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관광 22개 장면 중 다섯 번째] 중년 초짜 마라토너의 버킷리스트
중국관광객들이 평가한 평양관광 만족도 리스트에서 눈길이 가는 콘텐츠가 하나 있다. ‘평양 마라톤.’
평가개수가 많은 것도, 평점이 높은 것도 아니다. 평가개수는 7개(남5, 여 2)로 42개 콘텐츠 가운데 38번째였고, 평점은 3.86으로 41번째에 불과하다. 많이 찾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점이 높은 것도 아니다. 아니 낮다.
하지만 눈길이 간다. 2010년대 북한 관광콘텐츠 변화를 확연히 보여주는 대표 콘텐츠로 여길 만 하기에, 그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정식 명칭은 ‘만경대상국제마라손경기대회.’ 김일성 주석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태양절(4월 15일) 즈음에 열린다. 1981년 처음 열린 뒤로 2019년 제30차 대회까지 열렸고 코로나로 중단된 이후 2024년 현재까지 재개되지 않았다.
일반 마라톤대회처럼 풀코스, 하프코스, 10km, 5km로 나뉜다. 김일성 경기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간혹 능라도 5.1 경기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북한이라는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세계 10대 이색 마라톤 대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저 그런 마라톤 대회는 아니다. 2019년 대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브론즈 라벨 경기로 인정받기도 한 대회다. IAAF는 자체 기준에 따라 전세계 마라톤 대회를 매년 평가해서 골드, 실버, 브론즈 라벨 대회를 선정한다. 이렇게 라벨을 부여받으면 공인코스로 인정되는 셈이다. IAAF가 현재는 세계육상연맹(WA)으로 바뀌면서 등급도 플래티넘, 골드, 실버, 라벨 이렇게 4개 등급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평양 마라톤 대회는 국제마라톤협회(AIMS)로부터도 인증을 받은 대회이기도 하다.
참가비는 풀코스는 USD115, 하프는 USD95, 10km는 USD70이다. 보통 마라톤에 참가하면 기념품으로 스포츠수건 등을 주는데 평양 마라톤도 마찬가지란다. 중국 신화통신 기자가 체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참가했는데 등록할 때 받은 제공물품은 기념 수건, 등록 번호표, 감응식 기록칩 등이다. 우리 마라톤 대회 제공 물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대회가 흥미로운 것은 2014년 북한의 스포츠 대회 중 처음으로 일반 외국인 참가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베이징에 소재한 고려투어스가 독점적인 권한을 갖고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오고 있다. 이 마라톤 대회는 관광상품에 포함된 형태로만 있기에 상품 구매는 필수다. 물론 해외 전문 마라토너의 경우에는 2014년 전에도 상품 형태가 아니라 대회 자체 참가 형태가 가능했다.
사실 한국인 프로선수 마라토너도 참가한 적 있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기 직전 해인 2007년 황영조 감독이 이끄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 마라톤팀 선수들이 참가했다. 다만 이후 다시 참가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히기 전인 2019년 가을 남북 간에 합의서가 체결되어 2020년 창원통일마라톤대회 우승자 등 40여명이 참가 예정이었으나 대회 자체가 취소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참가가 허용된 첫해인 2014년 평양을 찾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는 중국, 독일 등 20여개국 200여명이란다. 다소간의 변화가 있으나 마지막으로 열린 2019년 제30차 대회에 외국인 참가인원은 950여명에 달했다. 2018년 450여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국적도 다양하다. 중국, 모로코, 케냐, 에티오피아, 러시아, 스웨덴, 스위스, 영국 등이다.
2019년 대회에는 북한 주재 영국 대사인 콜린 크룩스도 참가해 인증샷을 남겼다. 이를 엑스(구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되었고. 현재 콜린 크룩스는 주한 영국대사로 부임해서 남과 북 양측에서 모두 근무한 최초의 대사로 일컬어진다.
