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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May 23. 2021

신입이 2주 만에 퇴사한 이유

신규 간호사 병동에서 외래로 이직한 뒷이야기

어느 날 우리 과에 무슨 일인지 신입이 들어왔다.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인력 충원이 된 것이다.

사실 최근 코로나 백신 접종과 일시적인 내원 환자 증가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는 날도 많고, 바빠서 눈물 날 정도로 힘든 날이 많았다. 특히 우리 부서에서 헬퍼를(다른 부서 인력지원) 보내고 나면 부서를 지키는 건 나였기에 혼자 남아 고군분투하는 날도 많았다. 병원 행정 부원장님을 만났을 때, 거의 눈물 연기를 펼치며 인력 충원을 호소했었다.


 그 결과 며칠 만에 신입이 들어왔고, 신입은 마침 병동 경력도 2년 남짓 있고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딱 적합한 경력직 신입이었다. 신입이 들어오기 전부터 다른 간호사들과 신입이 잘 적응하도록 친절히 대해주리라 다짐했다. 신입의 입사 후 의외로 막내인 내가 신입을 가르치게 되었다. 학병원에서는 10년 차 이상 선임이 신입을 가르치는 일도 많았는데 역시나 신규 트레이닝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을 가르치면서 내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은 몰아치는데, 신입은 신경 써 줘야 하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줘야 하지 정신이 없었다.  




하루는 메인 외래 진료실에 신경 쓰느라 다른 진료실의 환자들은 사실상 신경 쓰기 힘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보호자 한 명이 진료실로 들어가서 억지로 진단서를 써달라고 생고집을 부렸다. 언성이 점점 높아지더니 진료실 과장님의 호출이 왔다.


야 너는 내가  이 꼴을 당하게 만들어야겠냐?!



느닷없이 떨어진 불호령에 보호자도, 나도, 신입도 모두가 당황했다. 원래 진단서는 환자가 직접 진료 시에만 받을 수 있고 이 환자의 경우 골절 진단서라서 CT 등 정밀검사까지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호자에게 명했지만, 계속 억지를 부리자 과장님도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황당했다. 원무과에서 신청한 대로 진단서를 신청했고 보호자 면담을 시켜준 것뿐인데. 보호자도 나에게 미안했는지 괜히 불똥 튄 것 같다며 사과했다.


 우리 과장님은  다소 다혈질이어서 소리 지르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상하게도 신입을 가르치는 첫 주에는 그게 더 심했다. 한 4일 연속 화를 내는 과장님을 보다 겁먹고 한편으로 질린 신입이 물었다.


"과장님은 평소에도 화를 잘 내세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신입을 붙잡기 위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 말을 인용하자면 '과장님이 4일 내내 나를 갈궜'지만, 과장님의 있는 장점 없는 장점까지도 끌어내서  칭찬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마침 내가 반차를 쓰고 자리를 비웠던 토요일이 지난 다음주 월요일, 신입이 들어온 지 딱 2주 되는 날이었다.


수선생님 저 오늘 까지만 하고 그만할게요.

신입의 퇴사 선언에 모두가 당황했고, 병원 측에서 설득하려고 약간의 시도는 해봤지만 무용지물이었고 신입은 2주 만에  퇴사했다.


토요일 날 신입이 외래 진료실을 담당했는데, 환자가 많이 밀리자 과장님의 끓어 넘치는 분노가 느껴졌던 것 같다. 직접 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질책한 것은 아니라던데 눈치가 보였을 게 분명하다.


이후에 신입이 과장님 성격 때문에 겁에 질려 퇴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과장님이 신입을 갈궈서 신입이 나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간호사들은 당황하면서 갈굼 당한 사람(나)은 따로 있는데 신입이 나갔다며 황당해했다. 정말 황당하고 지치고, 진이 빠졌던 2주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너는 당장 왜 안 때려치우고 계속 다니냐며 어이없어했다. 수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도 고생했다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신입 퇴사 후 과장님은 다시 히스테릭한 상태에서 벗어나서 평범한 상태로 돌아왔다. 신입이 퇴사한 지 10일이 넘었지만 아직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결국 업무는 여전히 많았고, 힘든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혼자 일을 다하는 게 마음만은 편했다. 신입이 언제 다시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다시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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