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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6. 2024

무진을 보았어

무진기행

집 앞의 바다가 해무로 가득차면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무진기행은 아름다운 문체의 시와 시가 이어진 문장의 행렬이다.

 

현재의 아내는 과거의 엄마

현재의 인숙은 과거의 자신

현재의 무진과 과거의 무진

동경하던 서울과 벗어나고픈 서울

책임의 서울과 무책임의 무진

치욕스럽던 과거와 치욕마저 잊고 지낸 현재

쓸쓸함을 말할 수 있었던 과거와 부끄러움만 지낸 현재

현재 아내의 남편 자리에 들어가는 윤


개 두 마리의 교미는 사이렌 소리 속에 창부와 교미를 하는 상상하는 자신이 결국 인숙과 몸을 섞는 관계로 이어지고 현재의 윤은 과거의 자신과 몸을 섞음으로 그 치욕을 치욕으로 덮으려 한다.


과거의 윤에게 쓸쓸함이란 시간의 지루함, 느끼는 허전함,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다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생활을 쓸쓸하다,라고 느낄 수 있었다. 윤에게 사랑은 쓸쓸함과도 같다. 사랑을 하게 되면 쓸쓸해진다. 너무 흔한 말이라 할 수 없는 말 사랑, 하지만 간단히 말해버리고 마는 윤.


어머니의 묘를 찾은 윤은 비를 흠뻑 맞는다. 비가 나를 효자로 만들어 주었다. 자기 멸시가 가득한 문장이다. 바지까지 걷어 올리며 묘를 정리하고 있지만 자기 멸시에서 오는 부정. 비가 쏟아져 나는 울고 있음을 대신 떠넘긴다.


죽은 이 여자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프긴 하지만 아끼지 않으면 안 될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체를 보며 정욕을 느낀 자신이 치욕스럽고 경멸스럽다.


인숙과 맞잡은 손. 우리가 잡고 있는 손바닥과 손바닥의 틈으로 희미한 바람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바람은 두 사람의 사랑, 쓸쓸함, 부끄러움, 연민, 자기애 또는 자기모멸이었으리라. 두 사람은 바쁘게 서투를 것이고 상처가 났어도 아프지 않고 상처가 없는데 아플 것이다.


무진은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안으로 들어와서 봐야만 보이는 세계. 그곳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동시에 교접하는 무서운 세계.   




말러리안들의 최애곡 https://youtu.be/75YmlDR92UQ?si=PL5piXHnZI907I8o

Kim Cl Deok 김클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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