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신없이 4개월이 흘러 드디어 5월 1일이 되었다. 휴직에 들어가자마자 5월초 황금연휴가 시작되었다. 올 여름에 있을 시어머니 칠순을 앞 당겨 잔치도 하고, 연휴를 맞아 가족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드디어 이야기 할 때가 되었다. 거제도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다.
“애들아~ 엄마가 6개월간 육아휴직을 받았잖아. 그래서 미국에 한 3개월 가서 생활해 보려고 해~ 엄마랑 미국에도 가고, 페루, 멕시코에도 갈래? 아니면 집에 있을래? 일단, 엄마랑 집을 떠나면 밥을 제때에 못 먹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들이랑 친해지는데 시간고 필요하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면서 결정해줘~~ 엄마랑 같이 가고 싶은지 아니면 아빠랑 집에 있을 건지~~”
첫째 민서는 “가고는 싶은데... 친구들을 못 만나는 것이 걱정인데? 그리고 졸업사진도 찍을 건데 어쩌지?” 6학년이라 걱정되는 것이 많다.
둘째 지민이는 “엄마? 정말~~ 나는 갈 거예요. 신난다. 학교 안가고 놀러가서” 마냥 신이 나나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학습지는 최소 한 달 전에 이야기해야 한다. 4월초에 선생님한테 비밀리에 이야기를 해 놨다. 한 달 분량을 3개월 수학문제집으로 대체해서 받기로 했다. 지금까지 2년째 학습지를 하고 있는데 꾸준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6학년이라 그런지 최근들어 친구관계에 대한 걱정이 많다. 구립 방과후교실을 다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할까 불안한가보다. 사춘기가 막 시작되는 나이, 딸의 친구관계에 대한 부담감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아깝지만 3개월치 등록비를 내고 돌아올 자리를 확보하기로 했다.
학교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했더니 현장체험학습기간은 최대 5일이란다. 나머지 기간은 결석인데 1년 190일 학습기간 중 3분의 1인 63일 이상만 빠지지 않으면 된다고 하신다.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격려를 더해 주신다. 계산을 해보니 현장학습 5일과 여름방학을 제하면 45일 결석을 하게 된다. 둘째 담임선생님은 국어책, 수학책을 가져가서 엄마랑 같이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해주신다.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한 2주간의 시간이 남았다. 여전히 나는 매일 아침 가슴을 졸이며 이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초조한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항공권 구입을 했을 때도, 이곳저곳 공동체와 연락을 취할 때도 내가 얘기하면 그저 남의 얘기를 듣는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블로그를 개설해서 글을 쓸 계획이라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은 다른 것은 다 못 도와줘도 곧 돌아올 결혼기념일 선물로 카메라를 사주겠다고 장담을 한다. 그 얘기를 한지도 몇 달이 지나서 이제 떠나기까지 열흘도 안 남았는데, 움직일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다.
‘차라리 내가 사고 말지~’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던 중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입원까지 했다. 내 마음이 불편하니 열이 나고 몸이 안 좋은 남편을 마음 편하게 보기 쉽지가 않다.
일주일을 남겨둔 토요일 저녁이다.
“얘들아~ 얼른 자기 할 일 다 하고 우리 저녁 먹고, 병원에 있는 아빠한테 족발 사가지고 가서 같이 먹자”
병원에 있던 남편이 우리를 반긴다.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내고 스트레스 받다보니 남편을 보자마자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온다.
“카메라는 어떻게 됐어?”
“지금 상황이 어떤데 카메라가 얘기가 나와?”
“아니~ 당신이 몇 달 전부터 얘기하더니 아직까지 소식이 없잖아. 그게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 몇 군데 검색해서 주문하면 되지~ 이제 일주일 밖에 안 남았잖아! 여태까지 뭐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딱 그거 하나 해준다고 해 놓고서는”
순간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서럽다. 6인실 병실이라 다른 환자들도 있는데... 챙피한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러게... 누가 가래? 자기가 저질러 놓고는...”
남편의 한마디에 더 사무친다. 아이들에게, 다른 환자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벽을 향해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니 남편도 놀랬나보다. 급하게 내 손목을 붙들고 병원 옥상으로 데리고 간다. 족발 먹을 생각에 들떠 있는 민서가 엄마아빠가 사라지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다음날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나의 고민을 아는 지라 영국 브루더호프에 있는 후배한테 연락을 했단다.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연락처를 알려주라고 하는데 어떡할래?”
“그러게요. 무얼 도와달라고 해야 할까요?”
“빽은 못 써준대~”
“그럼 됐어요. 이제 더 이상 브루더호프 쪽은 기대하지 않을래요~”
“니 마음은 어떠니?”
“그냥 그래요. 어제 남편이랑 한바탕하고 울고 났더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어떤 길이 있겠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려고요”
“그래. 다행이다. 넘 감사하다~ 그 마음만 있으면 돼~”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어디 가냐고 물어봐서요. 참 곤란해요. ㅠ.ㅠ”
“그냥 신비주의 코스프레 해~”
“그래야죠~ 본의 아니게”
“하하하 ~그러다 진짜 신비를 경험할거야. 난 너의 간증을 기다리련다. 항상 그 분은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을 때 우리를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지금 겪는 이 일도 그런 그 분의 기막힌 연출 같아. 아마 잘 물어보면 답을 들려 주실거야”
‘역시 목사님 같은 말씀이다’ 싶으면서도 이쯤 되니 나도 그 말이 수긍이 된다.
그 동안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스물 셋 이스라엘 키부츠에 자원봉사 갔다가 준비도 없이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는 지금보다 영어도 더 못했고, 핸드폰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어도 잠잘 곳 예약도 안하고도 잘만 다녔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가진 것도 많고, 핸드폰도 있고, 경험도 많은데... 뭐가 그렇게 두려워~!! 정 안되면, 집을 렌트해서 띵가 띵가 놀다가 오면 되지~~ 여태까지 고생했으니 그 정도 누릴 자격은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이제는 정말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때인가 보다.
직장맘의 육아휴직 레시피 – 두 아이와 미국 세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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