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아들과 맛있는 거 먹고사는 날들
나의 사랑하는 1호 아이에겐 아토피가 있다. 만 2세까지는 몰랐다. 그땐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갈 때에도 아이는 도시락을 싸서 나갔고 간식도 과일이나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의 구황작물이나 유기농 현미 뻥튀기 혹은 집에서 만든 핫케이크 등을 주었다. 그러다 아이의 인지가 깨어지면서 외부의 음식들에 대한 갈망이 시작되었다.
즉 , "나도 줘! 왜 나만 이거 먹어!" 이런 리액션들.
어느 날 시댁에 다녀온 아이가 오른쪽 팔이 벌겋게 되어있었다. 그 전에도 몇 번 그러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번엔 팔과 쇄골 쪽까지 그러길래 아이에게 물으니 할머니 과자를 먹었단다. (아빠는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다며 호언장담을 했으나 사실 판명결과 '거짓'인 걸로..)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쌀과자였다. 아이는 벌겋게 올라온 팔을 밤새도록 긁었다. 그리고 만 4세가 넘은 지금은 양쪽 팔과 목 그리고 귀 뒤를 주로 공략해서 긁는 중이다. 정말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해버렸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하, 나의 아이는 아토피구나.
보통 저렇게 많이 긁고 벌겋게 올라오는 날은 대부분 외부음식을 먹는 날이다. 생협에서 판매하는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의 사과는 2-3개를 먹어도 괜찮지만 , 일반 마트에서 판매하는 걸 여러 날 먹으면 아이는 진물이 나도록 긁는다. 이런 날에는 2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 보습을 신경 써서 해주고 상처가 심해 보이는 곳은 리도멕스를 얇게 도포해준다. 습도를 잘 맞춰주고 섭취하는 식품에 더욱 신경을 쓴다. 그러면 보통 며칠 내로 벌겋게 올라온 게 가라앉고 반흔만 남게 되지만 그 반흔은 보통 몇 주가 지나야 없어진다. 병원에 가자는 신랑의 말에 나는 집에서 식단관리를 하자했다. 일단 집에서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고. (간호사 한 번만 믿어줍쇼.)
오랫동안 아토피로 고생하다가 나아진 아이와 부모님을 보면
1. 매번 바르던 스테로이드 연고에 의존하지 않고
2. 식단을 바꾸고
3. 체내 바디 버든을 줄이는 선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 아이도 과자와 빵 그리고 케이크를 참 좋아한다. 가정보육을 지속하기 때문에 식품첨가물이 범람하는(?) 과자, 주스 , 빵 등을 매번 접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친척집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했을 때는 적당한 타협선이 필요하다. 아이가 주눅 들지 않게 그러나 과하지 않는 그런 적정 선. 예를 들어 이런 거다. 2호의 돌을 기념하여 가족사진을 찍던 날이었다. 어느 정도 사진은 다 찍은 상태였으나 1호의 독사진만 몇 장 파바박 하고 찍고 하면 끝날 것 같은데 이 친구는 지쳐버렸는지 미적거리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제공하는 크로플을 조금 주겠다 약속해버렸고 로케트까지 행복해진 아이는(아이의 최상급 표현이다. 로케트까지!) 성공적으로 사진 찍기에 성공을 하였다.
결론은 말해 뭐하나.. 로케트까지 행복해하던 아이는 밤새 울면서 팔과 귀 뒤쪽을 긁었다. 진물 과 피가 나도록. 크로플이 이토록 위험한 음식인 줄 그날 처음 알았다.
과자는 생협 매장에서 탈지분유와 버터가 들어가지 않고 가급적이면 유탕처리를 하지 않은 것들을 가끔 사주고 , 빵은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하는 곳에서 통밀과 소금 등만 들어간 통밀 식빵을 사주는데 정말 가끔 특별한 날이면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소금빵, 소보로, 밤식빵, 일 년에 한두 번 딸기 케이크를 함께 먹는다.
버터와 유제품의 콜라보가 환상적으로 이루어진 케이크 먹던 날. 아이는 흥분을 멈출 줄 몰랐고, 끊임없이 케이크를 흡입했다. 이런 여러 날들을 지켜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는 환경호르몬과 관련된 아토피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같은 밀가루를 먹어도 유기농 밀가루엔 크게 반응을 하지 않았고 미국산/캐나다산 등의 외국산 밀가루는 섭취하면서부터 엄청나게 긁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글루텐보단 농약 등과 같은 것의 유무인 것 같다.
소, 돼지, 닭도 대부분은 벌겋게 되지만 그나마 생협에서 골라서 사 먹인 것들에는 반응이 덜 했다. (없는 게 아니고 '덜'했다) 달걀도 건강한 먹이와 건강하게 길러진 닭의 것은 괜찮지만 마트의 것을 먹으면 바로 올라왔다.
그러나 탈지분유, 치즈, 버터는 유기농의 유무와 상관없이 긁는데 이는 그 안에 들어있는 프탈레이트(환경호르몬의 일종)와 다이옥신 그리고 우유를 농축시키면서 더욱 농도가 짙어진 각종 약물들(호르몬제/항생제 등) 축사 근처에 뿌려진 살충제등 때문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사실 환경호르몬이 면역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과도 면역으로 인한 아토피와 알레르기가 늘고 있다는 연구가 있기는 하다.
