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힌 맛있는 삶은 어떻게 살아가는 거지?
결혼하고 6년. 그간 나도 주방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신랑에게 “맛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 있으니 그건 바로 샌드위치다. 내 입에는 그냥저냥 먹을만하고 맛이 괜찮은데 , 햄과 치즈를 제외하고 만들다 보니 여간해서는 그의 입맛을 사로잡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괜찮았던 말은 “음 여기에 햄만 딱 들어가면 너무 좋겠다” 정도.
콩 패티를 만들어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건 하고 싶지 않았고 , 구매를 하자니 첨가물이 이래저래 들어가서 썩 내키지 않았다. 그렇게 도를 닦는 기분으로 6년을 소소하게 도전했다. 야채가 많이 먹고 싶어 수북이 쌓으면 먹기가 불편했고 , 또 그걸 생각해서 조금만 넣으면 너무 소박한 야채의 양에 시무룩해져 버렸다. 욕심을 내어 달걀, 사과, 오이, 토마토 등 먹고 싶은걸 가득 넣으면 이탈하는 친구들이 생겨 속상하기 그지없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김밥이 참 편한 패스트푸드와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판매하는 김밥처럼 속을 챙겨 넣으려면 생각 이상으로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것에 기함했다. 집에 남은 반찬들로 만들 것이 아니라면 정말 큰맘 먹고 만들어야 하는 메뉴 탑 쓰리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샌드위치도 결국엔 같은 이치였다. 맛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어느 날 문득 당근라페가 먹고 싶었다. 마침 당근도 많았고.
아니 그런데 또! 삶아놓은 병아리콩이 처치곤란이라 후무스도 잔뜩 만들어 둔 날이었다.
당근라페
*주의사항*
절대 칼로 채를 썰지 말 것. 굉장히 간단히 만들 수 있는데 칼로 채를 써는 순간 진입장벽이 높아진다.
1. 당근을 잘 씻는다
2. 채를 친다.
3. 당근 작은 거 4개에 소금 1 티스푼과 올리브 오일 2 아빠 숟가락을 넣는다.
4. 15분을 기다린다.
5. 일단, 화이트 발사믹 4 + 단거 2 + 홀그레인 머스터드 1.5 아빠 숟가락을 넣는다.
6. 레몬즙을 두른다. (저는 집에 꿀에 레몬 절여둔 게 있어서 국물만 쪼록 넣었다.)
7. 후추를 뿌려준다.
8. 먹어본다. 입맛에 맞춰 좋아하는 재료를 더 추가한다.
후무스
1. 유기농 병아리콩을 6시간 이상 불린다.
2. 30분 정도 삶는다.
3. 한 김 식혀서 병아리콩 1컵 , 통깨 3 아빠숟가락, 물 3 아빠숟가락 , 레몬즙 1.5 아빠숟가락, 올리브
유 4 아빠숟가락, 소금 1 티스푼, 다진 마늘 1 티스푼을 넣고 갈아준다.
4. 갈갈갈갈 갈다가 잘 안 갈리면 병아리콩 삶은 물을 추가적으로 조금씩 넣어본다. 실수로 통깨가 와르르르 들어가서 걱정 아닌 걱정을 했지만 더 맛있어진 느낌이 있었다.
5. 먹어보고 역시나 원하는 맛을 더 넣으면 된다. 개인적으론 통깨가 많이 들어간 게 맛있었다.
좋아하는 식빵을 구워서 한살림 참다래잼을 바르고 후무스-푸른 잎-당근라페-찐 달걀-사과-오이를 넣어주었다. 오이가 없다면 없어서 맛있고 있으면 있어서 맛있었다. 푸른 잎에 양상추 , 로메인, 루꼴라 다 넣어봤는데 다 각각의 맛으로 맛있었다. 근데 사실 이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취향이라 선뜻 맛있다고 다 권하기는 어렵긴 할 것 같다. 루꼴라는 사과와 찐 달걀과 짝꿍이 잘 맞으니 저렇게만 먹어도 괜찮았다. 늘 말씀드리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
자 그럼 내가 만든 (노 햄, 노 치즈)샌드위치를 어떻게 하면 신랑에게 편견 없이 먹여볼 수 있을까. 샌드위치를 내어주기만 하면 약간 몸서리를 치면서 가재 눈으로 쳐다보는 나의 사랑하는 신랑. 집에 유산지가 있어서 나름 포장을 해서 반을 갈랐다. 이러니까 좀 사 온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퇴근한 신랑에게 스윽 내밀자 "오 사 온 거야?" 라며 한입을 먹는데 ..
"아 , 만든 거야?" 바로 그런다 ㅋㅋㅋ
하, 이번에도 실패인가..
