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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y 28. 2021

하마터면 왼손으로 만들 뻔했다, 오므라이스

  쉿!...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은 몰랐다.


그러나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알았다.

왼손만으로는 일의 갈무리가 깔끔치 못하고 어설프니 오른손이 거의 모든 일을 주도한 때문이다.

오른손잡이로서 왼손은 거들 뿐인 셈이기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마태복음 6장 3절)’라는 거창한 뜻이라기보다는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왼손은 거들뿐’이라고 한 것과 비슷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 동안은 반대로 오른손은 거들뿐, 왼손이 많은 일을 주도하게 되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된 것.


  오른쪽 어깨 관절경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인대의 손상과 유착, 뼈까지 파고들었던 석회 덩어리의 세(勢) 확장에 대한 ‘혹시’와 ‘만약’의 경우의 수 중에서 나쁜 가정(假定)은 모두 비껴갔고 가장 손쉽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석회 제거 수술만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말 그대로 ‘수술’은 수술인지라 두 달가량은 충격파 치료를 비롯한 도수치료와 CPM(continuous passive motion apparatus. 지속적 수동운동장치) 등 재활치료를 해야 하고, 2주간은 약을 먹어야 하며 2주 후 테이프 제거, 3주 후 주사치료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불편한 처방은 1주일 동안 팔 보호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두 달 동안은 음주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팔 보호대를 한다는 것은 ‘오른팔 금지령’에 해당하는 것으로 행동의 자유를 빼앗기고 사지를 결박당한 꼴이며, 금주령이 내려진 것은 술 없는 절해고도(絶海孤島) 유배생활과 다를 바 없는, 죄질이 나쁜 자에게 내려지는 중형 선고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태가 이러할진대,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통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이뿐 아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당장 먹는 것에서부터 걱정은 시작되었다. 식재료 배달, 반조리식품 대체, 라면 환영, 배달음식 활용, 남편 찬스, 아들 찬스 사용하기... 등등의 생활의 지혜가 총동원되었지만 음식을 조리해서 먹기도 해야 하는 것이어서 한 그릇으로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요리는 무엇일까? 왼손만을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 고민하게 되었다.

그중 간택된 것이 바로, 오므라이스였다.

야채는 볶음밥용으로 나온 제품을 이용하든지, 다지기 도구를 사용하면 되니 소스(그레이비소스)만  만들면 될 터였다.

  

버터에 간 마늘, 양파를 볶다 밀가루를 넣어 갈색이 돌게 볶아요. 버섯과 물을 조금 넣고 우스타, 돈까스소스, 스테이크소스, 케찹을 넣어 끓이면 그레이비 소스 비슷한 소스 완성!!


  오므라이스는 볶음밥도 중요하지만 소스가 매우 중요한 음식이다. 소스만 맛있어도 맨밥에 비벼 먹어도 무관할 터, 소스에 심혈을 기울일 작정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소스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하였다.

사실 메이드 된 이 소스들은 한 번 사용하고 냉장고에 보관하면 자칫 유통기한을 넘기기 쉽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체크하여 활용을 하든 처리를 하든 해야 하는 재료이다.


  냉장고에서 흐흠~ 내가 좋아하는 우스타 소스와 밑바닥에 조금씩 남아 있는 돈가스 소스와 스테이크 소스를 찾아 꺼냈다. 케첩도 추가하면 보다 새콤한 오므라이스 소스가 되리라.


딸의 오므라이스(좌), 아들의 오므라이스(우)에는 라면이 따라 붙었다. 계란의 스타일도 개인의 취향대로! 역시 통일이 안돼!^^


 “또각또각 탁탁 탁탁...”

도마에서 들리던 말발굽 소리가

오늘은 “뚝뚝 틱틱 뚝뚝 틱 뚝 틱...”

불규칙 사운드를 낸다.


  모든 걸 오른손이 지켜보는 가운데 왼손이 하자니 힘이 들었다. 보는 눈이 많으면 괜스레 힘이 들어가기 마련인 것처럼. 왼손이 슬슬 오른손 눈치를 본다. 가뜩이나 어설픈 칼질인데 잘해보고자 힘을 주니 손목부터 찌릿해 왔다.

오른손도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다. 언제쯤 왼손과 합류할지 기회를 엿본다. 오른손이 팔 보호대 안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근질근질 비비적거린다.


  신체적인 장애를 겪는 장애인 따라 하기 프로그램을 체험 중인 듯했다.

눈 감고 장애인 보도블록 따라 걷기, 휠체어 타고 대중교통 이용하기, 귀마개하고 하루 보내기... 같은 것 말이다. 그들의 시선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그들의 불편과 고충을 이해하도록 하는 체험 말이다.


중계 아나운서 : 말씀드리는 순간, 오른손 선수, 오른손 선수가  이상 참지 못하고 펜스를 넘어 경기장 안으로 난입을 시도합니다, 훌리건인가요?
해설위원 : , 시원하게  보호대까지 풀어헤친 상태죠. 왼손 선수,  이상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데요,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중계 아나운서 : ~에, 오른손 선수, 예측한 경기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왼손 선수는 쓸쓸히 경기장 밖으로 퇴장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왼손 저리 비켜~ㅅ!’

역시, 그동안의 선수 시절이 50년인데 벤치에 앉아 있을 오른손이 아니었다.

오른손이 바통을 넘겨받자 요리는 급물살을 탔고 음식은 후다닥 만들어져 아이들의 입으로 골인하기에 이르렀다. 에지 있게 하이 파이브!


  왼손은 생각한다. 고로 깨닫는다.

오른손잡이로서, 오른손의 역할이 있고 왼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한 손이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다른 한 손은 거들어야 한다는 것을.

오른손이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 한다는 것을.

역할을 마쳤다면 오른손 왼손 함께 마주쳐 박수를 치거나 하이 파이브를 해야 한다는 것을.


  하마터면 왼손으로 만들 뻔했다, 오므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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