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질소셜클럽 Jun 20. 2024

멕시코 빵집의 흥미로운 결제방식

빵에 진심인 나라

Pasteleria Ideal (1927), Pasteleria Esperanza (1975) - 둘 다 아직 영업 중입니다.


멕시코는 옥수수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의 지배와 유럽 이민으로 인해 빵이 매우 발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멕시코 시티에는 1870년대부터 영업하고 있는 베이커리(La Vasconia)가 있고, 80년, 100년씩 된 베이커리도 여러 개 있을 정도입니다. 멕시코인의 1인당 연간 빵 소비량은 무려 33.5kg라고 하며 이는 미국보다도 높고 영국,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옥수수 또띠야만 먹는 나라가 아니라, 사실상 빵이 주식인 나라인 셈입니다.


그중 한국으로 치면 풍년제과, 성심당 같은 전통 빵집에 가보면 좀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단 빵의 종류가 파리바게트, 뚜레쥬르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고 바게트, 식빵, 패스츄리, 케이크까지 거의 모든 빵을 다 취급합니다. 빵을 담는 쟁반 크기도 2인용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철 쟁반이 제공됩니다. 이렇게 스케일이 크다 보니 어떤 곳은 입구와 출구가 나눠져서 지하철역 같이 개찰구가 설치된 곳도 있습니다. 거의 빵 공장이라 할 만합니다.


계산하기 전에 포장부터 합니다.


쟁반에 빵을 담고 나면 이제 계산을 할 차례인데 멕시코 전통 빵집에서는 바로 결제하러 가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빵을 포장해 주는 장소로 먼저 가야 합니다. 그러면 수십 년 경력의 직원들이 빵의 모양만 보고도 바로 계산기를 두드려서 영수증을 뽑아줍니다. 어떤 곳에서는 흑백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커다란 아날로그식 계산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직원들이 빵을 포장하고 있을 동안 영수증을 들고 계산대로 가서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를 하면 됩니다. 결제가 끝나면 영수증에 도장 같은 걸 찍어줄 것입니다. 이걸 다시 들고 가서 포장된 빵을 찾아서 나오면 됩니다.




La Vasconia (1870), El Globo (1884) - 둘 다 아직 영업 중입니다.


사실 멕시코 뿐 아니라 이렇게 계산 처리된 영수증을 들고 빵이나 음식을 받으러 가야 하는 곳이 미국, 유럽에도 아주 간혹 가다 하나씩 있습니다. 이 결제 방식이 거의 도태되어 사라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입니다.


1. 인건비: 사실상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셀프 체크아웃을 만들어도 되고, 오로지 계산만 하는 사람을 따로 월급 줘가면서 둘 필요가 없습니다. 한 60년쯤 전에는 가게 사장의 어린 아들이나 은퇴하신 할머니를 앉혀서 장사했으니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2. 줄이 길어짐: 개인적으로 이 결제방식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많을 때 가면 포장하는 곳에서 줄 1번 서고, 계산대 앞에 가서 1번 더 서야 합니다. 뉴욕 맨해튼에 이 방식을 사용하는 오래된 델리가게가 있는데 음식 받기까지 40분이 넘게 걸렸고 심지어 현금 줄과 카드 줄도 나눠져 있어서 소비자 입장에서 헷갈리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기다리는 시간의 절대량이 같을 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더 길게 느껴집니다.


3. 카드결제 보편화: 많은 나라에서 판데믹의 영향으로 카드 결제나 모바일 페이를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같으면 잔돈 계산을 잘하는 전문 계산원이 빛을 발하겠지만, 카드는 따로 계산이 필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빵집이 이 오래된 결제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은 멕시코에 살면서 도출해 낸 결론입니다.


1. 전통 보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그대로 두는 것이 소비자와 점주 모두에게 낫습니다. 이미 가게 레이아웃도 그렇게 설계되어 있어서 오히려 바꾸면 혼란이 올 지도 모릅니다.


2. 일자리 보존: 수십 년간 같이 일해 온 직원을 굳이 해고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두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3. 저렴한 인건비: 멕시코는 아직은 인건비가 저렴해서 굳이 비싼 기계로 대체할 이유가 더 적습니다.


4. 현금결제 보편화: 아직 현금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계산할 때 시간이 더 걸리고 계산원의 스킬이 도움이 됩니다.


5. 포장하는 빵의 양멕시코인들은 대가족 문화가 남아 있어 한번 빵을 살 때 많은 양을 구매합니다. 한 명이 최소 4-6인분을 사서 두 손에 들고 나오는 일이 흔하고, 케이크 같은 경우 눌리지 않게 따로 포장을 해야 하므로, 포장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니 포장되는 시간 동안 가서 결제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만약 포장하는 사람이 결제까지 같이 했다면 포장이 느려질 것이 뻔하니 나름대로 합리적인 분업 체계를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에 오신다면 수십 년 역사의 전통 빵집에 꼭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Pasteleria Suiza (194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