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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Jan 07. 2022

식사수발일기 05. 플렉시테리언의 삼겹살양배추볶음

분수에 넘치는 삶에 대하여


나는 플렉시테리언이다.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
채식을 하면서 우유·달걀·생선·닭고기까지 먹는 준채식주의자를 이른다.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채식을 하지만 아주 가끔 육식을 겸하는 준채식주의자를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채식주의자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말이 거창해서 플렉시테리언이지 , 그저 식단에 유제품과 육류를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 나에게 신랑은 종종 “절밥”을 먹는 것 같다 이야기를 건넨다. 나름 모태신앙인데.. 


연근무침은 마요네즈가 아닌, 두부캐슈넛크림에 참깨를 잔뜩 갈아 넣었다. 


허허. 그런 나의 길티 플레저는 쫄깃쫄깃 오동통통 너구리와 극도의 스트레스로 짓눌린 날의 생크림 케이크와 양념치킨 그리고 한여름의 냉채족발이다. 이런 음식들을 좋아하지만 지속적으로 식단을 유지하려고 함은 첫째는 당연히 건강이요 (극악의 생리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둘째는 손쉽게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이유 때문이다. 한 명의 완전한 채식주의자보다는 하루 한-두 끼 채식을 하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환경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더욱 강력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우리 집엔 네 명의 환경운동가가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 절밥이라 불리는 집밥을 차려주며 지구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참 기쁘고도 슬프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지구환경이 원통하여)


혹여나 비건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 있으시다면 김한민 님이 지으신 <아무튼 , 비건>이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어느 날 친정엄마가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한 손에는 딸기를 다른 한 손에는 삼겹살을 들고 잠시 들리셨다. 아이가 할머니를 반기며 뛰어갔는데 어째 딸기를 더 보고 싶었던 것 같았던 건 느낌이었겠지. 엄마가 잠시 아이들과 놀아주시는 사이에 점심을 했다. 이젠 한 시간 정도만 누군가 아이들을 봐준다면 방청소 , 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 등등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노련한 주부의 세계에 발을 담가가고 있달까. 대단하군 나 자신.


점심은 삼겹살양배추볶음으로 정했다. 우리 집의 식사원칙 중 하나는 고기를 먹기 위해선 그 이상의 야채를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쌈을 싸 먹자니 영 귀찮은 기분이라 대부분은 양배추나 청경채를 한가득 넣고 볶아준다. 그런데 , 초입에 플렉시테리언 이야기 실컷 해놓고 삼겹살 굽는 레시피를 막상 적으려니 기분이 좀 그렇긴 하네.   




삼겹살 양배추볶음

1. 스텐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굽는다.

2. 삼겹살을 자른다.

3. 양배추와 양파를 넣고 소금을 뿌려 볶는다.

4. 양배추의 숨이 죽으면 된장 1 티스푼 정도를 넣고 대충 뒤적여준다. 된장이 삼겹살의 냄새를 좀 잡아준다.

5. 불을 끄고 후추를 넣어준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야채를 많이 먹고 싶다는 욕심에 양배추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버렸다. 숨이 죽는 걸 감안하며 '이 정돈 괜찮아! 이젠 이런 것 까지 염두해서 야채를 넣다니! 많이 컸군 후후후 아주 프로야 프로.'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욕심을 차고 넘치게 한가득 때려 넣었다.  당연한 결과로 덜그럭 덜그럭 볶을 때마다 이탈하는 양배추가 생겨났다. 


분수에 넘쳤나 보다.




이탈한 양배추가 나를 흘끔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이 덜컥 내려간다. 요즘 간장종지만 한 내 마음의 그릇이 자꾸만 요동치고 있다. 아마 분수에 넘치는 삶이 될까 봐 이러저러한 염려들에 담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다. 간호사의 삶은 고달팠지만 급여는 쏘스윗 너무 달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자금 대출을 갚는 데 사용되어 속상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습득한 지식의 값인걸. 신랑은 정말 성실히 일을 했었다. 그리고 그 모은 돈으로 하고 싶었던 태권도장을 차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하던 신랑은 늘 빛이 났다. 발차기를 칼각으로 어찌 그리 멋지게 잘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 단정한 빌라에서 시작했다. 뚱뚱하고 다정했던 나의 고양이 참치와 함께 잔잔하고 고요하게 흘러갔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몇 번의 거처를 옮기는 사이 참치는 고양이 별로 갔고 식구가 둘에서 넷이 되면서 볕이 잘 드는 지금의 집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집에 이사를 오자마자 집값이 천정부지로 높아져버렸다는 점이다. 


고작 2년이었을 뿐인데. 


고작.


감사히도 전세계약금을 5% 올리는 조건하에 최근 계약을 연장했지만 앞으로 2년 뒤는 어째야 할지 캄캄할 뿐이다. 그저 열심히 살아냈을 뿐인데 주거의 안정이 흔들리고 있는 이 시간이 참 고달플 따름이다.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다. 주변에선 연신 청약에 꼭 넣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가격으로 이런 새집을 살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 것이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집을 못 살 것이라 했다. 입주가 7-8년 정도가 남은 사전청약이었고 당첨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 사이 이사를 한번 내지 두 번을 해야 할 테니 이사비와 대출이자를 계속 납입할 테고 거기에 청약된 집의 계약금 및 잔금과 대출이자 또한 같이 지불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거야 말로 내 그릇에 넘치는 일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신랑이 투잡을 뛰던 혹은 내가 다시 직장으로 나가던 그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할 텐데 그게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러기엔 앞으로 하는 대다수의 결정이 '집'과 관련되어 결정이 될 것만 같았다. 결정권이 ‘내’ 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집’ 그러니까 ‘돈’으로 옮겨가는 것만 같았다. 돈에 내가 먹혀버릴 것 같다. 평생 전세에 살 수는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바싹바싹 말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토록 퍽퍽하게 살아가야 할까. 내가 아직 세상을 덜 아는 걸까.


혹, 저기 나가떨어져 버린 양배추가 내 모습은 아닐까.

혹은, 프라이팬이 분수에 맞지 않게 많은 양배추를 끌어담으려다 넘쳐버린 것처럼 나도 분수에 넘치는 삶 그러니까 좋은 신도시의 아파트에 살아가려는 욕심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지 집은 누구나 있어야 하지. 어떤 집이냐가 문제지.


아...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볕이 잘 드는 내 집에서 다정하고 소박하게 아이들과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이게 그토록 큰 꿈일까. 덜 먹고 , 덜 쓰고.. 소비를 줄이더라도 아이들이 엄마를 꼭 필요로 하는 이 시기에는 함께 집에서 굴러다니겠노라 삶의 방향을 정했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걸까.


정말 모르겠다.


일단 밥이나 먹자.



고기와 양배추를 함께 먹기 싫다는 아이에게 “이것 봐봐! 고기가 양배추 이불을 덮었어! 추운가 봐! 너도 이불 덮어볼래?”라고 꼬시니 잘도 먹는다. 아직도 이런 게 통하다니 감사하여라.


밥에 집중하자. 

배가 든든해지면 다시 머리가 돌아가겠지.



맛있다며 저녁에 또 해달라는 아이의 요구에 저녁에도 남은 삼겹살을 구웠고 ,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며 또 분수에 넘쳐버리게 양배추를 넣다가 바닥에 잔뜩 흘려버렸다. 그래 아무래도 맞벌이는 아닌 거 같다. 아이들 곁에 있어줘야지. 내가 느꼈던 부모의 부재를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다. 다음번 이사 때는 집을 더 작은 곳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청소하긴 쉬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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