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Feb 08. 2021

굴솥밥 가득 통영 굴꽃 피었네

인생도 굴솥밥처럼 따뜻하고 고소하고 달았으면 좋겠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김 씨 부인 앞으로 3kg에 달하는 통영산 깐굴이 배달됨으로써 이 무슨 변괸고? 무엇에 쓸려오? 주문을 한 남편에게 물으니, 양을 가늠치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 한다. 생굴을 다시 돌려보낸들 살아 다시 바다로 보내어질 수 없는 바,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포장을 펼쳐 대처할 방도를 궁리하였다. 며칠 전까지 푸른 남해 바닷물에 잠기어 동무들과 동거지정(同居之情)을 잇기로 약조하고 해류를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며 백년고락(百年苦樂) 하기를 바랐을 것인데, 예까지 끌리어 보내어져 구워지고 끓여지는 신세가 되었으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오호애재(嗚呼哀哉)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오. 한 송이 꽃 굴을 보호키 위해 켜켜이 하얗게 빛나던 껍질의 충절까지 잊지 않고 정성껏 다시 빚어 형형히 빛나는 꽃으로 피어나게 하리니, 부디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상향(尙饗).

 

  올 겨울, 유난히 굴을 탐한다, 생각하였는데 남편이 제대로 일을 냈다. 3kg이 얼마나 많은 양이라고, 굴밭에 풍덩~ 빠지고도 남을 양이다.

김장할 때 산 굴이 3kg이고 이후에도 1kg씩 두 차례나 굴무침을 해먹고도 그마저 떨어지니 말하는 것조차 번거로웠던지 나에게 일언반구도 않고 3kg이나 되는 굴을 주문을 했단다.


  아무리 굴이 제철이기로 이리 많이 사서 지나친 호사를 누려도 되나 하는 마음에 굴에게 제문을 지어 위로하고 음식을 하기로  것이다.


굴솥밥 가득 통영 굴꽃 피었네


 굴로써 이름을 날린 역사적 인물들과 내기 한 판 벌일 양이었나 보다.

1세기 중반 제8대 로마 황제 비텔리우스는 앉은자리에서 굴 1,000개를 까먹었다고 한다.*)

프랑스 앙리 4세도 전채로 굴 300개를 먹어치웠으며 자코모 카사노바는 목욕 후 아침마다 굴 50개씩을 까먹었다고 한다.

소설가 발자크,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역시 굴 덕후로 하루에 생굴 100개씩은 너끈히 먹었다고 하니 어느 날, 한 자리에 모여 ‘굴, 누가 누가 많이 먹나?’ 대회라도 열 일인데, 그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자 함이었을까?


  이왕 주문할 거 석화와 반반 주문을 했더라면 굴찜을 해먹을 수도,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고급지게 위스키에 생굴을 먹으며 집을 ‘오이스터 바(Oyster bar)’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생굴에 싱글 몰트를 쪼르륵 끼얹어 굴즙과 위스키가 섞인 국물을 쭈욱 의식처럼 여섯 번을 마시면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독특한 맛이 입 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통영 굴은 실하였다. 알이 굵고 옹골차다.

그러나 3kg을 다 해 먹기는 무리였다.

1kg은 굴무침으로, 700g쯤은 굴전으로, 300g쯤은 굴솥밥으로, 나머지 1kg은 안타깝지만 냉동실에 보관했다. 구정 지나 굴국밥과 굴튀김을 해 먹을 것이라 마음 먹었다.


<굴솥밥 만들기>

1. 불린 쌀을 참기름에 볶아준다.

2. 굴 역시 참기름에 구워준다. 굴이 탱탱해지고 고소해진다.

3. 다시마물에 쌀을 10분 정도 끓인다.

4. 한번 끓인 밥 위에 구운 굴과 채 썬 무를 올려 밥을 완성한다. 굴과 무를 처음부터 넣으면 나오는 수분에 의해 밥이 타기 쉽다.(무채는 보다 굵게 썰면 좋다)

5. 은행, 밤, 대추, 표고버섯 등을 함께 넣어도 좋다.

6. 양념장: 간장 마늘 파 깨소금 참기름 고춧가루 설탕 청양고추

 

  솥 가득 굴 꽃이 잔뜩 피어났다.

겨울 추위를 이기고 봄을 알리며 먼저 피는 매화의 모습과 향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알싸~한 바다 내음과 고소한 참기름 향이 뒤엉켜 올라온다. 짭조름한 양념장을 올려 쓱쓱 비비면 달큼한 무는 부드러운 굴을 휘휘 감싸고돌아 맑은 맛을 배가시킨다. 굴과 무가 모두 달다.



  굴은 터져 무와 함께 입 안에서 녹는다.

으~음, 정말 환상적인 맛이고, 마음을 위로하는 맛이다.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순간이다.

오이스터바, 어쩌고 모르겠고... 남은 1kg으로 한국 토종답게 굴솥밥을 또 해 먹어야겠다.


  인생도 굴솥밥처럼...

따뜻하게 퍼지고, 고소하게 섞이며, 달았으면 좋겠다. 눈이 스르르 감기듯 편안했으면 좋겠다.





*) <조침문: 조선 순조 연간에 유 씨 부인이 지은 국문 수필>의 제문 형식을 차용함.

*)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더난출판사 ; 로마 역사와 음식과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책으로 서문과 제1장에 굴 관련 글들이 흥미롭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p56~ ; 굴과 싱글 몰트는 찰떡궁합의 글을 편집함.


이전 05화 ‘보름달 품은 육회’는 유쾌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