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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km를 뛰었습니다.

[대만 소소한 일상] 달리기, 대만이 준 선물

by KHGXING

화창합니다. 달리기 그만인 아침입니다. 주저 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평소 선호하는 아침 러닝 코스, 쌍계천을 한 바퀴 돌 심산입니다. 해도 아직 완전히 쨍하고 뜨진 않아 서늘한 그늘이 있고 바람도 선선합니다. 몸까지 가벼우니 이 어찌 안 나갈 수 있나요. 풍광도 따듯합니다. 쌍계천을 내달리는 드래곤 보트가 보입니다. 단오가 얼마 남지 않은 거죠. 오늘 달리기 맛집입니다.


지난주에는 짧은 장마철이어서 비가 많이 왔습니다. 어제 아침엔 구름만 잔뜩이고 비가 오지 않기에 그나마 기회다 싶었습니다. 밖으로 나갔죠. 1km 정도 갔을까 싶은데 구름이 심상치 않네요. 구름 빛깔이 짙고 어두워집니다. 급기야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하네요. 그대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아파트 단지내 러닝머신에서 잔여 달리기를 하고 마무리했습니다. 그 아쉬움에 오늘 화창함이 더욱 도드라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침 달리기가 루틴이 된 지 2년이 넘었습니다. 대만에 온 게 2년 전이니까 대만에 오며 그 루틴이 시작된 것이죠. 온 첫날부터 무엇에 홀린 건지 뛰기 시작했습니다. 1월말인데도 ‘포근한’ 그 날씨가 반가웠나 봅니다. 영하 10도 안팎의 한국을 떠나 영상 10도를 추워하는 나라에 도착한 첫날, 1월말에 야외에서 달릴 수 있다는 점에 신기해하며 호텔 근처 강변 따라 달렸습니다. 그리곤 곧 일상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1주일에 3번 정도는 달렸습니다. 물론 기복이 있었죠. 많이 달릴 때는 1주일에 4~5회도 달렸지만 게으를 때는 1~2회도 감지덕지였습니다. 변명 거리가 많았죠. 약속이 많았고, 날이 더웠고 날이 추웠습니다. 감기에 걸렸고 근력운동이 과해서 쉬어야 했습니다. 그 모든 변명에, 운동을 못하더라도 ‘마음’이 이해해 주었기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달리기는 시간이나 거리도 충분하진 않았죠. 근력운동에 앞서 준비단계 차원에서 했기에 길지는 않았습니다. 거리로는 2~3km, 시간으로는 20분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만에서의 달리기는 제법 본격적인 러닝입니다. 1주일에 5회 내외 달립니다. 평일엔 5~6km, 주말엔 10km 정도 뜁니다. 가급적 쉼 없이 뜁니다. 중간에 걸으면 다시 달리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물론 처음부터 5km, 10km를 쉼 없이 달린 건 아닙니다. 돌이켜보니 초창기에는 2km도 한 번에 내달리진 못했네요. 한국에서의 달리기 관성이 남아 있던 탓일까요. 한국에선 하루에 달리는 거리가 2~3km였으니 몸이 그에 맞춰져 있던 것이겠지요.


계기마다 달리는 거리가 늘어났습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기도 하지만 성공이 성공의 어머니이기도 하다고 전 믿습니다. 달리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어느 날 2km를 쉼 없이 내달리고 3km를 넘어섰고, 그 다음날부터는 3km가 쉬어졌습니다. 어느 날에는 3km를 쉬지 않고 달리니 4km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날이 왔고 그 경험과 기억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달리기 속도는 그 당시 그리 빠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한국에서 보다도 느렸겠다 싶네요. 한국에서 2~3km만 달리던 때는 꽤 빨랐습니다. 시속 11~12km로 달렸으니까 1km당 5분에서 5분20초 정도였네요. 처음 5km를 달리던 시기보다 약간 빨라지긴 했지만 지금도 1km당 달리는 시간은 6분 내외입니다. 속도는 줄이고 거리를 늘인 셈이죠.


