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Dec 04. 2020

김장은 걱정, 굴보쌈은 설렘

“김장하는 날, 수육 먹는 맛을 이제 알겠네!”

당신도 나이가 들었네.
 김장을 다 두려워하네?

남편  : 무채 써는 게 얼마나 힘든데, 무거운 것도 이제 들었다 놨다 못하겠고. 올해는 배추값도 비싸고 하니까 조금만 합시다. 40kg? 60kg만 할까?

  : 60kg라고? 그거 누구 코에 붙이게? 100kg은 해야 먹지. 마음은 더하고 싶지만 나도 힘들다, 이제. 깍두기도 하고 굴무침도 할 거니까, 딱 100kg만!

남편  : 그렇지? 그 정도는 해야겠지?...


  두 달 전, 절임배추를 미리 주문하며 남편과 했던 대화다. 걱정이 늘어지다 못해 태산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김장을 좀 줄여서 하자고 하면 남편은 듣는 시늉도 않고,

“이왕 하는 김에 조금만 더 합시다”

했더랬는데 이제 힘들긴 한가보다.

심지어 작년에는 친정에 부칠 김치를 들다 손목을 삐끗해서 몇 달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으니 엄두가 나지 않을 만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하던 가락’이 있는데, 60kg 이라니... 누구 코에도 붙이지 못할 양이다.

‘나 보다 5살이나 젊으면서...우이씨! 나 님을 앞에 두고 어디서 엄살이야!’


  김장할 생각에 나 역시 쫄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매년 140kg, 160kg쯤 하다 100kg으로 줄인다 생각하니 걱정의 체감지수가 낮아지며 ‘발로도 김장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투력이 상승했다.

하물며 절임배추인데, 양념거리만 잘 사서 깨끗이 씻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이틀은 봐야 하는 장보기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으니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웬걸?

 ‘오랜만에 하는 일을 익숙한 듯 할 수 있는 것은 손이 기억하고 몸이 먼저 기억한다’라고 하는 건가.

재료를 적게 사려니 너무 적게 사는 건 아닌가 싶어 하나 더 사고, 조금 더 샀더니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물건을 담고 있는 게 아닌가?

무도 20개를 샀고 새우젓도 3kg, 굴도 3kg, 쪽파도 굵은 것 2단... 똑같다.

 ‘왠지 싸~한 이 불길한 느낌은 뭐지?’


  역시나다.

배추를 다 치댔는데도 양념이 남는다.

눈물을 머금고 부랴부랴 20kg짜리 절임배추를 사 왔다. 하던 버릇 개 못준다.

올해도 120kg 김장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올해 김장은 김치 11통, 깍두기 2통, 굴무침 2통

  내가 아무리 ‘김치 킬러’라 해도 이 많은 양을 할 필요는 없다. 남편과 내가 해마다 낑낑거리며 이 많은 김장을 하는 이유는 시어머님 드실 김치와 친정 엄마에게 보낼 김치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결혼 후 올해까지 20년을 한결같이 해온 일이다.

뭘 해도 꾸준하지 못하고 금방 싫증내고 포기해버리는 나로서는 기네스에 오를 일로써 해마다 기록을 경신중에 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남편 덕이고 아이들 덕이다.

남편은 웬만한 아줌마 1.5명이(2명은  과하고...)  일을 너끈히 해낸다. 무채 담당이고 절임배추 손질해 엎어놓기, 양념 골고루 섞기, 치대기, 김치통 랩 덮어 정리, 택배 상자 묶고 부치기, 사용한 대야와 채반 닦기 담당이다.

아이들은 물 뺀 김치 옮기기, 김치통 옮기기, 간 보기, 김장 후 걸레질 담당이다.

나는 빈 김치통 씻어 엎어놓기, 장보기, 굴 생새우 야채 씻기와 썰기, 양념 털어 넣기, 치대기, 굴전 수육 등 식사 준비, 양념통과 재료 뒷정리, 그리고 작은 설거지 담당이다.

   

굴무침을 빼고 김장을 논할 수 없다. 이거 먹으려고 김장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치명적인 맛!

  가히 특공대에 버금가는 조직력과 정신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사불란하고 치밀하며 재빠르다.

이런 자세와 조직력, 전투력으로 만약 참전했다면 태극무공훈장은 따논 당상일텐데.


 서둘러 저녁을 차려 식탁 앞에 식구들이 모여 앉았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더니 예년에 비해 김장이 빨리 끝났다. 양만 좀 줄였을 뿐인데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에너지의 여분이 있어 여유롭다.

 ‘김장 양에 있어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을 고려해봐야겠다’


  김장은 우리 집 연중행사 스케줄상 마지막 행사로, 끝내고 나서 이렇게 앉아 소주 한 잔을 하며 긴장을 내려놓으면 한 해의 마지막 날처럼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센티함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음... 올해는 아주 Lucky 했다’

게다가 내 앞에는 굴보쌈이 놓여 있다.

자연 경건해지는 순간이다.

굴보쌈을 빼고 감히 김장을 논할 수 있을까?

이 숨 막히는 자태를 보라! 치명적이지 아니한가!

사실 나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김장 보다 이 굴무침 때문에 김장을 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젓가락이 춤을 춘다.

 “이~양 맛있어!. 우~앙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딸이 감탄사를 던진다.

 “고기도 너무 잘 삶았고 굴은 아주 꿀이네, 꿀!”

남편이 맞감탄사를 날린다.

 “진짜 맛있다. 김장하는 날 수육 먹는 이유를 이제 알겠네. 이거 안 먹으면 큰일 날 일이네. 꼭 먹어야 하는 거네”

아들이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와~ 진정 김장하는 날의 수육 맛을 깨닫게 되었구나, 아들이 드디어 싸나이가 되셨네”

술맛도 좋고 굴보쌈 맛도 좋고 김장도 끝났으니 그 또한 좋고 식구 모두 맛있게 잘 먹으니 그것도 좋고... 다 좋고...

 

 “김장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리포터가 묻는다.

 “이 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해야죠. 힘닿는데 까지 하려고요. 그게 소원이에요”


  이 멘트는 좀 오글오글, 진부하려나?


이전 12화 체험학습은 떡꼬치와 같아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