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시 집중.
어떠한 특징을 띠고 타인의 의식은 공명의 사이를 뚫고 보이지 않는 바람에 실려 정확하게 마동의 귀 안으로 틈입되었다. 이명으로 전달되는 소리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서 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마동은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으며 사람들과 의식을 자의로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 의식의 소리는 말소리와는 달랐으며 그들의 의식은 뒤죽박죽이었다. 낡은 건물 속의 오래된 공간과 새로운 인테리어 공간처럼 들쑥날쑥 이었다. 대부분 입으로 나오는 말과 생각은 일치하지 않았고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멜 깁슨의 ‘왓 위민 원트’에서 여자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생각은 실제 행동과 구어로 하는 말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오류적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해변에 가득 모여있다는 것이 조금 두렵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람들의 의식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변이를 위한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에 도달한다고 해서 마동에게 있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정신의 집중이 자아에 도움이 되는 걸까, 변이가 오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지도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밖에 없는 일이며 해야 할 일이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마동은 사람들의 의식이 내는 제각각의 소리가 마동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을 때 엄청난 이질감의 의식 하나가 침입해 왔다. 그것은 마동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소리와 소음, 의식의 이명이 혼재해 있는 혼잡한 소리사이를 예리하게 벌리고 마동의 의식으로 파고들었다. 침투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사람들의 의식과는 완전히 다른 또렷한 소리였으며 이질감은 굉장했다.
-이것 봐 자네는 누구 보통 인간들과 다른 양상을 띠고 이다-
언어는 이상했다. 마침표가 없었다.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문단은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어떤 누군가의 의식이 분명했다. 그 의식은 사람들의 뒤죽박죽인 의식을 지나 정확하게 마동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마동이 집중하여 그 의식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마동에게 그 의식이 직접 다가온 것이다. 분명 인간의 입을 통해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의식의 소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마동에게 전달된 의식의 소리는 아주 강한 성질의 도드라진 전기 파장 같은 잡음이었다.
거부할 만큼 어두운 의식의 소리도 아니었다. 대기의 울림이 달랐고 그 의식의 소리는 진공관을 타고 흐르는 빛처럼 흔들림 없이 많은 무의식의 소리 사이사이를 거쳐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심지어는 부딪히지도 않고 마동의 의식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소리가 침투하듯 들어왔으면 두 번째는 배려있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마동에게 와서 닿았다. 마동은 처음 소리를 듣고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각자의 즐거움에 심취해 있었고 그들 중 마동의 뇌파에 접근하여 의식을 전달할만한 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봐 그쪽을 아무리 찾아도 나는 눈에 띄지 않다 너의 뒤쪽에 있는 작은 간이카페가 보이다 그쪽으로 걸어올 수 있다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마동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해변을 등지고 음의 파장이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길거리에서 폭죽을 파는 곳에서 학생이 목젖이 터져라 폭죽을 팔려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폭죽은 불법이지만 곳곳에서 폭죽판매가 성행했다. 학생 뒤에는 팔뚝의 문신을 드러낸 채 학생의 선배로 보이는 아이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폭죽을 사러 왔다가 폭죽의 가격에 놀라는 표정을 짓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아이들이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학생에게 돈을 지불하고 폭죽 10개 들이 한 묶음세트를 집어 들었다. 여자는 낱개로 된 하나만 사자고 했지만 남자는 그대로 돈을 지불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동은 그들을 지나쳐 간이카페로 갔다. 간이카페는 시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 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커피와 각종 음료를 팔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지역조직에게 벌어들인 금액의 몇 퍼센트를 갖다 줘야 한다. 합법적으로 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불만은 불만대로 듣고 시청에서 단속이 나오면 조직의 연락망을 통해 미리 연락을 받아 위기는 모면했지만 하루 장사는 끝이었다. 하루를 벌어들이지 못하면 이상하지만 이틀이 손해가 났다. 조직에게 바치는 납입액이 세금을 능가했다. 조선시대 세금징수의 악행이 고스란히 내려오고 있었다.
간이카페의 주인들은 활기차고 한몫을 챙길 수 있는 여름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중 한 간이카페 앞에 마동은 섰다.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들어 놓은 작은 카페였다. 밖에서 보이는 실내는 4개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남녀커플들이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앉아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마동은 소리의 파장이 부르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간이카페의 오른편을 돌아서 뒤편으로 가니 거대한 블랙 그레이트데인 견이 목줄을 한 채 일어서 있다가 마동이 오는 소리를 듣고 마동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움직임이 사뭇 가벼워 보였다. 무게감이 없어 보였다. 마동이 달리기를 할 때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젯밤에 봤던 그 개였다. 눈빛이 달랐던 그 거대한 대형견.
아마도 카페의 주인이 기르는 개인 모양이다. 아주 초대형견이다. 두 발로 벌떡 일어선다면 성인남자의 키도 훌쩍 넘을 것이다. 분명 훈련을 제대로 받았고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강하고 집을 잘 지킬 것이다. 이렇게 큰 초대형 견은 목적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키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을 매일 시켜줘야 하고 인간이 먹는 음식을 먹이지 않아야 한다. 이 그레이트데인은 주인과의 교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마동은 알 수 있었다. 덩치가 엄청났지만 미끈한 모습에 움직임은 날렵했다. 몸을 살짝 트는 모습에서도 훈련을 받지 않은 개와 확연한 차이가 나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앞다리는 땅을 디디고 있었고 뒷다리는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처럼 뒤로 죽 뻗고 있었다. 턱은 상향 15도 정도 들고 있었다.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처럼 보였다. 온몸이 어두운 색으로 검은빛이 좋았고 반질거리는 털은 달빛을 받아 더욱 신비스러운 광채였다.
지구의 모든 소리를 들으려는 듯 귀는 하늘로 쫑긋 올라가 있고 꼬리는 C자형으로 끝은 하늘너머의 종족과 교신이라도 하듯 한 지점을 향해 있었다. 털의 매혹적인 검은 빛깔은 눈 밑으로 해서 입까지 이어졌다. 움푹 들어간 눈은 또렷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눈동자를 띠고 있었다. 개의 몸은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는 듯 강하게 보였지만 눈빛은 그리움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트데인의 눈동자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을 들여다보는 착각이 자꾸 들어서 마동은 가슴이 뛰었다. 그레이트데인의 눈동자에서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는 달리 일종의 편안함이 서려 있었다. 오래된 낡은 혼란이 마동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만약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많은 걸 물어보고 싶었다. 마동은 자신도 모르게 그 그레이트데인 곁으로 가서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개는 가만히 마동에게 반질한 머리를 내주었다. 마동은 초대형 그레이트데인을 처음 보았다.
이렇게 큰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구나. 마동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카페의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 큰 개를 키우려면 집 마당이 넓거나 옥상이라도 커야 한다. 한국 땅에서는 좀체 키우기가 힘든 개였다. 뒷문으로 카페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마동과 그레이트데인의 모습을 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덩치는 있지만 몸은 마르고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모양을 하고 검은 반팔 티셔츠와 검은 여름데님바지를 입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였지만 세련되어 보였다.
“장군이는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거 같소.”
주인도 그레이트데인을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초대형견의 이름은 장군이었다. 장군이가 주인을 보자 아주 반갑게 짖어대고 두 앞발을 들어 주인의 가슴에 올렸다. 컹 컹 거리는 소리는 해안가를 산책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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