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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13. 2021

부산 명물, ‘고갈비’의 추억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음식의 격이 달라진다

  비가 오시는 날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 생각이 하염없이 옛날로 돌아가는 일이다. 찻잎에 열수熱水를 부으면 잠자던 찻잎이 깨어나듯 옛 일들이 하나씩 깨어나는 것이다.

  과거의 생각들은 그러나 아쉽다거나 애절하다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꼬리를 무는 것은 아니다.
영화 장면이 원테이크로 찍혀 자연스럽게 이동하듯 기억들이 흘러간다. 어느 찻집의 벽에 걸려있던 一爐香室(일로향실,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 글귀가 떠오르는가 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셨던 술과 음식이 기억된다. 때론 그때의 냄새까지도 기억될 때가 있다.

 ‘오늘처럼 비가 왔던가?’
그럴 때면 내가 옛날의 그 시간, 그 공간에 나의 영혼의 한 자락을 남기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결국 나의 영혼에 대한 그리움인 것이다.


  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우리 과 남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병역 훈련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칠 대상도 없었지만 잘 다녀오라고 기차역으로 배웅을 나가 주는 것이 관례라 하여 몇몇이 역으로 나갈 약속을 했고 나는 그 핑계 삼아 집에서 나와 한나절을 놀 생각이었다.

남학생들이 없으니 자연 수업은 일주일을 쉬는 터라 그날은 일주일 자유시간의 서막을 울리기에 더없이 좋은 날일 수밖에.

예비역 대표, 배웅 나온 여학생들의 기사 역을 자처했던 박선배가 점심과 술 일체를 사주겠다 호언장담 하였으니 호의는 받아들이고 볼 일이었다.


  남학생들을 등 떠밀어 실어 보낸 후, 배웅팀은 역 건너편 대패삼겹살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물론 박 선배가 쏴주는 자리다. 엄마 아빠를 몰라보기도 한다는 낮술은 첫 잔이 달았다.

 ‘어라? 첫 잔이 달면 그날은 조심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24도나 되는 소주를 한 잔씩 쫙쫙 털어 마셨다. 일찍 시작한 터라 2차는 필수였고 3차도 필수였다.


 3차... 돈도 없고 기억도 없는 코스였다.

 ‘어디로 가지?’ 우려했던 것도 잠시, 선배는

 “다음 3차도 내가 쏜다. 끝까지 모셔야지, 다음은 고갈비 코스로!”

정녕 기억이 없어지는 3차인가? 갈비라고 들은 것 같은데, 1,2차 술값도 많이 나왔을 텐데 3차에 갈비라니. 우리가 재벌 2세와 같이 있는 거? 그렇다면 봉이 아닌가!


갈비 좀 뜯어보겠다고 좋아라 따라갔던 <남마남 고갈비집>. 저 2층에서 비릿한 고갈비에 소주와 막걸리를 섞어 마셨더랬다.


  순진한 새내기 여자 대학생 셋은 봉 선배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광복동 미도파백화점 뒷골목이었다. 먼 데서 갈비 굽는 연기가 잔뜩 피어오르고 있었다. 피어나는 연기만큼이나 기대도 같이 피어올랐고 맛있는 갈비를 뜯을 생각으로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어무이, 여게 갈비 한 짝 하고 쏘주 2병 주이소.”

오늘, 날 제대로 잡았구나 싶었다. 선배의 얼굴이 갈비 굽는 연기와 함께 아릿하게 번져갔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이야? 안주로 나온 것은 고등어 구이가 아닌가? 음, 갈비 나오기 전에 나온 서비스 안주로구나 했다. 갈비를 먹는데 이 정도쯤이야, 뭐.

한참을 먹어도 마셔도 다른 안주는 나오지 않았다.

 “박 선배, 갈비는요?” 물었고

 “이기 갈비 아이가, 고갈비... 안 묵어 봤나?”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긴 뭘 몰라, 일주일이면 으레 한두 번은 꼭 구워 먹는 고등어구이구만. 부산에서 고등어는 흔하고 값싼 생선이었다. 그런데 이게 갈비? 혹시 좀 전에 얘기했던 그 갈비가 이 갈비?라고라... 환장하겠네.


  “느그들, 물고 뜯고 맛보는 소갈비, 돼지갈비 생각했드나?”

선배는 웃겨 죽겠다며 껄껄 웃더니, 그 생각 차이가 너무 높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을 높을 고高, 고갈비에 대한 이야기를 술안주로 잔뜩 풀어놓았다.


  고등어구이를 고갈비로 부르게 된 사연은 몇 가지나 되었다.

