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의 다른 언어들에 대하여
예전엔 콩이 그렇게 싫었었다. 엄마가 밥에 콩이라도 넣는 날이면 난리가 났었다. “ 콩 귀신!! 콩 귀신이 나타났다!!!!”하며 실컷 호들갑을 떨었다. 과거의 나는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요즘엔 없어서 못 먹는데 .. 최근 들어 느낀 건 발동동거리며 피,땀,눈물 흘리며 밥을 차려줬는데 그 귀한 밥상에다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달면 그게 참 꼴(?) 보기가 싫더라. 먹는 게 싫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가 차려준 거니까 그래도 맛있게 먹을게요. 그런데 엄마 저녁엔 떡국 해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옛날의 우리 엄마는 내가 얼마나 꼴 보기가 싫었을까. 이 자리를 빌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미안 엄마.
우리 집은 가급적이면 콩으로 된 것들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을 하는 중이다. 식탁에 올라오는 육류와 유제품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데, 두부는 가급적이면 무농약 콩으로 만든 것을 사 먹으려고 하고 두유는 성분표를 보고 국내산 < 무농약 < 유기농 순으로 선택하되 첨가물이 적게 들어간 것 까지 확인한다. 무첨가라고 해도 성분표를 보면 희한한 것들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으니 반드시 성분표를 확인해야 한다. 딱 봐서 이게 뭐지? 싶은 첨가물이 들어있고 외국산의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면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다 보면 두유의 선택폭이 확 줄어들어 거의 콩물 맛이 나는 것들만 남게 된다고 보면 된다. 아주 슬픈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랄까. 사실은 집에서 밤에 자기 전에 콩을 물에 불려놓고 아침에 일어나서 바글바글 15-20분 정도 끓여 한 김 식혀 갈아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으나 귀찮다. 너무 귀찮다. 그러나 밤에 콩을 불리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날이 많다.
유기농 병아리콩을 밤에 불려두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소금을 넣고 25-30분 정도 삶아주면 오고 가며 주워 먹을 수 있는 훌륭한 간식이 된다. 물론 밥에 넣어도 좋고 렌틸콩과 함께 샐러드에 넣어도 좋다.
어느 날엔 갑자기 삘을 받아서 두부틀을 광속으로 구매하곤 아이와 함께 두부를 만들었다. 아이가 생각보다 신기해했는데 아무래도 콩이 두부로 바뀌는 과정에 흥미를 보였던 것 같다. 두부틀을 사용하는 게 귀찮다면 잘 불린 콩을 잘 갈아서 면포에 걸러주고 콩물을 끓이다가 간수 (인터넷을 통해 구매가 가능하다. 혹은 집에서 식초와 소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구입을 했다)를 넣어주면 몽글몽글 귀여운 순두부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두부를 만들고 나면 비지가 나오는데 그걸로 쿠키를 가끔 굽기도 하고 비지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이 정도면 만능엔터테이너상을 줘도 될 것 같지 않은가? 부러운 콩. 넌 뭐든 다 될 수 있구나.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콩을 삶고 요리를 한다.
종종 아이에게 콩을 많이 먹이면 ‘성조숙증’이 올 것이라 걱정 어린 말을 건네는 분들도 계시기는 하지만, 유제품과 기타 화학제품(환경호르몬 혹은 바디 버든)에 의해 생기는 성조숙증이 더욱 위험할것이라는 결론하에 '콩'은 그저 맛있게 먹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콩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그럴듯해서 솔깃할 정도다. 어떻게 전혀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그런 말들을 조작해낼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내 딸들에게 콩을 먹이면 성조숙증이 올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할수록 생리도 빨리 시작한다.(Gunther, Karaolis-Danckert, et al. 2010) 또한 생리를 일찍 시작하면 유방암 위험이 증가한다.(Cheng, Buyken, et al. 2012) 콩에 들어있는 이소플라본 Isoflavone은 사춘기의 지연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유방암의 평생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Cheng, Remer, et al. 2010)
출처 : <비만의 종말>
콩밥을 했다.
