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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8

157

by 교관


157.


분홍간호사가 앞에 걸어가고 마동은 분홍간호사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뒤따라가면서 분홍간호사의 엉덩이를 보았다. 앉아 있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엉덩이를 소유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엉덩이도 어쩐지 걸을수록 자꾸 풍만해져 갔다. 영화 속의 여배우처럼 풍만한 것이 아니었다. 분홍간호사의 몸에 비해서 엉덩이는 점점 풍만해져 가는 것이다. 모르겠다. 설명은 늘 어렵다. 어쩌면 단지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엉덩이는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고슴도치처럼 움직였다. 육체에서 분리된 새로운 생명체처럼 분홍간호사도 엉덩이도 춤을 추며 복도를 걸었다.


움직이는 좋은 냄새는 분홍간호사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병원의 대기실에서는 포르말린 냄새 때문에 맡지 못한 냄새였는데 외부와 단절된 복도에 들어오니 분홍간호사의 냄새가 번진 것이다. 향수 같지만 향수냄새라고 단정하기에는 무언가 모자람이 있었다. 인공적인 냄새가 아니었다. 지금 복도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 냄새는 분홍간호사의 몸 자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분홍간호사의 체취가 복도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좋은 냄새다. 물에 탄 꿀처럼 달달한 냄새였다. 도취될 것만 같았다.


이 작은 병원 안에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있는 복도가 존재한다니.


“걱정 마세요, 고마동 씨. 이제 다 왔습니다. 검사할 때는 외부의 소리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특수 제작된 검사실입니다." 분홍간호사가 말했다.


도대체 분홍간호사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분홍간호사가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


맙소사.


특수제작이라는 말은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다. 오늘은 전부 특수 제작되는 날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복도는 계속 이어졌다. 복도는 생각 밖으로 길었고 아늑했다. 일반적인 복도에서 전해주는 느낌이 아니라 안온하게 느껴져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딘가로 들어가기 위한 연결방편에 지나지 않는 복도가 이렇게 포근함이 들다니. 복도에도 에어컨 바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복도는 덥지 않았고 마동은 냉기도 느끼지 않았다. 그대로 복도의 바닥에 드러누워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이 들쯤, 분홍간호사가 자, 여깁니다. 하면서 복도에 붙어있는 많은 방 중에 한 곳의 문을 열었다.


“복도에 붙어있는 많은 문들이 전부 검사실입니까?” 마동의 목소리는 원래의 목소리를 찾았다. 회사에서 겨우 나오던 쇳소리가 아니었다. 병원 내에서는 갈라지거나 쇠붙이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분홍간호사는 대답하지 않고 또 한 번 웃음을 보였다. 분홍웃음이었다. 웃음을 지었을 뿐인데도 풍만한 가슴은 살아있는 듯 움직였다.


맙소사.


검사실 안은 처음 보는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부는 보랏빛이 감도는 아담한 공간의 실내였고 한쪽 벽면은 마스모토 레이지의 야마토 내부를 보는 듯했다. 중간에 침대가 있었는데 침대만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동에게 침대 위에 누우라고 한 뒤 분홍간호사는 야마토 내부처럼 보이는 벽면에 서서 여러 가지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 누우니 방안을 감도는 기분 좋은 보랏빛이 마동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몇 시쯤 되었을까.


시간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퇴행하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오늘 무슨 검사를 합니까?” 마동은 분홍간호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뒷모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풍만한 제복 입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영화 시작 후 10분 만에 사라지는.


“일반적인 검사를 할 겁니다. 피검사, 심전도검사, 내시경등 말이에요.” 분홍간호사는 뒤를 돌아보며 마동을 향해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으셨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마동은 병원에 오기 전에 는개에게 받은 자양강장제를 한 병 마셨지만 함구했다. 마동의 말을 듣고 분홍간호사는 마동을 향해 또 미소를 지었다. 분홍간호사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그간 밀려있던 졸음이 전조도 없이 들이닥쳤다. 분홍간호사가 벽면에서 이것저것 무엇인가 버튼을 누를 때 체내로 수면제가 투여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졸음은 몸과 머리를 지배해 버렸다. 마동은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침대의 베개에서 떨어트려 머리를 흔들었지만 졸음은 그야말로 폭력적이었다. 분홍간호사는 마동의 머리를 아기처럼 베개 위에 뉘이고 분홍간호사는 분홍의 간호사 복을 벗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며 마동은 잠이 들어 버렸다.


분홍 간호사가 옷을 벗는다. 옷을 벗는……. 옷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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