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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 클레어 Sep 03. 2024

내 주변에 부분의 선 <+ SNS중독>

불의한 사람? 부분의 선이 거악(巨惡)을 덮을 순 없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글 하나를 하단만 조금 추가해서 발행합니다. 이번 글도 좀 조심스러운데요. 브런치는 온정적인 글을 주로 쓰는 플랫폼이라 주로 그런 글을 발행하는데요. 실은 문제의식 있는 주제도 나누고 싶었어요. 


<깜짝 공지> 제가 최근 연재 시작한 동화의 뼈대는 동화는 처음이지? <9/5 업데이트> 에 업데이트본 담아봤어요. 투덜이 털보와 기석이는 제 짝꿍이 모델입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투덜이 털보' 캐릭터에서 짝꿍을 느끼시더라고요. 제가 생초보 작가지만 독자분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하려고 하는데요, 완주할께요 :)  










택시 트렁크의 삽과 하얀 봉투


그는 동물애호가이며 비건 곧 채식주의자입니다. 젊었을 때는 금욕주의자였습니다. 소싯적엔 누가 핀잔을 주면 대구도 제대로 못해 찌질하게 골방에 들어가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는 평소 살뜰히 아내를 사랑합니다. 생애의 끝날까지, 그의 아내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그는 자기 측근들도 의리 있게 챙깁니다. 그는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어느 맑고 청명한 오후였다. 휴일 바쁜 일과를 마치고 급하게 집에 갔다 다시 나와야 하는 일정이라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 안은 깔끔했고 기사님은 인자하고 순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누구보다 성실한 택시기사님이었다. 한참을 가다가 자신이 실은 과거 고위공무원을 수행한 기사라고 했다. 어떤 분들이냐고 물었더니 절대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힌트는 그분들을 수행하다 보면 이른바 나라의 일인자 곧 VIP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근데 왜 택시기사를 하게 되었냐고 물어 봤더니 대뜸 말을 잇는다.


"내가 과거에 수행기사할 때, 자동차 뒤 트렁크에 삽을 넣어 두고 다녔어요. 내가 수행한 그 인간이 나를 인간 대접을 안 했는데, 정말 말로 할 수 없어서, 한 번만 더 그렇게 대하면 외진 곳으로 데려가 땅에 파묻어 죽여 버리려고요"


"(헉!!)...."


순간 살 떨리게 무서웠지만 기사님의 그간의 고통이 느껴져 얼마나 힘들었냐고 경청과 공감의 시간을 한참 보냈다. 그날 택시를 탄 것은 이동 중 집중해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30~40분 시간을 기사님의 하소연을 듣는데 할애하게 된 셈이었다. 혹여 이 분이 우울증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현재 건강과 근황도 살피면서 말이다.


그간 수행기사하면서 얼마나 힘드셨냐고, 정치인들은 다 그러냐고 묻자, 기사님은 전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아니요. 제가 존경하는 분도 계셨지요"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실명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분개하는 그분이었다.  그 기사님이 열렬히 지지하는 VIP 이른바 대통령은 5.18마다 온 국민이 침을 튀기며 욕하는 그 사람, 백담사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모두가 혐오하는 그를 열렬히 옹호하다 못해 찬양하는 모습에,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유는 너무 허망했다. 당시엔 일부 고위직 수행기사의 사례비(급여)를 그분이 챙기시는데 매번 봉투에 넣어서 참모 통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 외 가까이 있는 사람들 잘 챙겼다는 이유가 근거였다. 기사님은 앞선 장관이나 사장들에게선 느껴보진 못 한 작은 환대에 확증편향이 일어난 것이다.


'나에게 잘 해주었으니 선이고, 그가 어떤 죄와 허물을 서슴지 않아도 여전히 (내겐) 좋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 어른 세계에서 횡횡하는 이 끔찍한 선악의 논리에 비위가 상하다 느끼며, 속으로 주먹질을 향방 없이 휘둘렀던 기억이 선명하다. 도대체 왜 그런 사람을 두둔하고, 그런 사람을 선으로 분류하냐며, 작은 이익에 쉽게 유용되는 '이익집단' 모습에 혼자 분개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가 말하는 VIP는 측근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떡고물이 남으면 몫을 나눠주고 쿠데타에 열일을 한 누구는 그 후광이랄까, 부분 선의 흉내를 내며 그 뒤를 이었다.


끔찍했다. 작은 이익에 양심일랑 팔아버리며, 불의한 이권에 읍소하고 동조하며 심지어 불의를 정의로 뒤바꾸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 '그들이 정의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말이다. 그 당시에도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런게지 생각했다.