몇번을 더 베어먹으며 눈이 커지더니,
“와 사 먹는 거 같아. 와 이거 누가 오면 해줘도 되겠다. 아니다 이거 팔아보자”
“건강주스나 커피 내려서 같이 팔면 될 것 같은데?”
그의 최고의 극찬은 “사 먹는 맛 같아”인데 바로 오늘 그 최고의 극찬을 들어버렸다. 후후후
다음날, 그 극찬을 또 듣고 싶어 후무스와 당근 라페를 더 만들어 샌드위치를 켜켜이 쌓았다. 어디 하나 흘러넘치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우아한 맛을 내는 나의 후무스 샌드위치는 어쩌면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 안에 여러 자아가 살고 있는데 그만큼 할 일이 참 많다. 시간은 유한하고 할 일과 해야 할 일들이 균형 잡히지 않은 채 위태로운 날들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 울증의 정도가 깊어진 것 같아 육아 번아웃인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다. 불면의 날이 이어지고 , 어느 날은 숨을 토해내듯 쉬어야만 숨이 이어지기도 했다.
엄마로서 할 일들 그러니까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정돈하는 일과 내가 '나'로 하고 싶은 일들 그러니까 책을 읽고 , 기록을 하고 , 영상을 만들고 , 공부를 하고 , 글을 쓰고, 운동 등등 이것들을 다 해내고 싶은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이것저것 가득담으려고 했던 나의 샌드위치가 무너져 버린 것처럼 삶의 균형이 어그러졌다.
아아.. 샌드위치보다 못한 나의 삶이여.
변명 갔고 좀 더럽지만 , 나를 포기하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았다.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날들에 나까지 챙겨야 하다니.. 나에게 ‘내’가 짐처럼 느껴졌다. 하하 내가 짐이라니.
머리는 대충 2-3일에 한번 감았다. 어차피 묶으면 그만이니까. 외출할 때는 모자를 쓰면 그만이니까. 아직도 머리가 많이 빠지는 시기라 머리를 풀고 잠시라도 있음 난리가 난다. 바닥에 어찌 머리카락이 날아다니는지. 그러니 질끈 묶고 있는 머리는 꿩 먹고 알 먹고 ,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일석이조였다.
하루 종일 집에서 만보를 걷는다. 발바닥이 괜찮을 리가 없지. 4년의 시간 동안 발바닥이 많이 갈라지고 굳은살이 생겼다. 양말을 챙겨 신는다고 해도 아이들 씻기고 똥 치우고 하면 금세 물에 엉망이 되어버려서 불편했다. 그러나 보니 나에 대한 건 대부분.. 아니 전부 다 대충대충 었다.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럴 기운도 없었다.
귀찮고 소모적이라 생각되었다.
나를 돌보는 대신 앉아서 책을 한 줄 더 읽고 싶었다. 뭐랄까 다른 세상으로 타임워프 할 수 있는 도피처라 생각이 되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은 책상 옆에 탑으로 쌓여 있다.)
새벽 12시.
이게 바로 (뒤늦은) 산후우울증으로 가는 단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냅다 욕실로 가서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내 모습을 마주하니 꼴이 참 엉망이었다.
문득 '머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이 아이 둘을 봐준 덕에 바람이 몹시도 매섭게 불던 날 따듯한 바람이 일렁이는 미용실에 앉아 책도 보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파마를 했다. 얼마만이지. 편안히 누워 기분이 녹아지는 미온수의 물에 두피 마사지와 함께 머리를 감겨주는데 이게 무슨 호사인가 싶었다. 발끝까지 시원해진다.
머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탁 트인 통창이 보이는 카페에 홀리듯 들어갔다. 멍하니 앉아서 꼰빠냐를 마셨다. 메뉴판에 따로 없어서 사장님께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을 올려줄 수 있으신가 물었더니 흔쾌히 추가금을 받고 해 주셨다. 진득하게 기분이 가라앉는 날엔 이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단짠단짠처럼 , 단쓴단쓴 이라고 해야 하나? 쓴단쓴단인가? 진하고 씁쓸한 에스프레소가 먼저 들어오고는 씁쓸한 입안에 달콤한 휘핑이 호록 딸려 들어온다.
돌아오던 길에 꽃이 그려져 있는 예쁜 양말을 한 켤레 샀다. 동물에게 해가 가지 않는 면양말이라고 했다. 꽃이 잔뜩 그려져 있는데 보기만 해도 봄이 온 것만 같다. 정갈하게 오랜 시간을 들여 반신욕은 못하더라도 , 족욕을 하고 크림을 발라 예쁜 양말을 신겨주어야겠다. 고생하는 내 발에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곤 , 토하듯 글을 적고 위로받는 글들을 읽어야지.
쌓여있는 집안일들은 내일 나에게 부탁해야겠다.
이러다 보면 어느 날인가 잘 싸인 샌드위치 같은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