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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당신의 사랑이 오늘도 안녕하길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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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재 Apr 30. 2024

내 친구가 나의 연인과 결혼했다.

낯선 이의 완벽한 위로

마음이 힘들 때면 바다로 달려가곤 했다.

늦은 새벽일지라도 최대한 멀리멀리.

2023년 4월 30일. 나의 연인이었던 사람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를 동시에 잃은 날.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누가 들을까 봐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어디에 그냥 콱 고꾸라져 죽고 싶었다. 밥도 물도 넘기지 못한 채로 누워있다가 늦은 새벽, 차를 몰아 정동진으로 향했다. 그렇게 달려간 바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새벽 4시의 정동진.

검은 파도가 마치 바위를 부숴버릴 것처럼 세차게 몰아쳤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서서 지켜보다가 물에 젖지 않으면서도 파도 소리 가장 크게 들을 수 있는 적정 거리를 찾아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서러움에 눈물이 맺힐 때쯤, 곁으로 한 여자가 모래를 튀기며 지나간다. 불쑥 짜증이 솟아 말없이 인상을 찌푸리니, 아주 연약한 목소리로 사과의 말이 들린다. 바스러질듯한 목소리. 곧 그 자리에서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그녀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소주병을 든 채로.

창백한 얼굴, 바르르 떨리는 손가락. 빨개진 코끝. 풍겨져 오는 술냄새에서 그녀의 짙은 시름이 느껴진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아마 그녀 또한 누군가를 떠나보냈음이 틀림없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건넬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자 최고의 응원, 위로라곤 그뿐이었으니까. 터벅터벅. 그녀가 나를 지나쳐 걸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바다를 응시했다.

털썩.

떠난 줄 알았던 그녀가 내 뒤에 앉는다. 이 늦은 시각, 낯선 바다에서 만난 처음 본 여자가 갑자기 내 범위 안에 들어와 앉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마치 그녀 또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내게 위로를 전달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만 느낄 뿐.

모래사장에 그녀와 앞뒤로 앉아, 서로 위안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나의 등 뒤에서 조용히 훌쩍대고, 나는 그녀가 보지 못하게 조용히 눈물을 훔쳐내며.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을 더 앓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명이 일어나자 다른 한 명이 따라 일어났다. 우린 모래가 묻은 옷을 툭툭 털어내며 말없이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가족들의 걱정 어린 시선도, 주변 이들의 진심 어린 조언에도 미동도 없던 내가 우연히 만난 낯선 이로부터 완벽한 위로를 받았다. 그녀와 나는 각자의 사정에 대해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우리가 같은 처지에 있다는 걸. 사람은 때때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가시지 않는가.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으로부터 오는 안도감. 나는 그녀를 보고 안도했다.

그녀와 헤어진 후 나는 몇 시간 차에서 쪽잠을 자고 일출 시간에 맞춰 다시 바다로 나왔다. 짙은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간절히 빌었다. 오늘로써 소중했던 나의 친구,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과거의 연인을 이 바다에 던져버리고 떠날 테니, 다시는 내 마음속에 떠오르지 못하게 해달라고. 몇 번을 빌고 또 빌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녀 덕분일까. 아니면 일출을 보며 빈 소원 덕분일까.

그날 내가 버린 이들의 얼굴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어떨까. 그녀를 눈물짓게 했던 그 이를 잘 떠나보냈을까. 내가 궁금한 것은 이 단 하나였다. 나는 그날 이후 몇 번이나 정동진을 찾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날 순 없었다. 앞으로도 절대 그런 일은 없을 테지. 하지만 그녀를 만난다면 꼭 묻고 싶다. 내가 당신에게도 위안이 됐는지. 그날 이후로 나처럼 덕분에 보통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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