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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3

353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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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베란다 창에 마동은 몸을 바짝 기댔다. 한 여름의 한가운데 내리는 세찬 비 때문에 차갑게 변한 창문의 기온이 마동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그 차가운 기온은 마동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쿠쿠쿠쿵 하는 천동소리와 함께 동시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류 형사였다.


다시 들어와 보는 모던타임스였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밖에 쏟아지는 비는 정체를 모르는 힘이 아주 좋은 거인이 고집스럽게 하늘에 구멍을 뚫어 놓은 풍경 같았다. 굶주림에 울부짖는 맹수의 소리처럼 천둥소리도 크게 들렸다. 카페의 주인도 오늘은 장사가 안 될 것 같다며 아르바이트생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카페의 주인은 아르바이트생을 이곳에 더 붙잡아 두었다가는 집 잃은 개구리가 되어 어디로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동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자연은 가끔 인간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준다며 카페 주인은 마동에게 커피를 내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인이 딱히 말을 많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말을 해서 지금 자신과 카페 근처에 닥친 지변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었다.


카페 주인은 몇 번 왔던 마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딱히 마동은 누군가보다 튀는 외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마동을 한 번 보면 그를 기억해내곤 했다. 그런 일이 가끔씩 있었다. 눈썹이 짙은 것도 아니었고 키가 아주 큰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의사의 얼굴처럼 아주 잘생긴 외모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웃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마동을 본 사람 중에 몇몇은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버리지 않았다. 단순히 마동의 착각일지도 몰랐지만.


카페의 주인은 지금 당장은 구멍 뚫린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카페는 건물주에게 24시간에 해당하는 세를 내고 있는 것인데 하루 중에 고작 반나절 장사를 할 뿐이다. 그런데 비정한 영화에서 내리는 비처럼 세상을 거칠게 비가 덮으면 영업은 막을 내려야 했다. 카페 주인의 생각이 마동의 의식에 와닿았다. 주인의 생각은 그렇게 하늘에 대고 원망을 하고 있었다. 카페의 벽면에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틀어주던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류 형사를 기다리며 마동은 모던타임스를 볼 요량으로 비를 맞으며 일찍 나왔는데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마동은 꽤 오래전에 모던타임스를 보고 반해버렸다. 채플린은 대사하나 없이도 영화의 내용을 보는 이들에게 잘 전달해 주었다. 유성영화가 한창 활발한 시기였는데 채플린은 무성영화 형식의 모던타임스를 만들어냈다. 모던타임스는 희극인데 비극이었고 채플린의 슬랩스틱의 몸짓은 재미있지만 처절하고 불우했다. 사람들은 모던타임스가 70년이 흐르는 지금까지 이 영화를 보며 웃었고 눈물을 흘렸다. 마동이 모던타임스에 대해서 생각을 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을 때 류 형사가 재미없는 소설 속의 비 맞은 고양이의 몰골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보다 더 불규칙적이게 수염이 자리 잡고 있었고 깎인 부분도 일정하지 않았다. 생각날 때 마구잡이로 수염을 깎는다는 듯 보였다. 수염을 이렇게 불규칙적이게 깎는다는 것은 규칙적인 생활에서 멀어졌다는 말이다. 류 형사의 사소함에서 생활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류 형사는 오늘 혼자 왔다. 거대하고 산 같은 신참형사는 보이지 않았다. 류 형사는 마동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혼자서 왔다고 짧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었나요? 하늘이 미쳐가나 봅니다. 이 빗속에 만나자고 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라며 류 형사가 젖은 옷을 털며 말했다. 마동은 괜찮다고 말했다. 마동의 눈에 비친 류 형사의 모습은 처음과 같은 냉철함으로 가득 들어차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행동의 철저함은 지니고 있었지만 좀 더 인간적으로 변모해 있었다. 인간적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선과 악의 모습이 동시에 류 형사의 얼굴에 잔존해 있었다. 마동은 일부러 류 형사의 의식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류 형사의 악한 냉철함은 단순한 마동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 모습은 아직 마동을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지만 범인이 아니라는 복잡한 마음의 교차가 나타내는 관념일지도 모르고 의심은 가지만 의지로 의심을 강화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의 심리일지도 모른다.


“실은 말이죠. 마동 씨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만 의심이 점점 희박해져 간다고 말씀드렸듯이 마동 씨에 대한 조사가 더 이상 진전이 전혀 없습니다. 사건의 실마리가 되어야 할 단서가 전혀 없다는 말이죠. 더불어 당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할 만한 근거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류 형사는 고개를 들어 카페 안을 두리번거렸다. 주인 밖에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나 확인하는 듯 보였다.


의심이라는 게 본디 자연발생적 마음의 의심과 의식적인 마음의 의심으로 나눠지지 않습니까. 의심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연적으로 의심이 가는 부분과 의도적으로 의심하는 부분이 서로 교차하는 사이에서 인간은 분명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형사들은 그 선택을 보통 일반인들보다 잘해야 합니다. 직관을 통해서 보다 명확하게 그리고 냉철하게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했다, 이것만 가지고는 형사는 안 되죠. 그릇된 선택은 범인체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류 형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입술을 씹었다. 습관인 모양이었다. 입술을 물어뜯는 습관은 어린 시절에 들어버린 습관이며 어른이 되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 중 하나다. 꼭 유전자와 흡사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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