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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20.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53

소설


53.


 “나 여기서 잠깐 잠들면서 꿈을 꿨어. 무척 신기한 꿈이었어. 곰팡이 같은 칙칙한 느낌인데 배경은 또 달랐어. 어쩐지 뜨거운 여름의 해변에서 차가운 기분 말이야. 어떤 건물 같은 곳인데 아마도 개량 사찰 같은 곳이었나 봐. 선명하지 않아. 뿌연 장면이 펼쳐졌을 뿐이야. 칙칙하지. 내가 어떻게 그곳까지 갔던 것인지 떠오르지 않아. 꿈이라 가능했나 봐. 꿈은 늘 그런 거이니까. 꿈속이 현실과 다른 점은 압도적으로 고요하다는 거야. 필요한 소리만 꿈속에 있어.


 버스 소리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껌을 씹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 고공의 고가다리를 지나고 여러 대의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궁극적인 공허가 펼쳐진 높은 건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도달했어. 그리고 기도했어. 기도하는데 누군가 내 뒤에 와서 서 있는 거야. 하지만 뿌옇게 보였어. 내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었어. 분명한 건 그는 아니었어. 꿈속의 그 손이 내 볼을 만져주었는데 선명하지 않아. 꿈속이라고 하기엔 그 사람의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 간절하다는 거야.”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나는 조금 전까지 차가운 눈 속에서 따뜻했다. 그녀 덕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망설였다.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연대를 가졌다. 우리는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꿈속의 같은 곳으로 이끌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생각 속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힘 같은, 특수한 무엇인가 실재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꿈이었어. 그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 때문인지 나는 소멸하여가는 기분이 들어.”       

        

 나는 분명히 그녀의 꿈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녀가 기도하던 곳에서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나는 지금도 내 손에 남아있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확실하게 모든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나처럼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장막이 걷히면 망막으로 내 모습이 확실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의 얼굴을 만져준 사람이 접니다. 나라구요! 그 간절함을 담아서 당신의 볼을 어루만졌다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인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슈퍼 주인의 말대로 나는 그녀에게 엉망진창인 말이라도 해야 했다.         

      

 “전 잘 모르겠어요. 길을 걷다가 무엇인가 밟았다는 기분이 들어서 보면 굵은 벌레가 밟혀서 죽은 거예요. 몸뚱이는 쪼개져 터져 나갔고 즙은 흘러내리고 날개는 바들바들거렸어요. 다리도 다 떨어져 나가고 없어요. 벌레는 이미 죽음을 향해서 가는 거예요. 벌레는 이제 돌 이길 수가 없어요. 전 그 벌레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는 다시 발을 높이 들었다가 고집스럽게 밟아요. 그러면 고통이 덜하겠지. 이렇게 된 데는 감성적이지 말아야지 해요. 그렇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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