평양 마라톤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올림픽 기록영화팀이 제작한 ‘평양 마라톤’(Running in North Korea)이란 작품으로 2019년 마라톤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제2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주요 코스는 김일성경기장을 출발해 만경대 근처에서 반환점을 도는 루트이다. 직선주로가 많은 점이 특징이다. 개선문과 창전거리, 김일성광장, 평양 대극장을 지나면서 대동강변을 길게 따라 달리게 된다. ‘평양 마라톤’에서는 이 코스를 “북한을 홍보하기 위한 최적의 루트로 이뤄져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만들려고 하는 이미지를 코스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대회에 참가해 북한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2023년 자유아시아방송과 인터뷰를 했던 한 참가자는 “평양에서 처음으로 완전히 ‘관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이는 난공불락의 나라에 대한 작은 일탈”이라고 밝혔고 또다른 참가자는 “마라톤 경주나 그 거리 장면은 아마도 저희 여행 동안 가장 ‘대본’이 없었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관광상품이 통제되고 짜여진 일정을 벗어날 수 없는 상품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마라톤을 달리며 그제서야 관리받지 않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말이다. 다만 이는 달리 말하면 북한으로서도 큰 ‘용기’를 낸 셈이다. 외국인에 대한 통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체제일진대 마라톤 코스를 통해 자신들을 선전하고 평양을 홍보하며 자랑하고 내세우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그 통제된 부분에 일정 정도 ‘균열’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니 말이다.
마라톤과 평양은 어쩌면 다소 아이러니한 조합이기도 하다. 규모가 큰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평소에는 뚜벅이로 다닐 수 없는 차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달리는 해방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데도 있다. 일종의 ‘착시적 자유’라 할 만하다. 그러한 자유를 평양이라는 어쩌면 전세계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또는 가장 감시적인 요소가 많은 도시에서 그러한 착시적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데 아이러니한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마라톤은 외래 관광객을 유치하는 좋은 창구이자 테마이긴 하다. 전세계 아마추어 마라토너 인구를 생각하면, 매년 전세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1년을 벼르는 인구를 생각하면 더욱이 그렇다. 우리나라 서울 마라톤이나 춘천 마라톤, 경주 벚꽃 마라톤 대회에도 수천명의 외국인이 참가하고 있다. 이는 스포츠 관광상품 차원에서 훌륭한 콘텐츠인데 북한도 이러한 스포츠관광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런 차원에서 평양 마라톤에의 외국인 관광객 참여를 허용한 것은 북한의 관광상품 역사에서 작지 않은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왜 2014년 즈음에 이뤄졌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인 2010년대 북한은 관광분야를 통한 경제개발을 강조해 왔다. 이는 기존의 외래객 유치를 통한 외화수입 창출은 물론이고 관광단지 개발을 통한 경제성장 등을 포괄하고 있다.
그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의 김정은 위원장 발언이다. 김 위원장은 “원산지구와 칠보산지구를 비롯한 나라의 여러곳에 관광지구를 잘 꾸리고 관광을 활발히 벌리며 각도들에 자체의 실정에 맞는 경제개발구들을 내오고 특색있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북한 스스로도 “관광업발전에 큰 힘을 넣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 2010년대 지정된 북한의 경제개발구와 경제특구 가운데 상당수는 관광목적을 강조하고 있다. 모두 28개의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 가운데 관광 성격을 포괄하고 있는 곳은 모두 18곳이다. 또한 경제개발구 유형을 공업개발구, 농업개발구, 관광개발구, 수출가공구, 첨단기술개발구로 특정하면서, 관광개발구를 주요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게 관광개발구로 아예 특화된 곳도 무봉국제관광특구, 신평, 온성섬, 청수 등 4개에 달한다. 2013년 제정된 북한 경제개발구법 제49조에서는 또한 ‘관광업’ 관련 조항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경제개발구에서는 해당 지역의 자연풍치와 환경, 특성에 맞는 관광자원을 개발하여 국제관광을 발전시키도록 한다”고 명기해 놓고 있다.
이렇게 2013년은 관광을 통한 경제개발 전략의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이었다. 그와 맞물려 평양 마라톤에의 외국인 관광객 참여 결정이 내려졌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일 듯싶다.
평양 마라톤에의 외래객 참여는 2010년대 북한 외래관광 콘텐츠 변화의 일면이다. 사실 북한 관광상품에 포함된 다양한 콘텐츠의 변화는 2010년대 꽤 많이 이뤄졌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이후 다른 주제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지만 ‘북한 속으로 들어가 보기’ 콘텐츠가 많아졌다는 특징은 완연하다.
아무튼 달리기를 루틴으로 삼아 하루를 보내고 있고, 올해 연말 하프 마라톤을 신청해 놓았고 북한 사람들의 일상에 관심이 많은 중년 입장에서 평양 국제 마라톤 참가는 일종의 버킷리스트처럼 되어 있다.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의 평양 마라톤 참가를 부러워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기회가 나에게도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