위장된 선


부분적인 선은 유용하다. 악을 행하지만 멀쩡한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거악(巨惡)을 행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뉴스에 하도 단골손님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남편을 눈물로 살뜰히 아끼는 아내,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식을 올리기 전에 죽은 남편을 위해 혼령식까지 치렀다. 그런 그녀가 그 유명한 희대의 악녀 연쇄살인범이었다. 매체에 자주 나오며 간병으로 온 국민을 감동케 한 사람, 그는 아내를 성매매 시키고 심지어 딸의 친구를 끔찍하게 범한 후 어린 목숨까지 앗아갔다. 한때 온 국민이 눈물로 칭송했고 그 덕에 수억 원의 기부를 받았던 사람이 어느 날 파렴치범으로 뉴스에 등장했을 때, 그를 취재했던 모 공영방송도 당혹스러워했고 국민들은 충격에 말문이 막혔다. 그 남자는 기부 받은 돈으로 유흥업소를 다니며 전신 문신과 성형까지 했다는데, 온 국민은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종교의 큰 뜻을 품은 부부가 입양한 아이를 때리고 굶겨 학대한 사건 또한 그러하다.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함께 호흡했을, 평범해 보였을 그들의 이중성은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확률적 희소에 해당한 중증 정신병, 다중인격자인가. 왜 우린 그들을 (매번) 미리 분별하지 못할까?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칭찬과 한때의 극성스러운 기부는 왜 이리 허접했던 것인가.


물론 이 보다 더 많은 아니 99%는 세상의 선의를 선으로 답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라 기대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부분의 선' 으로 '거악'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소한 악'이 가려지는 생각의 메커니즘은, 인간이라면 100% 모두 장착한 불완전한 인지 오류라는 이다. 가령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사주고  다음 순간 공부 제대로 한다고 호되게 때리는 일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이중성'의 단면이다. 이를 '친절의 폭력성, 친절의 권력'라 생각하며 언제 한번 글로도 다루고 싶다. 즉 선악의 이중성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인간 모두가 감내할 본성인 셈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살피고 때론 서로 권면해야 한다.


부분적인 선을 세상은 더 편안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상은 '온전한 선'을 더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온전한 선은 내가 불의할 때조차 나를 책망하는 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분적 선에 동조할 뿐 아니라 나의 실책 심지어 '의도된 악'에도 동조하길 원한다. 가령 그것이 뒷담화의 심리다.


서로의 부분적 선을 명분으로 상당한 악을 허용하고 공범을 도모하며, 사람들은 안심한다. 악을 행하면서도 이 악으로 치명타를 얻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 양심에 찔리지 않고 행할 수 있은 것, 내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약점이 도드라지지 않게 해주는 상대의 약점에서 안심한다.




어느 종교인의 불의 


언젠가 있었던 일이다. 살뜰하고 착한 30대 후반이었나 늦게사 결혼한 한 여인. 예전에 직장동료로 만난 분이었다. 나와 종교가 같았고 경력직으로 입사 후 초반에 밥 먹을 사람이 없어 보여, 점심 짝꿍도 해주고 좋은 말도 해드렸다. 그것이 좋았던지 틈틈이 내 자리에 간식도 두고 갔다. 성격도 뽀송뽀송 좋았다. 한 가지 남편이 해외출장이 많아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은 신혼의 새댁이었다. 그 당시로는 슬하에 아기도 없었다. 그러다 나중엔 또 다른 직장으로 옮겨 갔던 터였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분이 한 유부남과 사귄다는 것이다. 아직 그녀도 엄연히 가정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워낙 험담이나 카더라를 질색하는지라 처음에는 아닐 거라고 했다. 허나 그녀가 남자분이 있는 회사로 아예 이직해 심지어 같은 부서가 됐다는 사실을 해당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했다. 참고로 벤처처럼 작은 회사들은 주요 임원진들 프로필이 홈페이지에도 오픈된다. 더군다나 이 소식을 전해 주신 분은 굉장히 진중하신 분이셨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한 군데도 발설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알 사람은 안다는 분위기이긴 했다.


'아예 대놓고 불륜을 정당하게 누린다?'


내가 알고 있는 착하고 참한 새댁이 심지어 카톡 프로필엔 종교 성구를 종종 올렸던 분이 그런 결정을 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다. 믿기지 않았다. 혹여 내일 그녀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여전히 친절하게 인사할 것이지만, 그녀는 누군가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인 것이다.


