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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6

118

by 교관


118.


마동이 조깅이 끝나면 늘 들리는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에서 탄산수를 한 병식 사 마셨다. 가끔 탄산수를 구입하면 원 플러스 원으로 하나를 더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에게 한 병을 건네주었다. 탄산수를 건네받고 의아해하는 학생에게 마동은 다시 조깅을 해야 해서요,라고 했다. 늘 카운터에서 밝은 표정으로 물건 값을 계산해 주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마시라고 건넸다. 아르바이트생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특별히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덤으로 생긴 탄산수 이외에 건네준 음료도 없었다. 마동은 마시는 음료가 한정적이라 다른 음료를 마셔본 적이 없다. 가끔 새로운 탄산수가 들어오면 마동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어떤 맛인지 물어봤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은 수줍게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일 년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날부터 아르바이트생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주인이 투덜거리며 저녁에서 새벽으로 바뀌는 시간에 아르바이트생 대신 일을 했다.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산 도둑놈처럼 생겨 투덜거리는 주인에게는 덤으로 생긴 탄산수를 건네기 싫었다. 하나는 마셨지만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와 뚜껑을 따서 하수구에 콸콸 버리기도 했다. 주인은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하는 듯 며칠 째 성난 얼굴을 하고 편의점을 지켰다. 마동은 계산을 하면서 주인에게 아르바이트생에 대해서 물었다. 주인은 당신은 뭐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인은 마동을 아래위로 훑었다.


“거의 매일 오시던데 운동하시는 거 아닙니까? 혹시 기관에서 나오신 건 아니죠?” 주인의 말은 아주 공손했다. 마동은 아니라고 했고 그저 조깅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조깅을 하다가 이곳으로 지날 때면 들러서 탄산수를 마시는데 일 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던 아르바이트생이 보이지 않아서 이제 취업을 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라 말했다.


“취업이요? 아니에요. 죽었어요. 자살했데요.” 주인은 조용하게 말했다. 주인은 그것 때문에 경찰서에 두 번이나 취조를 받았고, 요즘도 경찰들이 몇 번이나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부당한 대우가 없었는지, 아르바이트생이 자살을 하는데 어떤 빌미를 제공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생은 아버지의 빚더미를 감당해야 했다. 학비도 자신이 벌어야 했고 가계를 꾸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치솟는 등록금을 아르바이트만으로 감당하기는 힘들었고 집으로 찾아오는 채권자들의 독촉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몸을 버려가며 일을 해야 했고 그럴수록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생을 살려고 세상에 나온 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 좋은 카페에서 달달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데 다른 누군가는 그런 기회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 마음속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가려는 어린 마음은 더 이상 힘들지 않아도 된다는 하나의 안도감을 가지고 눈을 감은 것이다. 죽고 싶어서 죽은 사람은 없다. 죽을 수밖에 없어서 죽어야 하는 사람도 없다. 주인의 말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도 아르바이트생은 많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고 했다.


시간의 흐름을 제어하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의식을 지닌 개개인의 자질이 말살되어 가는 현실이다. 빅브라더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고 감시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학비를 반드시 내야 하는 대학생들은 처절하게 생활에 매달리지만 현재성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삶은 그들을 조금씩 벼랑 끝으로 어깨동무를 해서 몰고 갔다. 벼랑 끝에 다가가서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그들은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모른다.


조직은 개인의 이익을 생각지 않는다. 전체의 명분을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초조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방학이 되면 회사원들이 출근하여 점심 먹는 시간에 일어나서 빈둥거리며 컴퓨터를 하다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학생들도 많았다. 아마도 이 카페에 앉아있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도 후자에 속 할 것이다. 자신의 삶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다 피카소처럼 되지는 못한다. 피카소의 재능이 이어지는 게 가능했던 것은 그의 옆에서 불만 없이 그의 수발을 들어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하찮은 잡일을 도맡아 하고 피카소의 손발이 되어 대화도 없이 같이 앉아서 밥을 먹어야 했던 어떤 이의 마음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조화이고 균형이라면 그런 것이다. 영화가 성공하려면 배우 뒤에서 영화를 만드는 이름 모를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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