대만 러닝의 또다른 차이는 야외에서의 뛰는 맛을 ‘알아버렸다’는 겁니다. 러닝머신 위에서의 달리기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날씨만 허락한다면 기본적으로 제게, 달리기는 야외에서 하는 활동입니다. 대만이기에 가능하겠죠. 물론 대만 여름 덥습니다. 하지만 아침 5시쯤 나가면 해가 뜨기 전이라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이용하는 야외 코스는 꽤 다양합니다. 그날 아침 달릴 거리와 내키는 마음에 따라 코스를 선택합니다. 우선 가장 기본 코스는 집근처 타이베이시립대 트랙입니다. 트랙 한바퀴가 400m입니다. 트랙의 장점은 우선 쿠션감이 있어 피로감이 덜 하다는 것과, 함께 뛰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트랙에서 바라보는 양명산 풍경도 매일 새롭습니다. 청명한 날이면 파란 하늘 배경 양명산이, 흐린 날에는 구름이 걸쳐져 있는 양명산이 반깁니다.


텐무 야구장 외곽 도로를 도는 코스도 종종 이용하는 코스입니다. 한 바퀴가 1.7km 정도 되기에 3바퀴 정도 돌면 평일 하루 거리를 넘어섭니다. 이 코스의 장점은 트랙이 아닌데도 도로에 둔덕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눈이 나쁜지라 안경이 필수인데도 안경 벗고 뛰어도 달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도로와 인도가 이어지는 부분은 모두 비스듬히 경사로 처리돼 있기에 가능합니다. 한 바퀴 길이도 적당하고 경사도 무리하지 않게 있어 5km 뛰는 데 지겹지 않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드래곤 보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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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단오를 앞두고 쌍계천에서 연습중인 드래곤 보트 일원/ (오른쪽) 종종 달리는 쌍계천 천변 모습


좀 멀리 나가고 싶을 때 이용하는 코스가 오늘 아침에 뛰었던 쌍계천 코스입니다. 집근처 하천 따라 놓여 있는 천변 도로입니다. 한 바퀴 돌아 집에 오면 6.7km 정도 됩니다. 그날 기분이 동하면 더 멀리 나가죠. 지롱강변까지 나가 뛰면 8~10km이고 더 지나 자전거 휴게소를 찍고 오면 14km, 오늘 날이다 싶으면 단수이 가는 방향으로 관두까지 다녀오면 20km가 됩니다. 관두를 다녀온 적은 3~4번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비가 오거나 너무 더우면 방법 없습니다. 아파트 단지내 피트니스센터 러닝머신에서 바깥 구경하며 또는 TV를 틀어놓고 달립니다. 그날 그날 조건과 기분에 따라 코스를 고르곤 했죠. 수동 AI인 셈이네요.


무얼 그리 제 달리기에 시시콜콜히 관심이 많겠다고 이리 자세히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번쯤 제 달리기 소개해드리려 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봅니다.


이렇게 하니 어림잡아 1년에 1,000km 뛰었습니다. 더 ‘엄밀히’ 계산해 보면 1,200km 정도입니다. 1주에 20~25km, 52주니 계산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허나 감기 걸리거나 몸이 불편할 때 못 뛴 적을 감안해서 1,000km라 여깁니다. 2년이 이러했고 그러니 2,000km 뛰었습니다.


그간 일상 루트 이외 여행이나 출장을 가거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다른 코스를 달리기도 했죠. 그 중 마음에 들었던 곳은 다안삼림공원이었고, 타이중 시내 공원과 가오슝 해안가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한국 출장 가서는 동산동 창릉천도 익숙한 동네이니 좋았고 해운대와 남해안 지역 해안가는 달리기 풍광 맛집이었습니다.


이러했지만 실은 몸매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네요. 아내나 아이가 매일 놀립니다. 달리는데 왜 그러냐고. 왜 뱃살은 변화가 없고 옆구리 날개는 그대로냐고. 워낙 먹는 양이 많아서 그러겠죠. 그렇게 먹는데도 이렇게 변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 셈이죠.


아무쪼록 달리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달리기가 일상이 된 제 모습이 좋습니다. 그날 그날 잘 살아내는 바탕이 달리기가 아닐까 싶네요.


하여간 이제 3,000km입니다. 3년차 대만이 제게 주는 선물 제대로 즐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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