멀리서 고등어를 굽는 모습을 보면 마치 갈비를 굽는 것처럼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첫 번째였다. 고등어의 기름이 연탄불 위로 뚝뚝 떨어지면 연기는 끝도 모르게 피어오르고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주문을 하면 철판에 데워지기도 했지만 초벌은 연탄불이어야 했다.


  두 번째는, 한국전쟁 후인 5~60년대 힘들고 어려운 시절로 돌아간다.

 “언감생심 갈비는 구경도 몬하고, 맨날 천날 묵는 게 고등어니까, 갈비 묵는다~ 생각하면 안 되겠나 카면서 고갈비, 고갈비 그카데. 그라고 고등어 가시 딱 들고 살 뜯어묵는거 보믄 그기 딱 돼지갈비 뜯는 거 같다 아이가...”

주인아주머니가 신나게 고갈비 이름의 유래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그러니까 이 고갈비 골목, 노포(老鋪)에는 흔하고 싼 음식일망정 오래전부터 고등어가 갈비 대신이었고 막걸리는 야쿠르트, 간장을 포도주라 여기며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세우고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먹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격이 달라지고 먹는 이의 격도 아울러 달라지는 셈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돈 없는 대학생들이 고갈비와 막걸리로 끼니와 술을 때우는 일이 많았다 하여 학력 높은 대학생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라 해서 고高 자를 붙여 高갈비로 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었다.


깍두기와 함께 나온 고갈비(좌)와 고갈비 골목의 모습(우), 양대산맥인 <할매집 고갈비>와 <남마담 고갈비>가 보인다.


  박선배와 주인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으니 고갈비를 알게 된 초면初面에 친근함마저 들긴 하였지만 연신 구워대는 고갈비의 연기는 자연스레 우리가 있던 2층으로 올라와 입으로, 코로 비린 생선 냄새를 계속 맡고 앉아있어야 했다. 서비스로 나온 반찬이란 것도 깍두기와 동치미와 간장이 전부여서 식도를 타고 내려간 소주는 여간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지 않았고 고갈비는 자꾸 비려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고등어구이, 고갈비에 대한 추억은 이런 것이었다.

비린 연기와 냄새를 뒤집어쓴 채 쓴 소주를 마셔댔던 부산 고갈비 골목 남마담집 2층에 있었던 그날의 기억과 흔하고 값싸고 비린 생선구이일망정 내 마음이 갈비라 생각하면 그것이 곧 갈비가 되는 것. 모든 것이 마음 쓰기에 달린 것이리라. 고등어 가시에 붙은 살을 뜯어먹으면서도 갈비를 뜯는 왕후장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고등어구이를 해 먹을라치면 고갈비라 부르며 먹었다던 옛 사람들의 애환과 낭만이 그대로 느껴지고야 마는 것이다.


우리집 캠핑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 삼겹살과 고등어구이...자글자글 기름냄새 풍기며 구워줘야 고갈비는 품격있는 음식으로 재탄생된다.


  하여, 캠핑이라도 갈라치면 삼겹살과 함께 고등어자반은 꼭 사서 챙긴다. 숯불에 자글자글 구워지는 고등어와 잔뜩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 마음이 절로 풍요로워지며 추억도 함께 차오르는 것이다.

 ‘비린 냄새, 기름 냄새를 안고 연기는 이렇게 풍성히 날려줘야 제 맛이지!’ 생각한다.


  비 오는 날 고갈비를 구워 먹는 맛은 또 어떻고.

습기를 먹은 공기와 고등어 굽는 연기는 한데 섞여 위로 오르지 않고 아래로 내려 깔리겠지만, 그래서 그 비린 냄새가 최소 이틀은 집안에 머물러 코를 자극해 대겠지만 비 오는 날, 부침개를 해 먹는 당연한 행동처럼 비 오는 날의 고갈비 역시 당위성을 갖는다.


  비릿비릿한 냄새는 바다와 함께 유년과 청소년 청년기를 거친 사람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향수이며 고향의 냄새인 것이다.

비가 오든 날이 맑든, 내일은 고등어를 구워 갈비처럼 뜯어먹을 일이다.

 “이모, 여기 고갈비 한 짝 추가요~”


  



  *) ‘일로향실(一爐香室)’. 초의가 제주도까지 차를 보내준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추사가 소치를 통해 초의에게 보낸 글씨이다.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는 의미의 이 글은 초의가 머물던 대둔사 일지암(一枝庵)의 차향이 은은하게 나는 방에 걸라고 써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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