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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Nov 03. 2019

정말 우연이었다

나도 해당되다니

  내가 육아휴직 대상자가 된다는 것을 안 것도 정말 우연이다. 승진 이야기가 있었으나 예산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 해 업무 배정, 예산에 대한 회의를 하는 중에 우연히 육아휴직 얘기가 나왔다. 육아휴직 기간이 연장되어 초등학교 2학년까지 가능하단다. ‘내년에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차! 나도 그 대상이 되는 구나~’ 가슴이 꿍꽝 꿍꽝 뛰기 시작했다. 12월의 어느 추운 밤, 모임에 가기 위해 건대입구 역에 내렸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발걸음이 여유로웠다. 길가에 ‘타로/사주’라고 씌워진 포장마차들이 눈에 띄었다. ‘한번 물어나 볼까?’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제가 내 년에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요. 가능할까요?” 타로 카드에 질문을 던졌다. “음...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 기회는 선생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용기가 더 생겼다.


  간절한 마음으로 직장에 요청했다.

“제 삶의 목표는 승진이 아니예요. 예전에도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저에게는 휴식이 필요해요. 지금 아니면 이렇게 공식적으로 쉴 수가 없잖아요. 일을 그만 둘 형편도 안되구요.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개인의 바램이 간절하다 하더라도 직장에서 허락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경제적 혹은 마음적으로 힘든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직원 개개인의 경험치가 중요하다. 그런데 경력이 높은 사람이 많으면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직장은 타기관에 비해 이직률이 낮고 직원들의 경력이 쌓여가는 상황으로 매년 예산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경력이 높은 내가 6개월 육아휴직을 하면 예산에 여유가 생기는 상황이다. 계약직 직원을 채용하고 남는 예산으로 사업비에도 배정이 가능한 상황이다. 직장의 이해관계와 나의 바램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육아휴직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공식적으로 결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다.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았다. 휴직 전에 해 놓고 가야 일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다급해졌다. 6개월 육아휴직 때문에 직장에서의 내 위치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최근에 육아휴직이 보편화되었다 해도 공공기관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넘사벽이 될 수밖에 없다. 직원의 3분의 2가 여성인 내 일터에서는 몇 년전부터 출산휴가 3개월을 포함해서 1년간 쉬고 나올 수 있게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육아휴직을 못 쓰는 기관들이 많다. 그래서 직원들은 이런 직장에 근무한다는 것을 감사해한다.


  그럼에도 ‘이제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다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리 없다. 남자직원들의 눈에는 더 이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생기는 파장까지 생각해야 했다. 출산휴가까지 포함해서 육아휴직 9개월을 쉰 직원들이 몇 명 있는데 나로 인해 3개월을 더 쉬겠다고 할 여지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확하게 1년 정도 쉰다면 계약직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데... 애매하게 3개월, 6개월 계약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업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좀 적응할라치면 그만두어야 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는 육아휴직이 내 삶에 해당된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여유로운 생활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바램은 있었다. 그 방법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생각해 봤지만, 육아휴직을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경제적 상황도 아니다. 어설프게 남들 따라서 대출 왕창 끼고 집을 샀다가 은행 좋은 일만 시키고 빚을 잔뜩 진 상태이다. 다행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보람과 가치가 컸다. 계속 일은 하고 싶다. 그렇지만 스무살 이후로 숨가쁘게 살아온 내 삶의 잠깐 휴식이 간절하다. 내가 육아 때문에 가장 힘들어하던 시절, 나를 지켜보던 80년대 생들이 이제는 모두 아기 엄마가 되었다. 몇 년 사이에 근로자의 권리의식이 높아졌고, 80년대 생들에게 육아휴직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그 시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잊지 않았기에 나도 그들의 육아휴직에 대해 도우려고 애 써왔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라나?


  6개월을 쉬는데 ‘언제 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직원이 20여명 정도밖에 안 되는 NGO기관에서 중간관리자로 일을 하고 있는 나~ 대표 바로 다음 직급을 맡다보니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직장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위탁심사와 평가가 제일 큰 걸림돌이다. 더 큰 무게감이 있는 재위탁심사는 다행히 작년에 지나갔고, 올해는 시설 평가가 있다. 시설 평가는 6월~8월 사이에 진행이 되는데 정확한 날짜는 5월 말에나 결정된다. 연초와 연말에 이루어지는 기관 운영 전반에 대한 계획, 평가 등이 더 비중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4월까지 시설평가를 사전 점검해 놓고, 5월부터 10월까지 쉬기로 했다.


  더불어 아이들 학교 문제, 집안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먼저 두 아이의 학교 출석일수를 고려해야 한다.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물으니 출석인정기간만 채우면 되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단다. 큰 아이가 6학년이어서 학교 수업 진도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물었더니 초등학생은 언제든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1~2주 전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이야기하면 된다고 한다. 요즘에는 현장체험학습, 어학연수를 가는 아이들이 많아서 선생님 입장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 일단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계획을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딱히 준비해야 할 것도 없고, 괜히 얘기 했다가 마음이 붕 뜨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는 비밀이 없기에 온 동네에 소문이 나는 것도 과히 좋지 않은 것 같다.


직장맘의 육아휴직 레시피 – 두 아이와 미국 세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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