1.
1993년 영국에서 실시한 전체 식품 조사에서 지방성 음식에 들어있는 프탈레이트의 양을 조사해 본 결과 육류와 물고기, 알류, 유제품 모두에서 프탈레이트를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양이 들어있는 제품은 치즈였다. 리처드 샤페 박사와 존 섬터는 사람들이 섭취하는 프탈레이트의 양이 쥐의 고환의 크기와 정자 수를 줄인 프탈레이트와 비슷한 양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육류 섭취량이 많고 가공식품과 포장된 음식을 많이 먹으면 그 수치는 훨씬 빠르게 증가한다.
출처 <환경호르몬의 반격>
2.
프탈레이트의 하나인 DEHP는 생식력 손상과 발달장애 유발로 인해 유럽(EU)에서는 사용이 금지됐다. 또한 프탈레이트는 알레르기, 천식, 습진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인식 기능의 저하, 사회성의 감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자폐증, 소년의 남성성 감소 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환경과 공해>
;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을 가공할 때 유연하게 만드는 가소제로 대체로 PVC를 만들 때 들어간다. 아이들의 장난감, 화장품, 바닥재 등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임신 시 다량의 프탈레이트 노출은 4세 유아의 자폐와 연관이 깊었고 4세-8세 아동의 노출은 8세 이상 자폐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가 있다. 최근 연구에서 1-2세 아이들의 프탈레이트 농도가 가장 높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는데 이는 아이들이 기어 다니고 , 모든 입으로 가져가서 물고 빠는 행동 때문이라 예측된다.
3.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미국 뉴욕대 아놀드 섹터 교수팀이 지난 95년 애틀랜타, 시카고 등 미국 5개 도시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돼지고기와 쇠고기, 닭고기, 버터, 치즈, 우유 등 총 12개 제품을 검사해 다이옥신류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돼지고기의 경우 다이옥신류가 1g당 11.8pg(1 피코그램은 1조 분의 1그램) 검출됐다. 이 수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벨기에산 돼지고기에서 검출된 다이옥신(1g당 1pg) 양의 11배가 넘는 것이며, 세계 보건기구(WHO)의 1일 섭취 허용기준인 0.005pg/g의 2천360배에 달하는 것이다. 쇠고기에서는 11.6pg, 닭고기는 2.4pg가 각각 검출됐고 특히 버터에서는 62.8pg이 검출됐으며 달걀은 41.4pg, 핫도그에서도 30.9pg의 다이옥신이 나왔다. 이와 함께 국내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인 DDE도 최고 1090pg/g(핫도그)에서 433pg/g(쇠고기), 206pg/g(돼지고기), 149pg/g(닭고기)이 검출됐다.
<1999년 발표자료>
; 2005년 뉴질랜드 쇠고기에서 농약 검출
2006년 미국산 쇠고기에서 다이옥신 검출
2008년 아일랜드 돼지고기/쇠고기에서 다이옥신 검출
2008년 칠레산 돼지고기에서 다이옥신 검출
; 다이옥신은 강력한 발암물질이며 , 환경호르몬이고 다양한 질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4.
정 교수는 "다이옥신과 같은 환경오염 독성물질에 의한 아릴탄화수소 수용체 활성화와 자가포식 작용 간의 상호작용이 건선과 관련된 피부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분자과학 국제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에 게재됨>
5.
락토파민을 돼지에 먹이면 지방이 감소하고 단백질이 늘어난다. 도축 한 달 전부터 먹이면 살코기 생산이 현격히 늘어나는데 미 식품의약국(FDA)도 사용허가를 내줬다. 그럼에도 유럽 식품안전청(EFSA)은 안전성 검사에 문제가 있다며 시장 문을 닫아버렸고, 내장육을 즐기는 중국 역시 락토파민이 장기에 축적된다며 미국산 수입을 금지했다. 한국은 락토파민 논란에 관대한 편이다. 돈육 수입은 논란 없이 허용됐고, 락토파민을 주성분으로 개발된 사료첨가제 ‘페이린’ 역시 막대한 양이 사용된다.
정작 락토파민에 예민한 나라는 미국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안전성 검사의 제한성, 다우너(앉은뱅이) 등 동물 행동장애 유발을 지적하고 있고 치폴레, 홀푸드처럼 락토파민 돈육을 취급하지 않는 곳도 늘고 있다. 사실 우리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당부하는 락토파민 취급 시 ‘주의사항’은 예사롭지 않다. “방호복, 보호안경, 분진마스크를 착용하고, 심혈관계 질환자는 노출에 각별히 조심하라.” 이런 걸 먹여 키운 먹거리는 안전한 걸까.
