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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Sep 15. 2024

삶을 함께하던 연인들은
이별도 쉽지 않다.

함께 살던 집에서 그가 떠났습니다.

누군가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겠다이대로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함께 살던 집에서 당신이 떠났다. 옷가지, 책, 컴퓨터, 책상 등. 그리고 당신의 온기까지 모두 들고서. 먼저 이별을 고한 것은 나였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시간을 후회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악을 질렀다. 당신은 반쯤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이런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리곤 잠시 후 “알겠어”라는 고작 그 한마디만 남기고 집을 나가 한참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 까. 낯선 소리에 나가보니 당신이 어디선가 큰 차를 끌고 나타났다. 그리고 말없이 작은 방 안에 있던 짐을 꺼내 하나씩 실었다. 아주 단호한 손길로, 거침없이. 이미 당신에겐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당신은 짐을 싣는 내내 방 문 옆에 서있는 나에게 눈빛 한 번도 주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모든 짐을 다 실은 당신은 “갈게”란 짧은 인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잠시나마 또렷해졌던 당신의 향기가 다시 희미해진다. 


당신이 떠난 후 나는 며칠을 잠도 자지 못한 채로 뒤척였다. 가장 못난 꼴로 이별을 뱉어낸 나를 증오하면서. 사흘쯤 지났을까. 간신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당신이 무엇이라도 두고 갔을까 얼마간 열지 못했던 작은 방 문을 열어 보았다. 우리 사진으로 가득했던 벽이 텅 비었고, 매일 잔소리하게 만들던 널브러진 당신의 옷가지들이 모두 사라졌다. 몇 년을 함께 살던 집인데 처음부터 주인이 없던 방처럼 텅 빈 방을 보곤 나는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했다. 


삶을 함께하던 연인들은 이별도 쉽지 않다. 같이 타던 차, 같이 살던 집. 사는데 필요했던 모든 것들을 공유했기에 마음이 끝난 이후에도 정리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 전화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핑계들밖에 없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같이 타던 차를 어떻게 할 건지 따져 물었다. 그리고 그 말을 시작으로 한참이나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함께한 모든 시간이 힘들었으니 당장 나에게 돌아와 사과를 하고 떠나라는. 


당신은 오랫동안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다가, 떠나던 그날 밤처럼 “알겠어”라고 짧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쯤 흘렀을까. 늦은 새벽 당신이 찾아왔다. 우리가 함께 살던 집으로. 그리곤 나에게 그동안 당신이 했던 모든 일들을 모두 사과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순간까지도. 


얼마 동안의 오랜 사과가 끝났다. 그 뒤에 어떠한 다른 말이 이어지진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지만, 당신은 덤덤하게 사과를 끝낸 후 내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다시 참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말들을 퍼부으며, 당신의 안녕을 빌어주긴커녕 아주 찌질하게 우리의 사랑을 끝장내 버리기 시작했다. 


폭우처럼 원망 어린 말을 쏟아내는데 미동도 없는 당신을 보자, 나는 결국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당신이 먼저 사과를 하며 나를 꼭 끌어안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당신은 마치 굳은 나무처럼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내가 울음을 다 그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무엇보다 빛났던 우리의 사랑도, 아름답던 나의 당신도 결국 이기적인 나의 손에 아주 처참하게 끝이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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