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지낼 곳을 찾기 위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를 알아보았다. 어떤 친구는 미국에 가니 명문 대학 탐방을 가서 아이들의 목표 수준을 높여 놓으라고 한다. 일류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교육열이 높지도 않은 편이라 머나먼 이야기로 여겨졌다. 2개월밖에 안 되는 기간 동안 어학연수를 할 것도 아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뿐이다. 새로운 공동체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우리 가족이 그들과 자연스럽게 일상을 나눌 수 있느냐’이다.
먼저 뉴욕에서 가까운 펜실베니아에 있는 팬들힐(www.pendlehill.org)에 메일을 보냈다. 그곳에 다녀온 몇몇 분과 통화도 했다.
“미국이라는 위험한 나라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펜들힐 만큼 안전한 곳이 없어요. 어떻게든 사정을 해보세요. 쟁취하셔야죠!”
퀘이커 정신에 입각해서 영성훈련과 워크숍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동체이다.
메일 답변이 왔는데 첫 시작부터 부정적이다.
“저희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지 않아요”
내친김에 한번 더 밀어붙이기로 하고 답장을 보냈다.
“제가 첫 숙소를 제공하는 자원봉사자가 되면 안 될까요? 저는 아줌마고, 건강해서 웬만한 일들을 다 할 수 있어요. 일부 비용 부담도 가능하고요”
처음에는 논의를 좀 해보겠다고 하더니 이후 답장이 없다.
“저희는 사정상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자원봉사에 대한 혜택을 전혀 줄 수 없어요. 일반 게스트로 숙식을 제공받아야 하는데 그 금액이 10,000달러 정도 됩니다. 명세서 동봉합니다. 게다가 우리 공동체는 시골에 있어서 아이들이 오면 지내기에 매우 지루할 거예요”
한 달을 기다려서 들은 내용은 강한 거절이다. 헐~ 어쩌나...
두 번째로 시도한 곳은 미국 중부 콜로라도에 있는 선라이즈랭취공동체이다.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니 불편은 하겠지만, 2달 동안 안전하게 생활할 수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정보를 보니 7개월간 인턴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 30시간씩 일을 하면서 함께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의 빛’을 발견하는 초교파적인 공동체 집단이다. 삶과 노동이 분리될 수 없으니 얼마나 적당한 곳인가 싶다.
다행히 선배가 아는 지인이 그곳에 다녀왔다고 해서 이것저것 도움을 받았다.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응답이 아주 긍정적이다. 프로그램 신청서를 작성하라며, 첨부파일까지 보내왔다. 신청 동기, 신원확인 싸인, 추천서 2부, 이력서 등 내용이 상당히 많다. 거의 확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취업비자가 있나요? 저희는 기관 운영의 특성상 취업비자 소지자만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가 가능해요” 출발이 한 달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취업비자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 다시 한번 사정을 해보았지만, 답변은 변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몇 년 전 책을 통해 접했던 이타카 에코빌리지이다. 설립자이면서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고 있는 리즈 워커에게 메일을 보냈다. “공동체 일원들에게 당신의 상황을 공유할게요”라고 단순한 답변이 오더니, 1주일 후에는 “2달 동안 1,000달러짜리 임대가 가능한 집이 있어요. 어떤가요?”한다.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다른 공동체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한 2주일 뒤에 답을 보냈다. “그 집은 이미 훌륭한 주인을 만났어요” 헐~ 나를 통해 이 곳을 알게 된 선배 언니한테 상황 얘기를 했더니 “이타카에서 생활하려면 차가 있어야 해~ 그리고 아주 심심할 거야. 정 안되면 코넬대 한인학생회에 연락해서 방학 동안 비는 방을 렌트하는 것이 좋겠어. 내가 방학이 되면 한 2주간 그곳에 갈 거니까 한번 알아볼게”한다. 공동체를 경험하기 위해 가는 내가 방을 렌트해서 생활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ㅠ.ㅠ
다른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제이 언니한테 도움을 요청했더니, 캠프힐 장애인공동체를 소개해 준다. 직장 동료 중에 그곳에서 2년간 생활했던 친구가 있단다. www.camphill.net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전 세계에 퍼져있는 공동체였다. 그중에서 북 아메리카에 있는 공동체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www.camphill.org)를 자세히 살폈다. 일단 총괄 코디네이터에게 메일을 보내고, 뉴욕 인근에 있는 개별 공동체 홈페이지에도 다 들어가서 메일을 보냈다.
