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모 잡지사에서 프리랜서로 글 쓰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잡지의 성격상 파트별 회의와 전체회의가 매달 열렸다.
우리 파트에서 1차 회의를 한 뒤, 통과한 아이템을 전체회의에 내놓는 방식이었다.
내가 준비한 기획안을 가지고 1차 회의에 갔다.
내 기획안을 본 팀장은 3초간 눈에 힘이 들어갔다가 빠졌다.
" 음. 이 문제를 지금 다루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요. 그 사안에 대한 대책이 이미 예전에 나왔기 때문이죠."
라고 말하며 내 기획안을 옆으로 미뤄놨다.
난 억지로 미소 지으면서 민망함을 감췄다.
'내가 보는 시야가 좁았구나 '라고 좀 더 자료조사를 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다음 주 전체회의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전체회의자료를 받았다. 전체 회의자료는 지난주 제출한 기획안 중 통과한 것을 모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차를 마시며 자료를 뒤적이는데,
'엥? 이건 뭔가?'
지난주 내가 냈다가 그 자리에서 퇴짜 맞은 기획안이 제출자 이름만 팀장 이름으로 바뀌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내 앞에서 거절했던 내 기획안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 내? 내가 여기에 없는 것도 아니고 마주 보고 앉아 있는데? 그러고 내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잘)'
회의 때, 그 팀장과 눈이 마주치려고 시도했다. 오랜 시도 끝에 만난 팀장 눈동자, 그 속을 아무리 뒤져도 그 안에 죄책감은 없었다. 오히려 눈썹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결국 눈싸움에 진 건 나였다. 난 팀장을 응시하던 눈을 노트북으로 옮겼다. 너무나 당당한 모습에 '내가 뭔가 착각했나?'싶어서 내 노트북 안에 밀어 넣었던 기획안을 펼쳐봤다. 노트북 안에서 펼쳐진 기획안은 '난 네 것이 맞아' 하고 소리치는 듯 유난히 또렷한 글씨로 둥둥 떠 있었다. 저장된 날짜와 함께.
어렸을 때, 엄마는 마당에 나갔다 들어오면 "아휴 또 잡초가 자랐네. 지난달에 다 정리했는데"라며 잡초 때문에 골치 아파했다. 그 모습이 평소 여유 있는 엄마 모습하고 달라서 의아했다. 내 눈에는 잔디나 잡초나 어차피 푸르른 건 마찬가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난 '잡초와 잔디가 사이좋게 살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잔디와 잡초는 공생할 수 없다. 잡초는 경쟁력이 강해서 어떻게든 잔디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 먹는다. 게다가 잔디에 병을 일으키는 생물의 숙주가 되기도 한다고.(아래 참조)
잡초는 물·햇빛·영양분을 얻기 위해 재배 식물과 경쟁한다. 많은 잡초들은 식물의 병을 일으키는 생물체들의 숙주가 되기도 하고 곤충에 의해 매개되는 병의 숙주가 되기도 한다 : <출처 다음 백과사전>
자신이 먹을 게 아닌데 중간에 가로채서 먹고 잘 자라는 잡초. 그 생명력 또한 질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불쑥 등장하기도 한다. 그대로 놔두면 키우려던 식물이 위태로워진다. 뽑아내야 한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잡초를 뽑는 것보다 잔디가 먼저 죽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실제로 내 기획안의 이름만 바꿔 낸 팀장 사건이 있고 나서, 얼마 뒤 또 다른 표절 문제(이 표절은 팀 내 다른 사람의 표절)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고민은 시작됐다.
'여기를 그만둬야 하나, 다녀야 하나.'
사실 그 당시 내 상황에서는 풀타임 잡보다는 프리랜서가 더 맞았다. 한 달에 한두 번만 나가서 회의를 하면 되고 대부분의 일은 집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놓치기 아까웠다.
' 이 정도 되는 일을 찾기는 쉽지 않을 텐데.....' 하며 이리저리 재보기도 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결국 그만두었다.
'다닐까? 관둘까?' 두 갈래의 길 중 관두는 쪽을 선택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사이에 변한 내 태도였다. 첫 번째 표절을 직면했을 때의 충격만큼 두 번째 표절을 마주했을 때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사이 난 익숙해졌던 것이다. 나쁜 것에 적응해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그 직장의 유익함보다 커서 그만두었다.
타인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 네 몫을 탐해 내 몫으로 하는 잡초 같다.
