에 노출이 되면 텁텁한 맛이 섞여 나오게 된다. 그래서 같은 원두를 가지고 같은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도 누가 내리는 가에 따라 맛이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배움은 이런 섬세함을 알게 해 준다.
레벨게이지 - 배움의 계단
세상사 많은 부분의 변화는 투입된 노력과 일대일로 비례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물이 끓는 것도 열을 준다고 해서 바로 증기가 올라오지는 않고, 냉동실에 넣은 물이 바로 얼음이 되지도 않는다. 바로 임계 값이라는 것이 있다. 열역학에서는 이것을 엔탈피라고 한다. 물이 주변의 열에 의해 서서히 온도가 증가하고 99도까지는 평온해 보이던 물이 100도가 되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배움의 결과도 그렇다. 일주일, 한 달 열심히 배운다고 해서 뭔가 바로 이루어지지 않느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변화의 징조는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얼굴만큼이나, 다양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를 위한 노력이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변화에 도달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 레벨을 채우듯이 묵묵히 배움을 계속해 가면 성장의 한 계단에 올라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계단에 올라서면 아래단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배움의 목표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게 된다.
배움의 세 가지 자세
하나, 용기 : 배움은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용기와 자신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방향을 정하기에 앞서 현재 자신의 모습에 갇히지 말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자
둘, 행동 : 배움은 노 젓기다. 방향타가 갈 방향을 잡았다면 노를 저여야 나아갈 수 있다. 주저하지 말고 힘차게 노를 젓는 행동이 필요하다.
셋, 기다림 : 앞서 이야기했듯이 계단은 단숨에 올라서 지지 않는다. 충분한 발돋움이 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
배움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배움이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은 오직 퇴화가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새롭고 신박한 것도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면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이 퇴화, 노화를 긍정적인 변화로 바꿀 수 있는 묘약이 바로 배움이다. 배움이 없이는 변화가 없고, 배움은 변화의 시작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에서 부족한 모습이 있다면, 꼴 보기 싫은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을 바꾸기 위한 배움을 시작해보자. 우선은 주변에 널려 있는 정보들을 먼저 살펴보고 자신이 처한 시간과 환경과 재정 여건에 도전 가능한 방법을 먼저 찾는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정해진 시간과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자. 돈이 걸리면 본전 생각이 나서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PS. 배움을 쫒다 보면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 더, 더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처음 가지고 있던 배움의 목적이 방향을 잃고, 배움 자체에 중독되는 현상이다. 기우에서 한 가지 당부를 한다면, 배움을 추구하되 배움 자체에 매몰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