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나
. 내 마음을 나도 몰라 - 단절
중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상이나 사물에 젖어버려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된다. 조금 더 체감되는 표현으로 말하면 "자신의 통제권을 그 무엇엔가 에게 넘겨준 상태"를 말한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알지만, 그것을 위해 나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중독된 상태의 내 모습이다.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 같은 것들은 심각한 외형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또는, 주변에서 중독에 이르는 과정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인식과 주변의 애정이 있다면 도움의 손길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중독인지를 인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중독이다.
중독으로 의한 가장 큰 폐해는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이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은 온전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게임중독에 빠진 사람은 건전한 현실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고, 사랑 중독에 빠진 사람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지만 서로 교감하는 사랑을 누릴 수 없다. 분명 나인데 나일 수 없는 상태. 이런 상황을 우리는 중독이라고 한다.
. 징조 - 최고의 행복 vs 최후의 행복
중독은 대부분 갑자기 오지 않고 매우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마치 개구리가 미지근한 물에서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도 튀어나오지 않고 끓는 물에 삶아지는 것처럼 처음에는 내가 즐기는 듯한 것들에 어느 틈엔가 내가 사로잡혀 나 스스로 그 덫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중독이다. 정선 카지노에 가면 자동차, 집문서를 전문으로 저당 잡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한두 번, 그리고 몇 번의 성공에 취하거나, 의도치 않은 큰 손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치다가 타고 간 차를 저당 잡히고, 집문서를 저당 잡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중독에 빠지는 데는 두 가지 심리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고 싶은 현실 부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찾는 쾌락 추구이다. 인생이 고난의 순간을 만났을 때,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데 기인한 알코올 중독, 게으름 중독, 도박중독 등은 현실 부인에 기인한 중독이다.
또 한경우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추구하는 것으로 게임중독, SNS 중독, 맛집 중독 등으로 쾌락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런 것도 중독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이런 상태는 엄연한 중독상태이다.
. 좋은 중독은 없다.
좋은 중독이 있을까? 운동, 일, 선행, 봉사 등 우리가 좋은 그것으로 생각하는 것들도 중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운동 중독, 관계 중독, 일 중독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들을 어떻게 중독에 포함시키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중독의 사전적 의미대로 내가 주도권을 잃은 것이 중독이라고 한다면, 운동을 위해 중요한 일들을 소홀히 하게 된다면 이것도 중독이다.
최근 아빠(가장)들이 은퇴 후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사회 문제의 이슈가 되고 있다. 젊은 시절, 아이들의 성장기에 일 중독(일에 대한 주도권을 놓쳐서 삶이 아닌 일에 매여 사는 현상)에 빠져 오로지 일만 생각하고 사는 동안 자녀들은 성장하고 어느새 자녀와의 정서적 공감대를 전혀 만들지 못한 채 은퇴한 중년이 되는 현상이다. 일만 생각하다 가족과 단절된 관계만 남는 인생이라면 일에 중독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계발 중독, 배움 중독도 중독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배움 자체는 우리 삶을 영위하는데 정말 소중한 가치이다. 하지만, 결과가 없는 배움이라는 은신처로 자신을 매몰하게 한다. 옛 선비들이 삶의 근본적인 노동을 등한시하고 배움에 매몰돼 있을 때 그의 가족들은 비참함 삶을 살아야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배움도 중독이 될 수 있다. 과도한 운동과 취미 생활로 인해 부부간의 갈등을 겪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경험한 일이다. 가벼운 중독의 경우 갈등의 과정을 통해 자기 조절 능력을 회복하는 때도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의 구도로 빠지게 된다. 중독이라는 현상 자체가 자신의 통제력을 잃는 것이기에 통제력을 상실하는 모든 중독은 긍정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 좋은 중독은 없다' 라고 단언할 수 있다.
. 세상 속으로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언제나 사회와 소통하면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중독은 그 사회적 존재가 사회성을 상실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중요한 모임 장소에서 핸드폰에 자꾸 손이 가는 것.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취미 생활로 인해 놓쳐버리는 것. 자기 계발의 중요한 타이밍을 게임에 빠져 흘려보내는 것. 소중한 재정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노름에 탕진하는 것.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몸을, 알코올이나 약물에 취해 망치는 것. 사회적 정화 역할을 해야 할 종교가 과다한 종교적 행위로 인해 그 역할을 망각하는 것, 서로 나누어야 할 사랑을 독점하려는 집착으로 인해 상처를 만들어 가는 것. 이런 모든 것이 중독의 한 부류라고 생각한다. 중독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독에 빠지지 않은 삶을 위한 제안
어느 순간 내가 자제할 수 없는 나는 발견한다면.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도 음을 청할 것.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라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은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기억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