불륜 외에도, 의외로 종교인들에게 이런 현타를 받는 일이 꽤 있었다. 우리나라가 주요 종교의 종교인만 다 합쳐도 2 중명 1명이 (현재 혹은 과거) 종교인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 일은 개인 간 불의이니 망정이지 이것이 히틀러나 연쇄범죄자처럼 다수를 상대로 한 죄라면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간의 부분적 선이 갖는 존재의 가벼움, 부분적 선에 농락당한 듯한 모멸감이 밀려들었다. 내 책상에 두고 간 간식, 친절한 미소가 그러했다. 한편으론 이쁘고 날씬한 신혼 새댁이 뭐가 아쉬워 그랬을까 안타까웠다. 곁에 내가 있었다면 밤이 새도록 조언을 해주었을 텐데 생각했다.


요즘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인사 담당자들이 속앓이가 많다 한다. 의외로 이런 일이 직장에서도 상당히 있다는 말이다. 나와 친한 한 인사담당자가 말하기를, 기업 인사 담당자들 왈 "굳이 건드리지 않을 테니 제발 들키지만 말아 달라" 는 게 속내라고 한다. 그 건들을 일일이 이슈화하면 회사 전체가 벌집을 쑤신 꼴이 된다는 얘기였다. 참담한 현실이다.  SNS도 마찬가지다. 은근히 불의가 추정되어도 모르는 척하며 어떻게 하질 못한다.


나는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이상한 느낌을 주면 직간접적으로 차단을 하거나 우회적으로 경고를 주기도 했다. (작년말과 올초 브런치엔 차단 5명. 참고로 은근히 인간적인 정치하는 분들도 차단한다.) 근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나만 야박한 사람으로 보는듯한 분위기에 당황했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도(道)를 지키는 것, '정신적 간음을 (내게) 시도하는 분들도 차단하자'는 어렸을 때부터 내 평소 지론이 맞다고 생각했고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영적 결벽, 정신적 결벽이라 누군가 타박해도 이것이 거악(巨惡)막는다면 앞으로도 그리 살 것이다. 이 나이까지 깔끔한 자기관리는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도 살지 못하는 삶을 다음세대 어린이들에게 똑바로 살라하고 싶지 않다.






건강한 충고 사회 (feat.SNS중독)


SNS 중독의 심리학적 메커니즘

SNS 중독은 단순히 시간 낭비의 문제를 넘어서, 현대인의 심리적 안녕과 사회적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이슈다. 이 중독성의 근본적 원인은 SNS의 설계 방향이 중독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SNS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자극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다.

첫째, SNS는 ‘보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좋아요, 공유, 댓글 등은 사용자에게 실시간으로 긍정적 피드백을 제공하며, 이는 뇌의 보상 중추를 자극한다. 사용자는 이러한 긍정적 반응을 추구하게 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강화된다.

SNS의 보상 시스템은 ‘포지티브 강화(Positive Reinforcement)’의 원리를 따른다. 사용자가 SNS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받을 때마다 이는 그들의 행동을 강화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뇌는 반복된 보상에 반응하여 더 많은 도파민을 방출하고, 이는 사용자가 SNS에 더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SNS는 ‘기대감’과 ‘보상의 예측 불가능성’을 통해 뇌를 더욱 자극한다. 사용자는 자기 게시물이 얼마나 많은 좋아요나 댓글을 받을지 예측할 수 없다. 이 불확실성은 뇌의 보상 회로를 더 강하게 자극하여, 사용자가 반복적으로 SNS를 확인하도록 만든다.

둘째, SNS는 ‘사회적 비교’를 촉진한다. 사용자들은 타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SNS상의 콘텐츠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비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적인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며, 이는 종종 부정적인 감정과 불안정한 자아상을 조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교의 욕구는 SNS 사용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셋째, SNS는 ‘FOMO(Fear of Missing Out·놓칠까봐 두려운 현상)’를 유발한다. 사용자들은 SNS를 통해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정보와 유행, 사람들의 활동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정보 결핍의 두려움은 지속적인 SNS 접속을 유도하게 된다.

이러한 강력한 메커니즘의 조합으로 인해 사용자는 ‘행동 중독(Behavioral Addiction)’에 빠질 수 있다. 즉 SNS 사용자는 보상, 비교, 두려움 등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동일한 행동을 수행하게 되며, 이는 점차 자기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SNS 중독을 막기 위해서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자신의 생활 패턴을 재조정하고, 자기 자신과 깊은 대화를 가져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자기 조절 능력은 필수적인 자질로 인식될 것이다.  

출처 : 디지털 디스토피아 불러오나, SNS의 중독 유발법


나는, 나와 아무리 친해도 아닌 것은 아니다 말해 준다. 그것은 친한 상대방을 위해서이고 또한 나와 진정으로 절친이 될 사람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긍정적인 이중성도 있다. 때론 따뜻하고 때론 냉철해질 용기 말이다. 무던하고 둥근 성격이다가도 불의 앞에선 미움 받을 용기로 각을 세울 수도 있는 '좋은 이중성' 말이다.


