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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Dec 18. 2020

파품, 무시하지 마란 말이야!

‘반품샵’과 같은 개념, 못생겨도 가성비 갑!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한국 코미디언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 이주일 씨는 코미디를 시작하며 대국민 출사표를 이렇게 던졌었다.

훅~ 들어온 파격적인 고백을 받아들인 것인지, 못생긴 얼굴이지만 ‘뭔가 보여드리겠다’는 각오를 높이 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꼬맹이에서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빵빵 웃음을 터트리며 포복절도했던 것이었다.

  코미디언의 사명이 웃기는 데 있고 보면, 그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었으리라.


  “그러니까, 멀쩡한 거 놔두고 왜 찢어지고 터지고 못생긴 걸 사려고 하냐고?”

나는 못생겨서 죄송하다던 이주일 씨는 팍팍 용서가 되는데, 음식재료나 물건 못생긴 거는 도대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생긴 건 그래도 멀쩡한 거랑 똑같아요, 맛도 똑같고. 유통과정에서 생긴 흠집인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값이 1/3, 1/2 싸다니까!”

남편은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노래를 하듯 못생긴 것과 멀쩡한 것이 똑같다고 외쳐대고 있었다.


  여기서 못생긴 것은 파품(破品), 즉 찢어지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제품이라 설명할 수 있지만 어학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어학사전에도 없는 말을 수식어로 붙인 음식들이 가득한 ‘파품의 세계를 남편은 도대체 어찌 알게 되었던 것일까?

  “많이 먹고 싶기는 한데 가격이 너무 비싸잖아. 특히 오징어, 명란젓.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데... 인터넷 뒤지다 보니까 파품, 파지라고 쓰인 물건들이 있는데 가격이 엄청 싼 거라. 물건이 상품(上品)은 아니지만 판매량도 많고 상품후기도 나쁘지 않더라고. 그래서 샀지”

오호라, 이 무슨, 눈물 없이는 들어줄 수도 없는 신파극 같은 소리인가? 없어서 못 먹고 산 것도 아닌데 먹는 것 타령 일꼬? 싶었다.


  일단 주문을 했다 하니 배달돼 오는 것을 보고 ‘정말 아니면 반품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크기도 작고 터지고 잘라져서 파품 신세가 된 명란젓(좌), 역시 작고 찢어져 파품으로 팔린 반건조오징어(우)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니...
가구나 가전제품 등 되돌아온 물건을
파는  ‘반품샵’ 과 같은 개념이 아닌가.

  

  아는 동생 B는 가구나 옷을 살 때, ‘반품샵’을 애용했다. 고가의 브랜드 정품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반품샵’을 이용하면 스크래치나 흠집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아주 저렴해질 수 있어 만족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사용하거나 입으면서 흠(欠)이 생기는 소모성 제품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두고 볼수록 잘했다는 뿌듯한 생각이 절로 드니 일석삼조라는 것이다.

 <아는 동생 B의 ‘반품샵 일석삼조’>
1. 저렴한 가격에 브랜드 제품을 살 수 있다.
2. 소모성 제품이므로 흠은 흠이 아니다.
3. 두고 볼수록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얼떨결에 따라갔다가 나 역시 다리 쪽에 약간의 흠이 있는 책상을 하나 구입했었는데 경기 외곽지역에 ‘창고형 반품샵’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반품샵과 파품이 개념을 같이 한다면 괜찮을 것 같기는 했지만 문제는 음식인 것이었다.

파품 명란으로 만든 계란찜

  정말이다.

배달돼 온 파품을 받아서 짜잔~ 개봉한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돈 주고 산 제품이 예쁘고 정갈하지 않아서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고, 돈을 벌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게 뭔가?’ 하는 허탈함이 있었다.

 ‘그래, 일단 해 먹어 보자. 네가 얼마나 가성비 좋고 맛도 있는지 실체를 까발려보겠스~’

오기가 생겼다. 맛이 이상하기만 해 봐, 넌 당장  OUT 이야!

파품 반건조오징어와 꽈리고추가 만나 오징어볶음이 만들어졌다.

  남편이 구매한 상품은 반건조오징어, 건조오징어, 명란젓, 노가리였고 모두 파품이었다. 가격은 20~40% 정도 저렴하다.

물건이 배송돼 온 날은 명란계란찜과 꽈리고추오징어볶음을 만들어 먹었고 다음날에는 명란계란말이와 버터오징어구이를 해 먹었다.

  

  다를 바가 없다.

맛있게 먹었다.

 “거 봐, 다를 게 하나 없다 그랬잖아. 보기에 좀 그래서 그렇지 맛도 전혀 차이가 없고 싼 가격에 많이 먹을 수 있고, 얼마나 좋아?”

기세가 등등해졌다. 이런 걸 주문했냐고 구박할 때는 깨갱하더니 주름 좀 잡고 다리 꽤나 흔들고 섰다.

 “이건, 잘 산 게 아니라 음식을 잘 만들어서 그런 거라고. 다 죽어가는 재료에 내가 심폐소생술을 한 거라고, 알기나 하고 얘기하시지, 쩝...”

질 수 없다. 무조건 싸움은 우기고 봐야 한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안다. 나중을 위해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가장의 무게다.


못생겨도 맛은 좋구먼

  약간의 못 미더움과 께름칙함으로 시작한 파품의 세계 입문이었지만 이제는 ‘파품계 3년 차’가 되었다.

‘못생겨도 가성비 갑!’의 이점에 대해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널리 전파를 해야 하지만 호불호가 있고 음식이고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만 이점을 누리고 산다.

  가만 돌이켜보면, 친정엄마는 이미 이 세계의 달인이셨다. 엄마는 시장 문을 닫을만한 조금 늦은 저녁 시각, 장을 보셨다. 하루 종일 팔다 남은 재료를 떨이로 잔뜩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명란젓은 형체도 없이 다 터지고 양념도 안된 날것을 사기 위해 부전시장 자갈치시장을 다녀오셨다.

  

  엄마는 ‘모양은 못생겨도 맛은 같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음이고 그리 해서라도 식구들 먹성을 감당하려 하신 거다. 궁여지책(窮餘之策) 말이다.

  엄마의 마음을 통해서, 가장의 무게를 통해서 알게 된 ‘파품이라는 신세계’가 이제는 효율적인 구매패턴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못생겨도 웃기면 되고, 못생겨도 당당하면 되고,

못생겨도 맛있으면 된다, 본분(本分)만 지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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