<2020.12.06 한국일보 이태규 논설위원 tglee@hankookilbo.com >
아이가 본인의 상처를 부끄러워하며 상심하는 날이 반복되면 그릇된 신체상이 생길 것 같아 “우리는 더 건강한 걸 찾아 먹으면 되는 거야! 우리는 더 건강해져서 슈퍼파워가 생길 거야! 면역력 짱! 절대 팔의 상처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 걱정 마! 엄마가 너 먹을 수 있는 거 찾아줄게!”라고 늘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맞는 쿠키를 찾기는 쉽지 않았고 아이의 실망감이 커져만 가는 것 같아 집에서 쿠키를 굽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 심각한 베이킹 똥 손이라 쉽지 않았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비건 베이킹 책중에서 내가 하기 쉽고 아이가 먹었을 때 괜찮았던 것들을 추려내서 종종 시도를 했다.
얼마 전엔 생강쿠키를 공룡모양으로 구웠었고 , 애플파이도 만들었었다. 계량 실패로 공룡 쿠키는 너무 달게 되었고 애플파이는 더 얇게 밀었어야 되는데 좀 두꺼운 감이 있어 ‘역시 나는 똥 손이구나’를 되뇌고 있었는데 아이는 너무 달콤하고 맛있다며 공룡 쿠키를 또 만들자고 노래를 불렀고 애플파이는 사과가 달달하게 조려져서 흡입을 했다.
역시나 달콤한 게 최고구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아이와 같이 예수님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역시나 아이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집 근처에선 살 수가 없었다. (찾기는 했지만 구매하러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리다가 유기농 식빵을 하나 구입하고는 바나나 두부 크림을 만들었다. 이름만 들으면 “잉? 두부? 두부 크림이라고? 우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편견을 버리고 일단 시도를 해본다면 어쩌면 새로운 미각의 길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처럼.
바나나 두부 크림.
1. 두부 반모를 데쳐서 물기를 제거한다.
2. 잘 후숙 된 바나나를 한 개 정도 넣는다.
3. 소금 2g+당류(꿀, 설탕 등) 20g을 넣고 이잉-갈아준다.
이게 원래 레시피였는데 , 만들어보니 영 이맛도 저 맛도 아닌 거 같아서 변경된 나의 레시피는
1. 데쳐서 물기를 뺀 (유기농 혹은 무농약) 두부 반모
2. 잘 후숙 된 (유기농 혹은 무농약) 바나나 두 개
3. 소금 반티 스푼 + 레몬청 국물만 세 숟가락
일단 이렇게 갈아보고 더 달게 먹고 싶으면 꿀이나 레몬청 국물을 더 넣어주면 된다. 바나나 맛이 부족한 것 같으면 바나나를 더 넣으면 되고. 홈메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런 식으로 내 입맛에 맞게 레시피를 바꾸는것이 매력이 아닐까. 아! 집에 핫초코 가루가 있다면 초코크림까지 가능하다.
여기에 두부 2/3 정도 양의 생캐슈너트을 6시간 정도 불린 다음에 같이 갈아주면 더 고소해진다고 한다. 지난주에 (유기농) 생캐슈너트을 샀는데 아직도 도착을 하지 않아 시도는 못해봤으나 곧 해볼 예정이라 기대가 된다.
유기농 식빵에 처덕처덕 크림을 대충 바르면 케이크 만들기 끝. 참 쉽지요.
사실 요거트를 사다가 바르고 참다래나 딸기를 올려볼까도 했지만 아이가 아토피 극성수기였기 때문에 요거트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완성된 크림을 우리 집 초딩입맛 신랑에게 스윽 내밀어봤다. 긴장되는 순간. 저 '입맛의 문턱을 넘어야 앞으로 생크림 대신 이걸로 정착을 할 텐데'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제발, 제발, 제발!!!!
“와 , 대박. 이거 뭐야? 뭔데 이렇게 맛있어?”
-응 그거 두부야
“두부라고? 이게? 여기에 두부가 들어갔다고? 대박 맛있는데?”
됐다. 크으 됐어!
그렇게 우리 집의 케이크는 바나나 두부 크림으로 정착하기로 했다. 며칠 뒤 아이 생일인데 그때엔 딸기도 곱게 올려줘야겠다. 곧 유기농 아몬드 가루도 도착을 하는데 아몬드가루 40g + 통밀가루 100g +(알루미늄 프리) 베이킹파우더 4g + 소금을 넣고 진짜 케이크 시트를 구워볼 생각이다. 케이크 굽는 틀을 과불화 화합물로 코팅된 것이 아닌 유리로 된 걸 구매해 두었는데 부디 성공하여 훈훈한 후기를 들려드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3일 뒤 12월 28일의 후기 : 대성공
엄마 진짜 맛있다. 우리 또 해 먹자!라고 하던 아이와 쌍엄지를 추켜올리던 신랑.
두부 바나나 크림에 꿀을 더 넣고 초코 가루를 넣었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시트에 올려 먹어봤는데 너무 달지 않은 다크 초콜릿 케이크에 바나나향이 나서 내 입맛엔 딱이었다. (그러나 신랑께서는 싫다고 하셨지)
이렇게 또 아이와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어나서 기쁠 따름인데 , 우리 아이도 부디 벅벅 긁었던 아토피의 추억이 아닌 케이크를 만들어 먹던 따듯한 날들로 기억을 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