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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Jan 22. 2024

처음입니다. 20km를 뛴 것은.

[대만 생활] 달리기 시작한지 이제 1년입니다.

주말이면 평일보다 더 멀리 달리곤 하지만 이번 주말엔 더 동했다. ‘20km 뛰어 보지 머’ 하고 집을 나섰고 2시간 20분 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대만 와서 갖게 된 여러 생활패턴 가운데 하나가 조깅. 대만에 온지 1년이 되어가고, 도착한 다음날 아침부터 뛰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으면 밖으로 나가고 너무 덥거나 비가 오면 실내에서 뛴다. 


야외 코스도 그날 상황과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시간이 넉넉지 않으면 집근처 대학교 트랙 위를 주로 뛴다. 주말이고 날씨도 괜찮고 덥지도 않고 몸도 무겁지 않으면 쌍계천에서 지롱강으로 이어지는 강변을 달린다. 써보고 나니 필요충분조건이 까다롭긴 하네. 오늘 토요일 아침, 기온은 17도 정도고, 해도 구름에 가려 따갑지 않고, 주말이고, 늦잠자지도 않아 시간도 넉넉하다. 몸은 가볍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다. 강변으로 내달릴 시간이다.   


그런데 왜 20km? 올 상반기에 마라톤 하프 코스를 달려볼까 한다. 하프 코스가 20km이다 보니 사전에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15km까지는 달려봤으나 아직 그 이상은 경험이 없다. 해볼만한가 싶어 해봤다. 


내가 애용하는 강변코스는 안경을 벗고 달릴 수 있어 좋다. 눈이 좋지 않다 보니 안경을 벗고 달리는 것은 언감생심이건만 이 코스는 그 언감생심을 허용할 정도로 턱이 ‘전혀’ 없다. 넘어질까 조심할 필요가 없으니 안경 벗고 달리기 제격이다. 


감히 스스로 ‘러너’라고 붙여 본다면 러너에게 안경은 불편함 그 자체다. 땀이 나면 흘러내린다. 무언가 얼굴에 걸쳐 있다는 느낌도 달리다보면 더 느껴지는데 벗고 달리면 눈도 시원하고 그렇게 상쾌하기 그지없다. 


강변까지는 집에서 약 1km. 이 구간은 가볍게 몸 풀며 예열하는 구간. 1km당 스플릿 시간을 체크하곤 하는데 7:03초가 걸렸다. 보통 6분에서 6분 30초로 달리면 적당한데 10km 구간을 달리다 보면 처음 2km까지는 내 몸에게 ‘나 이제 달린다’ 신호를 주는 구간이고, 달리는 데 아직 몸이 깨어나지 않아 약간 무겁게 느껴진다. 


각 km 구간이 대충 어디인지 안다. 13km까지는 강변 따라 달려봤기에. 그리고 반환해서 돌아오는 루트인지라 편도 7km까지는 이 정도 달리면 ‘1km 달렸군’이란 감이 있다. 달리다보면 다리도 지나가는데 ‘아 이 다리 지나갈 때쯤이니 스플릿 구간 몇 초라고 워치가 알려주겠군’ 싶다. 방금 스린 다리(士林橋) 지나갔다. 2km 구간이다. 워치가 얘기해 준다. “2km입니다. 스플릿 시간은 6분41초입니다.” 처음 1km구간보다 20초 단축됐군.


주말에 뛰는 타이베이 지롱강가의 모습

2km를 지나가면서는 몸도 슬슬 깨어난다. 뛰는 게 처음보다 오히려 덜 힘들어진다. 그러면서 주변이 보여 진다. 강변 농구장도 지나가고, 다리 아래 체조하는 어르신들도 지나간다. 대만에서는 젊은 친구들은 물론이고 연세 꽤 지긋한 중장년 어른들도 농구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달리면서 농구장을 바라볼 때면 공이 들어가나 안들어가나 나 혼자 내기를 하곤 한다. 공이 그리는 포물선으로 미리 알 수 있다. 토요일날 본 아저씨는 제법 실력이 좋다. 들어갔다. 


강변에는 낚시하는 강태공들도 꽤 많다. 옹기종기 모여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잡아서 먹는지는 모르겠다만 물고기들이 제법 실하다. 간혹 물위로 물고기들이 점프하곤 하는데 처음에 그 장면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다만 물고기를 잡는 것은 본적이 별로 없다. 시간을 낚는 게 주된 목적이 아닌가 싶다.  