얼마 후에 Kimberton공동체에서 연락이 왔다.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있네요. 아침, 점심, 오후 일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우린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데 숙박, 차 렌트 등을 모두 개별 부담해야 해요. 우린 제공할 수가 없거든요. 그 과정을 도와줄 수는 있어요.”
‘아니~ 나를 완전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만 하는구나’ 싶다. 그래도 다시 이메일을 보내본다.
“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떻게 삶을 나누는지 경험하고 싶어요. 기왕이면 공동체 안에서 같이 생활하고 싶습니다. 무급휴가여서 돈을 아껴야 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모든 비용을 합쳐서 월 2,000달러면 충분한데, 마을 안에 있는 방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에요.”
처음 들었을 때는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는데 상황이 점점 나빠지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떠나기 1주일 전 코디네이터 미미에게 연락이 왔다.
“할머니 한 분이 고양이랑 살고 있는데, 혹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나요?”
“우리 아이들은 동물을 아주 좋아해요”라고 답을 보냈다.
미미는 아주 친절하고 세세한 사람이었다.
“방이 2개이고, 수영장도 있어요. 월 500달러면 차를 렌트할 수 있어요”
일단 이곳을 최후의 선택지로 남겨 두기로 하고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시 소개를 받은 곳이 국제공동체 단체(www.ic.org)이다. 공동체 종류도 다양하고 몇 천 개나 되는 공동체가 있었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나라라고 여겼던 미국에 이렇게 많은 공동체가 있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연락했던 부루더호프, 캠프힐도 여기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일단 지역과 공동체 규모,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 등을 참고하면서 두 곳에 메일을 보냈다. 펠로우쉽공동체(www.fellowshipcommunity.org)는 Rudolf Steiner의 정신에 의해 설립된 곳이고 뉴욕에서 조금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 학교들이 많은데 바로 그런 정신을 계승하는 공동체이다.
감사하게도 바로 연락이 왔다.
“당신 메일을 보고 너무 반가웠어요. 아주 멋진 생각을 하고 있네요. 여기 신청서 첨부해서 보내니 작성해서 보내주세요~”
시어머니 칠순여행을 갔는데 메일이 와서 부리나케 작성을 해서 보냈다. 답변이 곧장 왔고 내용도 긍정적이다.
“정말 러블리한 가족이네요. 부서 담당자들과 당신 신청서를 공유했으니 기다려주세요~”
기다리는 동안 출국이 2주밖에 안 남은 상황이라 혹시 모르니 감성으로 호소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사진으로 찍었다.
“당신의 칭찬에 내가 너무 행복해요. 이 도전이 다시 한번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당신은 행운아예요. 이렇게 러블리한 가족이 있으니~ 이 그림을 동료들이랑 봤는데 아주 행복한 느낌이 난다는 얘기를 하네요....... 미안한데요. 아직까지 좋은 소식을 줄 수가 없네요. 당신한테 맞는 빈 아파트를 찾지 못했어요. 언젠가는 좋은 소식이 있겠지요~”.
‘젠장~ 나보고 어쩌라고!!’
미국 사람들의 표현 방식을 느끼는 순간이다. 겉으로는 아주 그럴듯한데, 결론은 부정적이다.
마지막으로 뉴욕에 있는 가나스공동체(www.ganas.org)에도 메일을 보냈다. 홈페이지에서 봤을 때는 ‘문제 해결 지향’을 목적으로 설립된 도시공동체 느낌이 난다. 시내에서 가깝고 숙박이 1인당 월 80여만 원이라고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정 안되면 이런 곳도 좋겠다 싶다.
‘아이들이랑 뉴욕 구경도 좀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을 테니~ ’
그런데 아무리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 출발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뉴욕이랑 거의 11시간이나 나는 시차~ 나는 매일 아침을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혹시나~ 연락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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