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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13. 2024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다시 기대하고

저물어 가는 약속

상현이 처음 미래에게 사랑에 기대어 수많은 약속의 말들을 속삭였을 때. 미래에게 그 약속은 마치 자신과 상현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묶어주는 어떤 매듭처럼 느껴졌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던 상현의 자신 있는 한 마디 한 마디와, 거듭되는 다짐에 미래는 더 깊이 그리고 아주 자세히 상현을 사랑하고 신뢰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어떤 균열도 없이 완고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상현이 미래에게 마음을 증명하듯 쏟아냈던 그 약속으로부터였다. 


빈틈이 아직 균열로 이어지기 전, 미래는 상현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하지만 미래가 그렇게 발버둥 침에도 반복되는 상현의 실수, 그리고 그 실수를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할수록 미래의 마음은 차츰차츰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무리 상현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미래의 마음 한 구석이 조금씩 얼어붙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미래는 여전히 상현을 사랑했다. 그 사실만은 변함없지만 상현의 반복되는 거짓에 미래는 점점 자신의 마음이 병이 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믿고, 속고, 다시 믿고 또다시 속고. 미래는 아무렴 이제 상현이 그 어떤 달콤한 말로 사랑을 속삭여도, 그녀를 위해 어떤 용기 있는 행동을 해도 상현의 전부를, 두 사람의 사랑을 모두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미래는 종종 생각했다. 자신과 상현의 사랑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고. 상현의 안일함에 미래는 점점 더 외로워지고, 두 사람의 추억마저도 빛이 한참 바랬다. 핑크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시커멓게 타버린 한 줌의 재처럼 남았다. 


미래는 아마 오늘 밤도 상현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다가 그렇게 잠이 들 것이다. 잠시나마 두 사람의 미래가 달라지길 기대했다가, 다시 좌절하며. 그리고 아직도 상현을 놓지 못하는 그녀 자신을 자신을 원망하면서. 


차가운 바람이 미래의 코 끝을 스친다. 한 여름 태양처럼 뜨겁고 강렬했던 미래와 상현의 사랑도 이렇게 가을바람에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 소리 없이 꺼져가고 있다는 걸 상현은 알까, 미래는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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