쌍계교가 보이기 시작하면 3km 지점이다. 스플릿3km 시간은 6분11초다. 평소 속도에 올라 왔다. 쌍계교 아래를 지나갈 때면 십중팔구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다리 아래 아무 방해받지 않고 연습하시는 분이 거의 항상 계신다. 


쌍계교를 지나면 바로 쌍계천과 지롱강이 만난다. 시야가 확 트인다. 이 구간부터는 여름에는 꽤 힘들다. 나무 그늘 없이 그냥 툭 터져 있다. 겨울엔 너무나 좋다. 강가에는 보트들도 꽤 놓여 있다. 4km, 5km, 6km 지점까지는 거의 직선 주로다. 구간별 시간은 6:21, 6:22, 6:25로 비교적 일정하다. 지롱강에는 낚싯배가 떠 있고 언제부터 거기서 낚시를 시작하셨을지 모를 분이 투망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지롱강 따라 7km 지점까진 가봤다. 간이 휴게소가 하나 있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나라인 대만인지라 자전거 쉼터 같은 곳이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잠시 커피도 마시고 전주나이차도 마시고 간단한 토스트도 먹는다. 겨울인지라 한동안 닫혀 있는 모습만 보곤 했다. 이곳을 반환점 삼아 보통 돌아왔다. 그러면 대략 13~15km를 달리는 셈이다. 스플릿7 시간은 6분 22초다. 아직은 달릴 만하다. 


이제부터는 이전에 달려보지 않은 코스다. 자전거로는 몇 번 가봤기에 길이 낯설진 않다. 계속 가면 지롱강과 단수이강이 만나는 지점이 나오고 대만 전통 마주 신을 모시고 있는 관두궁이 있으며 계속 이어진 길을 따라 가면 단수이라는 곳이 나온다. 석양이 아름답기도 하고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배경이 되었던 곳인지라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10km 지점은 그 관두궁이 나오기 바로 전에 위치한다. 8~10km 구간의 경치는 더욱 좋다. 강폭이 넓어지면서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도 보인다. 타이베이 시내를 벗어나기에 여러 작물을 심어놓은 논밭도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겨울인지라 눈에 띄는 것은 없지만. 논밭 너머 멀리에는 구름이 걸려 있는 양명산이 있다. 조금 더 달리면 갈대숲도 꽤 넓게 퍼져 있고 다양한 조류가 있는지 꽤 좋은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사진을 찍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도 포진해 있다.   


경치는 좋은데 반환점이 어디일지 기다려졌다. 말인 즉슨 점차 돌아갈 길이 걱정되기 시작됐다는 것이다. 8~10km구간의 시간도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6:29, 6:32, 6:41. 아직은 그래도 달릴만 하다. 그래도 반환점이 어서 나오면 좋겠다. 


드디어 10km 반환점이다. 반환점 표식이야 당연히 없다. 나 혼자 워치 시계로 거리를 재고 있던 것이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던 몇 몇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으나 나는 방향 전환. 그 간이 휴게소가 보이면 힘이 좀 더 날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익숙한 구간이니 말이다. 휴게소까지 3km 정도 가야 하니 거기까지는 10~13km 구간이다. 느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스플릿 구간은 7분 안쪽이다. 6:52, 6:44, 6:47이다. 


지난해 11월에 스탠다드 차타드 타이베이 마라톤에서 13km를 뛰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13~15km, 보통 주말마다 10km를 뛰었으니 15km 정도까지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다. 이를 반대로 얘기한다면 15km 이후부터는 나에겐 미지의 영역이다. 


15km 이후부터 구간 속도 시간도 7분대로 넘어갔다. 그래도 아직은 달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주고받을 여유도 남아 있다. 서로 손을 들어 인사하거나 엄지척을 해주곤 한다. 

쌍계천-지롱강가 따라 달린 20km 코스 루트

17km를 넘어서자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마지막 3km는 걷다 달리기를 반복했다. 스플릿18에서 20까지의 구간 시간은 8:35, 8:28, 8:49. 거리 20km를 채우고 딱 100m를 더 간 뒤에 워치 종료 버튼을 바로 눌렀다. 


어딘가 앉고 싶다. 목도 마르다. 종종 가는 아침 식당 야외 테이블에 털썩. 좋아하는 도우장(豆漿_일종의 콩국)을 시키곤 들이킨다. 땀이 흠뻑 이다. 앉은 자리를 휴지로 닦고 일어섰다. 


이렇게 20km를 처음 달려본다. 토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어디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요양 아닌 요양 중이다. 그러곤 일요일 저녁 지금 상반기에 뛰어볼 하프 마라톤을 골라보고 있다. 중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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