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Aug 11. 2022

이 참에 쉬어 가자, 접는 김밥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하길 바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삼가 주십시오. 당신은 대변인을 선임할 수 으며, 질문을 받을 때도 다른 사람에게 일체 발언하게 할 수 습니다. 국선 대변인이 선임될 리 만무하며 일주일간 주거지역이 제한됩니다. 이 권리가 있음을 무조건 인지하십시오"


   병원에서 한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딸에게 나는, <니란다 원칙>을 설명해 주며 긴급 체포하여 자기 방에 수감하였다. 감염병 예방법 위반이 심히 의심되는 상황으로 일체의 접촉 관계를 차단하였다. 제가 무슨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한 홍길동이라도 되는 듯 쏘다니더니 이제부터 일주일 '아버지를 아버지라, 어머니어머니'라 부르지도 말고 못 본 체하라 명하였다


   그에 딸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옵니다, 어머니. 순진한 20대 청춘은 이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실천했을 따름입니다. 젊은이다운 열정으로 이 한 몸 불태워 보리라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탄탄한 육신이야말로 푸른 청춘의 무기이니, 까짓 거 부지런히 움직여 주겠노라 가열하게 다녔을 뿐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도 많이 먹고 세상 구경도 많이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유흥 자금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힘들다는 물류 알바도 서슴지 않았으니 부디 어여삐 보아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말하며 순순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몇 날 며칠을 먹고 자고 하였더라...


   계절은 바야흐로 여름, 젊음의 계절이다. 모든 만물이 무모하게 성장하고 태양이 끊임없이 세포분열해대는 여름. 게다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방학이니 친구끼리 작당하여 실행할 일도 많았으리라.

내 다 안다.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러하였다. 밤과 낮의 구별이 필요치 않았으며 집은 잊고 살았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다. 마음에 품은 것을 해보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니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고 힘들게 번 돈이 아까웠지만 최선을 다해 쓰는데 집중했다. 몸이 서너 개가 아닌 것을 잊고 추진체를 여기저기 장착하고 달리고 달려보았었지. 아, 이 무모한 청춘의 추진력이여.

그러니 지쳐 쓰러질 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자, 아픈 김에 더운 김에 쉬어 가자, 다 접고... 접는 김밥 해먹자. 준비하시고...

   지난 2월, 가족을 휩쓸고 간 코로나 1차 사태를 익히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신속히 대응을 했다. 물론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기에 잠깐 갈등은 했다. 목 통증 외에는 열도 없었고 다른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염치없는 일이다. 같이 사는 세상에서 나 좋자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사람들은 증상이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고 대충 약 털어먹고 놀러 다닌다고 하는데 그건 안될 일이다.


   그리하여 이 참에 쉬어가자, 모든 것을 접자 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만 자리를 잡고 캠핑을 할 수 있다는 자연휴양림의 더블데크 예약을 취소했다. 잠실**타워 전망대 티켓을 끊어놓고는 스카이브리지 투어를 하느냐 마느냐, 한다면 가족 모두 하느냐 아이들만 하느냐 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는데 고민 하나는 덜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야구경기를 못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딸과 아들은 친구들과 한두 차례 경기 구경을 다녀왔지만 식구가 같이 가는 건 거의 2년 만이었다. 마침 이정재 정우성의 시구 시타가 있다 해서 꽤 볼만 하겠다 싶었는데 물 건너 가버렸다.


입맛대로 먹고 싶은 재료 올려서 한 번, 두 번, 세번만 접으면 접는 김밥 완성.


   또다시 합숙훈련인 건가. 목, 금, 토, 일요일까지 장장 4일이다. 먹고 지낼 일이 당연 근심거리 1순위다.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거실의 텔레비전만 틀어놔도 후끈후끈인데 불 쓰는 일은 최소한으로 해야 했다. 계란과 베이컨만 굽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귀찮다 귀찮다 생각하니 김밥 마는 일조차 품이 드는 일로 여겨졌다. 김밥 옆구리 터트릴 일도 없으니 혼자 사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해 먹는다는 접는 김밥이다. 특히 내 것은 찐 양배추와 조린 꽈리고추를 활용해 보았는데 희한하게도 김밥에서 비빔밥과 쌈밥의 느낌이 났다. 이렇게 창의적인 음식을 보았나!


샌드위치 먹듯 손에 들고 먹으면 굿~ 뜨끈뜨끈 컵라면과 먹으면 굿굿~~ 이 조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접는 김밥은 요리 과정이  복잡하지 않아 간단하다. 수저 필요 없이 한 손에 들고 먹을 수 있으니 간편하다. 재료를 취향껏 개성껏 활용할 수 있어 창의적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색색의 재료들이 층층이 보이므로 지루하지 않다. 최고의 묘미는 별도의 레시피가 무의미하다는 것으로, 내가 선택한 재료들이 어울리면 어떤 맛이 날까 예측하고 상상하며 음식을 만드는 시간의 즐거움이다. 정해진 틀이 없다는 것에 무한 여유와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참에, 아픈 김에, 더운 김에 쉬어가자. 접는 김밥 만들며 하던 일, 하던 생각, 살포시 접어보자.

이전 06화 백김치를 보내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