검은콩과 현미를 한참 불려서 압력밥솥에 올려주니 칙칙 칙칙 - 잘도 익어서 부드럽고 고소했다. 밥을 본 신랑이 작게 소곤거렸다. “ 힝 나 콩 좀 그런데..” 내가 어금니를 물고 눈치를 주자 불똥이 아이에게 향했다. 신랑이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 : 시온아 너 콩밥 좋아해?
시온 : 아니 안 좋아해
아빠 : 근데 지금 왜 그렇게 잘 먹어?
시온: 나 콩 안 좋아하는데 엄마가 해줬으니까 맛있게 먹어보려고.
아이에게 엄청난 사랑고백을 들어버렸다. “엄마 사랑해! 우주만큼 별만큼 달만큼 해만큼 사랑해!”라는 말도 좋지만 이런 생활밀착형 사랑고백이 난 너무 좋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지만 타인을 위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 행위를 하고자 하는 노력. power of love가 바로 이거구나. 크으 오늘도 아이에게 하나 배운다.
사전에서 사랑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이런 정의를 염두에 둔다면 ,
나의 삶엔 사랑고백들이 넘치고 또 넘쳐왔다.
‘사랑해’의 다른 언어들.
나는 생리통이 참 심했었다. 20대의 여름 , 어느 날과 같이 생리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날은 눈앞이 하얗게 되고 아득해지더니 기절을 했다. 그리고 바로 순간에 아빠의 거칠고도 강약을 조절한듯한 손이 내 뺨으로 날아들어왔다. 그날처럼 다급하게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날 엎어서 차로 옮겨주던 아빠의 온기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어떻게든 빠르게 병원에 도착하려던 아빠의 엑셀 밟던 소리와 운전대를 꽉쥔 손을 기억한다.
“나 브런치에 글 쓴다. 작가님이라고 불러줘.”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말에 “응원할게” 라던 남동생의 더 오글거리는 말들.
새벽 1시가 돼서야 퇴근한 신랑이 “오늘 아침부터 아이 둘 보느라 고생했어. 정말 고생 많았어. 아침에 애들 내가 볼 테니 조금 더 자”라며 날 다독이며 해주는 이야기들.
그리고
엄마,
엄마..
엄마....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 친정엄마가 내 삶 속에 녹아있던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어 간다. 얼마 전 아이가 하는 행동이 위험해 보여 언성을 좀 높였던 날이 있었다. 내 마음이야 ‘걱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겠지만 언성 높은 이야기를 듣던 당사자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말투가 왜 그래?”
응? 말투가 왜 그러냐니. 이놈 시키. 내가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널 사랑해서..?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수많은 날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한테 등짝을 맞던 날, 속사포로 잔소리를 듣던 날, 한소리 들을 것 같아 귓구멍을 닫아볼까 했지만 엄마의 깊은 한숨만을 듣던 날.
초등학교 고학년 때 IMF로 인해 나와 동생은 친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 엄마는 짐 하나 달랑 지고 미국 달러 샵에 가서 일을 하셨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아이 둘을 떼어놓고 얼마나 모진 고생을 하셨을까. 그때의 나이 30대 중반,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 그러나 비슷한 나이임에도 나는 엄마의 고됨과 힘듦의 무게를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있었다. 아직도 그날의 기분이 선명하다. 서글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엉켜서는 한참을 멍-했던 것 같다.
엄마가 내게 물었다. "엄마 보고 싶었니?"
그리고 내가 답했다. "응 , 엄마밥이 먹고 싶었어"
그 후로 엄마는 내가 아침에 지각을 하는 그 와중에도 국에 밥을 말아서 차에 가지고 타셨다. 엄마는 운전을 했고 나는 우아하게 식사를 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다 먹고 발치에 둔 스텐 국그릇과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참 경쾌했었는데 ,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엄마는 늦잠만 자던 게으른 딸을 떠올릴 테지만. 여하튼 엄마는 우리와 떨어져 있었던 그 시간 동안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을 그 밥그릇에 담았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이렇듯 삶에 넘치는 '사랑해'의 또 다른 언어들을 잘 알아차려서 차곡차곡 담아가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 팍팍한 세상살이에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오늘도 부단히 모든 것 속에 녹아있는 사랑을 알아차리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곤 충분히 그 사랑을 누려야지.
결론 : 콩 삶아 먹으면서 참 희한한 생각을 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