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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Nov 03. 2019

세 달 머무를 곳을 찾아 나서다

2주간만 허락된 시간

  1월부터 미국에서 생활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10년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  브루더호프공동체라고 교회 목사님이 다녀와서 그곳의 생활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생활을 하던 때, 시간이 될 때마다 인터넷에 올라온 탐방기를 읽곤 했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니다 보니 종교적인 이유로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었다. 그들의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 생활에 대한 내 동경은 자꾸만 커져갔다. 게다가 친구 복이가 3년 전에 어느 날 갑자기 1년 휴직을 내고 미국에 간다고 하더니 2개월 정도 다녀왔다. 그녀의 모습에 정말 부러웠다. '내가 먼저 가려고 했는데... 나는 언제나 갈 수 있을까?'  


  브로더호프공동체는 ‘16세기 초, 종교개혁 당시 제도권 교회를 떠나 삶의 단순성과 형제애, 비폭력을 추구하던 후터파 공동체’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저명한 강사이자 작가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1920년대에 초대교회의 생활방식에 따라 일체의 사유재산 없이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독일의 작은 마을에 처음 만들었다. 1930년대 말, 전쟁과 박해를 피해 영국에 이어 파라과이로 이주했다가 적게는 250~300명의 주민들로 구성된 공동체 마을들이 미국, 호주 등지에 생겨났다. 각 공동체는 사유재산 없이 공동체가 오직 한 개의 통장을 소유하고 장로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책임을 맡아 관리하는 곳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공동체 중에 내가 가보고 싶은 나라는 일단 미국이었다. 미국은 가장 많은 공동체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미국식 교육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할 듯싶다. 땅 덩이 큰 나라인데 어느 지역 공동체를 가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복이가 기왕이면 큰 공동체에 가란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더 많이 있을 것 같다고 한다. 


  www.brudehof.com이라는 싸이트에 들어가서 뉴욕주에 있는 Maple Ridge라는 공동체를 찾았다. 검색해보니 구성원 중에 다행히 한국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이 싸이트가 나오고 다행히 한국어 서비스도 있었다. 그 한국 사람을 통해 자원봉사 코디네이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있어요.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이번에 제가 휴가를 받아 두 아이와 3개월 정도 공동체를 방문하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당신들이 생활하는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싶어요.”


 관광비자로 미국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이다. 기왕 미국에 갔으니 보름 정도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결정한 기간이다. 코디네이터에게 답장이 왔다. 

“방문자가 기본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은 2주입니다. 기왕이면 가족 전체가 오는 것이 온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알고 있는 다른 방문자들은 2주 동안 잘 생활하면 1~2달 정도 연장되는 것에 무리가 없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코디네이터의 메일을 긍정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전체 일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일정을 어떻게 계획할까 고민하던 중 멕시코에 사는 친구 생각이 났다. 친구는 미국에서 멕시코는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것만큼 가깝다고 했다. 멕시코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결혼까지 하고 정착한 친구가 그리웠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다.

“나 같으면 문명의 발상지인 페루도 다녀올 거 같은데~ 어때?” 

어머 웬걸~ “남편! 그거야” 

막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이 방송된 후였다. 세계지도를 보니 딱 들어맞는 코스이다. 정말 고마운 남편이다. 


  일단 항공권을 구입해야 일정이 확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구간 예매를 해야 해서 싸이트에서 하려고 하니 복잡했다. 문득 미국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거래했던 여행사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1월에 연락했는데 3개월 전에 비행기표가 제일 저렴하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3월경에 ‘뉴욕-> 페루-> 멕시코-> LA-> 샌프란시스코’ 107일간의 여정이 계획되었다. 저렴한 것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모든 티켓은 환불불가였다. ‘꼭 갈 거야!’라고 다짐했다. 나와 아이들의 항공료를 모두 합쳐서 690만 원이었다. 


  우리 셋이 하는 새로운 경험을 남편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빚 갚아야 하니 열심히 일하고 있을게~”라는 남편을 위해 뉴욕행 왕복 티켓을 추가 구입했다. “당신한테 뉴욕 구경시켜줄게~ 그리고 브루더호프에서 2~3일이라도 우리랑 같이 생활해보고 돌아와~ 그래야 아이들이랑 전화통화할  때 대화가 되지~” 그렇게 해서 810만 원 항공권을 결재하던 날, ‘아무것도 모르는 두 아이를 데리고 그 먼 곳까지 다녀올 수 있을까?’ 괜스레 엄청난 부담감이 나를 압도하고 가슴이 떨렸다. 


  브루더호프 공동체 코디네이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온 가족이 체험하면 좋겠다던 당신의 이야기에 용기를 내어 남편도 1주일간 휴가를 받았어요. 5월 18일에 한국을 떠나 22일경에 공동체에 도착할 수가 있답니다. 너무 기뻐요”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답장이 왔다. 

“첫 방문이라서 2주 이상은 절대로 머물 수가 없어요”

이미 항공권을 결재했고, 환불 불가라고 한 번 더 사정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혹시나 해서 친구가 다녀왔다던 벨베일공동체에 급하게 메일을 보냈다. 이미 우리 가족의 소식을 알고 있는 듯했다. 역시나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하긴 한국에서 아줌마 한 명이 아이 둘을 데리고 방문한다는 것이 흔하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쉽게 생각했나 싶다. 그래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어떤 방법이 있겠지~~’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최근에 타로를 공부한 선배 언니한테 상담 요청을 했다.

“지금 현재의 상황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넌 지금 변형(transformation)의 과정에 있어. Just feel free 하라는데?” 

하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자유롭게 두 팔 벌려 날고 있는 Fool카드가 인상적이다. 

‘그래~ 한번 믿어보자!!’


직장맘의 육아휴직 레시피 – 두 아이와 미국 세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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