범죄자들의 부모님들이 대부분 외치는 호소가 놀랍다.


"착한 우리 OO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니에요. 억울해요. 절대 그런 죄를 지을 리 없어요"


그래서일까. 내가 존경하는 어르신께선 불완전 인간의 실존에 대해 '사람은 믿고 의지할 존재가 아니라 섬기고 도와주어할 존재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내 기본 성향은 사람에게 전폭적으로 진심을 주는 편이기다. 이 양립이 어려운 두 가지 요소는 30~40년 된 여러 절친들 및 많은 만남의 축복들을 인생에 선물로 주었다. 그간 좋은 친구를 분별하기 위해, 내가 나름 개발한 나만의 방식은 (잘못에 대해선) 쓴소리나 책망을 해보는 거였다. 그럼 그 사람의 실체가 일부 드러난다. 책망을 해보면 못 뗀 사람은 태반 드러난다.


반면 위선과 가식은 도리어 내가 자랑을 해보면 드러났다. 이 후자를 터득한 것은 몇 년 안 되었다. 나에게 잘하던 아니 내가 손해를 감수하며 도와준 직장 후배가, 내가 고 성과자가 되자 내 고객사를 빼앗으려 (뒤에서) 해괴한 시도를 했던 일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질시도 사람을 병들게 하며 자기 불의에 눈 멀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요즘은 충고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예의나 배려가 없어 그 자체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람을 살리고 세우려고 하는 충고가 잡음이나 도리어 공격이 되기 때문이다. 허나, 자신이 평소 충고를 잘 받는 사람들은 본인도 충고 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예와 진실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팩트를 왜곡하고 거짓으로 실수에 살을 붙이더니, 이젠 하지도 않는 일(취소)을 했다 꾸미면서, 습관적으로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다. SNS에 중독된 남성들이여  밤낮 수고하는 자기 아내와 자녀들을 좀더 잘 챙기십시다. 여성들이여 외로운 우리 부모님들을 좀더 자주 찾아뵙고 섬기십시다. SNS에 과도하게 쓰는 시간들, 수시로 우리 스스로 성찰하며 자기 이중성의 모순을 점검해야 한다. SNS의 타인에게는 그토록 살갑게 대하면서, 내 곁의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얼마나 무심하고 심지어 무례히 분을 쏟아내는지 말이다.


살아보니,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잘 분별할 확률이 높은 듯도 하다. 그래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 같다.


다행히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임에도,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친한 분들도 정말 청정해역 같은 분들이시다. 그런 점에서 '부분의 선'이란 주제 역시 어쩜 나 자신이 더 좋은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자는데 논점에 힘을 주고자 한다.















*거악(巨惡): 크게 행해지는 범죄

**참고하면 좋은 글 :

https://brunch.co.kr/@minjikim/57







**다루기 어려운 사람 매거진의 예정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예정 목차

*목차는 순번대로 안 하고 조금씩 조정될 예정이에요.

1. 다루기 어려운 사람

2. 폭군 열등감 다루다?

3. 내 주변에 부분의 선 - 불의한 사람  

4. 뒷담화 않는 사람 -다루기 어려운 사람 1위

5. 다, 사연이 있어요 - 상사,동료,후배 모두를 인격체로 존중

6. 고양이 목의 방울 달기(feat.사내 변호사)

7. 순교정신으로 최선을

8. 잘난 놈을 질투하지 말고 가까이 두라

9. 못난 놈에게도 배우라

10. 투덜이 스머프를 멀리하라

11. 할인쿠폰, 마일리즈 모으지 않는 이유

12. 2:8 법칙과 가십맨들

13. 사내 정치는 OUT < feat.4_사내정치와 설화(舌禍) >

14. 실력은 기본 아이템 - 학교나 지능이 아니라 태도와 EQ다

15. 직장에서 나를 도와주는 팬텀이 생긴다?

16.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말고

17. 거짓 선동자 멀리하라

18. 성실과 정직은 입이 아니라 삶으로

19. 반사이익자들의 먹잇감  

20. 커피타임 양날의 검

21. 선배가 어려워하는 후배

22. 사람, 씹지 말고 소화하기  

23. 새로운 인재상 New Color 족속

24. 가장 강한 사람 - 필요한 게 없는 사람

25. 잔머리는 결국 들통난다

26. 성공자들의 결과를 흉내내지 말고 과정을 배우라

27. 이익(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으라

28. 소탐대실 하지 말라

29. 진정성은 천천히 탄탄히 가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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