비슷한 행위로 시험 때 부정행위가 있다. 잡초의 전 단계인 좀 약한 버전으로는 중고생 수행평가 시 하드 캐리 하는 친구에게 떠넘기고 이름만 올리는 얌체족 , 인터넷 카페에서 매번 질문만 올리고 답만 취하는 체리피커가 있다.(그래서 대부분의 카페에는 승급제도가 있다)
살아가면서 사람과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부정을 허용하는 '실속'보다는 '가치'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부정을 눈 감은 채, 실속만 쫓아가다 보면 점점 질주하게 되는 반면, 가치를 쫓아가다 보면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실속을 챙기면 당장 손에 몇 개를 쥘 수 있을 뿐이지만 가치를 쫓아가다 보면 나 자신이 멋있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양손에 가득 든 것보다는 나 자신이 멋있어지고 싶다.
실제로 멋있는 잡초는 없다. 다른 식물의 영양분을 빼앗아 먹고 무럭무럭 자랄 뿐,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한다. 그저 쑥쑥 자랄 뿐이다. 그러다 결국은 뽑힌다. 그게 그들의 운명이다.
그 모습에 실속만 쫓아 타인의 노력을 가로챈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만 잡초를 보고 판단하면서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
아래 보면 , 재배 식물을 새로운 기후대에 이식하면 잘 자라지 못해 잡초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잡초가 아닌 이름 있는 풀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잡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태생적 잡초도 있지만 부적응으로 인해 잡초가 된 경우도 있다니 놀라운 사실이다.
인간은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이래 농작물 경작지에 침범하는 잡초와 싸워야 했다. 어떤 잡초들은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가치가 훗날 발견되어 잡초의 목록에서 그 이름이 삭제되고 재배되었다. 반면 재배 식물을 새로운 기후대에 이식하면 잘 자라지 못해 잡초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잡초는 항상 범주가 바뀌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 출처 다음 백과사전 >
문득, 내 과거를 돌아본다.
내가 적응을 못해 잡초가 될 수도 있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말을 가르칠 때가 떠올랐다.
내 전공은 국어학이 아니다. 외국어를 전공한 내게, 한국말을 가르친다는 것은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된다는 이점은 있었지만 한국말에 대한 전문성은 부족했다. 물론 대학원에서 대조 언어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아주 무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부족한 점은 많았다.
처음 강의하던 해에는 집에서 강의 준비하는 시간이 강의하는 시간의 몇 배나 걸렸다. 예상 질문까지 만들어 상황별 예시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 준비과정에 좀 석연찮은 부분이 있을 때면 아침 출근시간에 마음이 무거웠다. 출근길에 음악도 듣지 않고 그 부분을 계속 되뇌곤 했다.
그렇게 도착한 뒤, 아침 회의시간.
그날 가르칠 문형에 대해 선배님들이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시간이다.
" 이 문형을 가르칠 때는 다른 문형과 비교 제시를 잘해야 합니다. 이 문형과 다른 문형의 차이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 설명하면 좋습니다."
'아.... 며칠째 밤낮으로, 오늘 아침 출근시간까지 붙들고 있던 엉킨 줄이 이렇게 한 번에 풀리는구나.'
회의가 끝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강의실로 이동하는 중, 회의를 주관했던 선배님은 내게 다가왔다.
"아무도 선생님. 어려운 점 없어요? 가르치다가 막히는 부분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요. 난 강의 끝나고도 어학당에 저녁때까지 있으니까."
"..... 아..... 네."
그 말을 하는 선배님의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나는 '네'라는 그 한마디를 버벅거리며 해버렸다.
그 후로도 회의시간마다 선배님들은 수년, 십수 년간 자신이 축적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방출해 주었다.
그 시간들이 축적돼 한 학기 뒤에는 나도 회의를 주관할 수 있고 나만의 방법도 곁들어 발표할 수 있었다.
선배님들 덕분에 무난하게 그 직업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도움을 안 받았다면 난 그 조직에서 별로 쓸모없는 구성원이 된 채, 선배들의 노하우를 챙기고 월급만 축내는 잡초가 될 수도 있었다. 그 후로 10년 넘게 행복하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 적응기간에 내가 뿌리를 잘 내리도록 선배님들이 도와준 덕분이다. 그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퇴사할 때. 몇몇 분께 책상에 선물을 놓아두고 나왔다.(퇴사는 일부러 방학 때 조용히 했다)
남편은 "난 태어나서 퇴사하면서 선물 주고 나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라고 그 선물을 자신이 받고 싶다는 듯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이해받으려고 한 행동이 아닌데.......
누군가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디디고 두리번거릴 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것, 이정표를 꽂아주는 것은
그 사람이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제대로 뿌리를 못 내리면 그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잡초가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이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을 지켜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도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선배님들로부터 시작된 선순환이다.
나 자신이 잡초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과, 타인의 이름을 지켜주기 위한 노력이 모여 푸른 잔디밭이 유지될 것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진 출처 : 픽사 베이>
잡초 사진이 너무 안 예뻐서 잡초 대신 잔디 사진을 올립니다. 저 잔디 안에 잡초도 있을 거라 봐요.^^
이 글은 21. 3월에 출간된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에 일부 수정돼 실려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출간 이야기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