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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3.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9

제목미정

2-9


https://brunch.co.kr/@drillmasteer/3996




빨리 가서 응급 처지를 해야 해요.


어디로 가죠?라고 나는 물었다. 소녀는 나를 이끌고 좁은 길을 따라 안내했다.


저만 따라오세요, 밑은 보지 말고 나의 등을 보며 따라오기만 하세요.


나는 알았다고 했다. 나는 소녀의 등을 보며 소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정신이 아찔했다. 한 손으로 잡은 허리께에서는 피가 계속 났다. 이대로는 더 이상 못 갈 것 같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우리와 가까이 있던 야미쿠로의 신경을 긁는 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그리고 물소리도 잦아들었다. 아마 물살이 약하게 흐르는 소리였다. 아직 양 옆으로는 어두운 물이 흐르고 있지만 방금 전까지 위협적이었던 모습은 아닌 느낌이었다.  


저기 까지만 가면 돼요.


소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불빛이 보였다. 길의 끝에 환하게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가물가물 거릴 때 가까스로 이 어두운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밝은 곳으로 나오니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소파 위에서 깨어났고 욱신거리는 허리의 통증은 사라졌다. 보니 꿰매져 있었다.


냄새가 난다. 냄새 때문에 신경이 쓰여 일을 하지 못한다. 무시하고 일을 하면 되지만 냄새는 끝없이 난다. 냄새의 진원지는 손바닥이다. 손바닥에서 나는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냄새는 장갑을 꼈기 때문이다. 장갑의 바닥의 냄새가 손바닥에서 나는 땀과 섞여서 난다. 냄새를 설명하자면 오래된 로션의 냄새일까. 로션에서 썩는 냄새가 섞여 있는, 거기에 땀 냄새까지. 손을 몇 번이나 씻었는지 모른다. 씻고 나서는 깨끗한 비누냄새가 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기묘한 냄새가 손바닥을 점령하고 만다.


이상한 건 왼손 바닥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른손바닥에만 냄새가 났다. 냄새가 솔솔 올라오니 손바닥 냄새를 자꾸 맡았다. 기묘한 냄새이긴 한데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냄새다. 살면서 이런 냄새는 처음 맡아본다. 냄새는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어린 시절에 봤던 신밧드의 모험도, 감홍시도, 좀비도. 손바닥의 기묘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오래 전의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인간은 어쩌자고 신경 쓰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그러고 보면 나는 비교적 냄새에 민감했다. 냄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맡지 못하는 냄새도 잘 맡았다. 이상하지만 좋은 냄새보다는 그렇지 못한 냄새를 잘 맡았다. 맛있는 냄새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맡았는데 기묘한 냄새, 즉 호러블 한 냄새들을 잘 맡았다. 인간의 체취는 미미해도 나에게는 강하게 느껴졌고 하수구에 죽은 쥐의 냄새라든가 냉장고 속이지만 오래된 음식물의 냄새는 잘 맡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느 날부터 신경 쓰이는 손바닥의 냄새처럼 어둠의 냄새를 맡게 되었다. 먼지의 냄새와도 비슷했고 곰팡이의 냄새와도 비슷했다. 어둠을 냄새를 맡고 나면 코 안이 바삭 말라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어느 날는 어둠의 냄새 후 심하게 오한이 와서 내내 고생을 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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