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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Nov 12. 2023

멕시코 혁명의 모습들

20세기 초 멕시코의 풍경

이번 화에서는 잠깐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면서 멕시코 혁명기를 장식했던 수많은 그림과 사진, 예술, 건축에 대하여 소개하려 합니다. 20세기 초 사진기부터 철도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문명이 대부분 등장했기 때문에, 멕시코 혁명의 기록물들을 보면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시절, 태양은 우리 부족의 땅 안에서 뜨고 저물었다. 오늘날 우리의 전사들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의 땅은 누구의 것인가?
- 시팅 불, 라코타족 추장


단 30년 만에 한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1890년, 미국은 서부개척시대의 공식적인 종결을 선언했습니다. 카우보이와 원주민, 자유의 시대는 저물었고 철도와 전기, 석유가 주도하는 거대 자본과 공권력의 통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물론 1920년이 넘어서도 산맥이나 숲에 막혀있는 지역은 개발에서 낙후되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주요 도시들은 전보와 철도, 신문 정도는 갖추고 있었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1. 철도


멕시코의 철도 부설은 외국인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1880년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과 사막, 정글을 헤쳐가며 멕시코는 근대화의 첫 삽을 뜨게 되었고 1910년도에는 미국 애리조나, 텍사스의 철도와 연결되는 멕시코 철도망의 근간이 완성되었습니다. 한편 1950년까지도 남부 유카탄 반도 메리다(Merida)와는 철도망이 연결되지 못했는데 이는 유카탄의 고질적 낙후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1910년 철도망

 




2. 무기


총알만 나가면 다 들고 오시오.
- 에밀리아노 사파타


정식 보급을 받던 정부군에 비해 혁명군은 말 그대로 총알이 나가는 것은 모두 들고 싸웠습니다. 점차 혁명이 진행되면서 정부군으로부터 노획한 제식무기와 미국으로부터 구매 혹은 밀수한 신식 무기들이 사용되었고 현대전의 상징 중기관총과 야포도 도입되었습니다.


소총은 독일산 7mm 마우저와 미국산 스프링필드 M1903이 대표적으로 사용되었고 카우보이의 상징인 윈체스터 레버액션 소총은 반란군들이 "30-30 카빈"이라는 노래를 작곡해 부를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이하게도 일본으로부터 아리사카 소총을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시대 총기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50년 전 일어났던 미국의 남북전쟁(1861-65)과 같은 질서 정연한 보병 선형진은 사라졌고 현대전에 가까운 산개 진형과 참호전이 도입되었습니다.


권총의 경우 주로 .38구경부터 .45구경 싱글액션 리볼버가 애용되었고, 기관총은 루이스 건, 호치키스, 맥심 건이 사용되었습니다.





3. 미술


나는 평생 내가 내 눈으로 본 것을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가 봤으면 하는 것을 그리도록 했다.
-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를 대표하는 해골(Calavera)과 알록달록한 벽화들은 모두 이 시절에 탄생했습니다. 해골의 경우 1910년 멕시코 상류층의 유럽중심주의를 풍자하는 의미로 그려졌다가, 치열한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위험한 상황과 그럼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복잡한 심정이 담긴 멕시코의 대표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멕시코 미술의 상징과도 같은 벽화주의(Muralismo)는 1920년대 알바로 오브레곤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시로 시작되었으며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시키에로스와 같은 화가들이 멕시코 혁명과 민주주의 정신을 각색하여 국가적 정체성을 심어주었습니다.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에 중세의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미술을 사용해 교육한 것입니다.





4. 음악


우리가 어찌 유럽의 예술을 완전히 버릴 수 있겠습니까? 나는 멕시코의 민중이 유럽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가지고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 훌리안 카리요, 1924년


1편에서 소개했던 대로, 포르피리오 시절까지 멕시코 문화의 지향점은 프랑스였습니다. 혁명의 성공과 함께 유럽을 무작정 따라 하던 사조는 배척되고, 멕시코 고유의 것을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1920년부터 멕시코의 음악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유럽의 로맨티시즘을 차용한 멕시코 민요와 내셔널리즘의 표현이었고, 두 번째는 유럽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모더니즘을 차용한 새 시대의 음악이었습니다.


Por ti mi corazon - 마누엘 퐁세


이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로는 마누엘 퐁세(Manuel Ponce), 카를로스 차베스(Carlos Chavez), 실베스트레 레부엘타스(Silvestre Revueltas)가 있고 당시 멕시코 사회에 부는 내셔널리즘의 영향을 받아 "우리 고유의 것" 그리고 원주민들의 음악에 대한 활발한 탐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아쉽게도 스페인의 도착 이전 아즈텍, 마야의 음악이 어떠했는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La noche de los Mayas, Sensemaya에서와 같이 작곡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했습니다.


Farolito - 어구스틴 라라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라쿠카라차"를 비롯해 수많은 민요들과 혁명가들이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에 맞춰 불려졌습니다. 특히 하나의 일화나 누군가의 일생에 대한 민요를 코리도(Corrido)라고 하는데 비야와 사파타가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이었으며, 오늘날에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들이 코리도를 지어서 부르기도 합니다.


라쿠카라차 - 민요




5. 건축물


음악, 미술에서와 마찬가지로 포르피리오 시절 유럽을 모방했던 건축가들은 혁명이 끝나고 이제 "무엇이 멕시코적인 건축인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1920년도부터 교육기관, 정부청사, 그리고 의료시설을 중심으로 멕시코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건축물들이 하나둘씩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멕시코는 스페인, 프랑스, 아르데코, 모더니즘이 공존하는 큰 관광 자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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