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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세아 Nov 13. 2019

아이와 세계한달살기, 일 년을 머무를 짐 싸기

버려야 채워질 수 있으니까



우리는 평수를 조금 줄였다. 어른 캐리어 두 개와 아이 캐리어 하나로, 세워둘 때는 한 평이 안 되는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압축팩 몇 장으로 그 공간 안에 짐을 정리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철학이 중요한 일이었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인지, 써야 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었고, 그건 기억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동안 소유한 것들은 그렇게 인과 관계가 한데 묶여 얽혀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그것들은 삶의 시간과 패턴을 변화시켜왔다. 우리는 이것들을 분리해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가기로 했고 털어내야 하는 애정 어린 기억을 뚝뚝 잘라내는 것과 동시에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오십 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두어 개씩 채워지고 버려졌다.   





작게 느껴졌던 신혼집을 꽉 채운 것은 반절이 아이의 장난감과 책이었다. 그리고 최근 일 년간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는 옷도 반 이상이었다. 바쁘지만 게으른 워킹맘 엄마를 위해 싱크대 한편을 꽉 채운 여분의 어린이용 식기들과 수십 개씩 쌓여있는 넘치는 수건을 정리하면서는 아주 잠깐 동안 울컥했다. 항상 죄책감에 시달리며 성실함을 강요당하던 하루하루를 겨우 지탱해주며 버터낼 수 있게 해 준 것들은, 실은 고작 이런 쇠 쪼가리들과 천조각이 아니였을까?





 가구와 가전들은 대부분 새로 이사 올 사람들에게 가게 되었고, 남은 짐들은 버리거나 본가에 보관해놓았다.

작은 1톤 용달차를 불러 박스 몇 개를 실어 보내고 나름대로 정이 들었던 집을 떠날 때는 갑자기, 오랜 것들과 이별한다는 실감이 나더니 설명할 수 없이 기분이 이상해졌다.

'우리는 이별하는 연습을 계속해야 해, 그래야 새로운 것들과 만날 수 있어.'

의외로 덤덤하던 여섯 살배기 딸에게 건넨 말은, 사실은 어른 아이인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TIP 

짐싸기에 관하여


우리는 캐리어가 있었지만, 항공사들의 수화물 정책을 먼저 살펴보고 파손이 없고 가벼운 소재로 된 28인치, 26인치, 20인치 사이즈의 캐리어를 한 달 살기로 거주할 집에서 적재 가능하게 보관할 수 있게 개별 구매했다. 그리고 각자 작은 사이즈의 백팩을 한 개씩 메었다.   


 우선 일년짜리 유학용 실비보험을 가입했지만, 현지 약이 안 맞을 경우를 대비해서 어린이용 약들을 먼저 담았다. 아이에게 잘 맞는 이부프로펜 성분의 소분 포장된 물약을 담고 물탈이 날 때를 대비해서 역시 소포장된 액체 지사제, 그리고 시럽 멀미약과 혹시 모를 알레르기를 대비한 항히스타민을 상비약으로 먼저 챙기고 그다음은 자주 사용하는 것들, 목감기용 스프레이와 연고들, 메디폼을 약상자 무늬의 파우치에 담았다.  


 그리고 의복의 경우는 한 달 살기를 하거나 여행을 할 나라들의 날씨를 미리 찾아 옷들과 신발을 준비하고, 아이가 사랑해 마지않는 '여름나라'에서 하는 수영을 위해서, 체온 유지에 필요한 서핑 슈트와 아쿠아슈즈, 그리고 수영도 못하면서 자꾸 맨몸으로 풀장에 뛰어드는 아이를 위한 작은 팔 튜브를 넣었다. 비치타월은 부피 문제로 넣지 못해서 건식 스포츠 타월 몇 개를 준비했다.  


주방에서 사용할 물건들은 작은 반찬통을 겹쳐지는 것으로 한 세트 준비하고 어린이용 식기 한 벌, 그리고 1인용 미니 밥솥과 미니 에어프라이어 중 고민하다가 하루아침에 식습관이 바뀔 것 같지 않아 거의 매일 사용했던 에어프라이어를 넣었다. 음식들은 대부분 한국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많이 준비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가장 잘 먹는 누룽지는 한팩 담았다.


 기타 다른 것들은 아이의 소소한 일상을 추억으로 남겨 놓기 위해 브이로그 촬영과 편집용으로 액션캠과 노트북을 준비했고, 로밍을 하지 않고 현지 유심을 구입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와이파이만 있으면 전화가 가능한 070 인터넷 전화기를 구입했다. usb 고속 충전 멀티콘센트와 아답터는 필수적인 항목이라 준비했고, 우기를 대비해서 양산 겸용 우산 두 개, 피크닉과 해변에서 사용할 가벼운 돗자리, 우리나라와 같지 않을 수질에 대비해서 현지에서 필터가 조달 가능한 물병 정수기와 샤워헤드 필터세트도 준비했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으로 공주 드레스 한벌을 가져가고 싶다고 했고, 다행히 그 정도의 공간은 있었기 때문에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 로션과 화장품은 무게가 있어 인터넷 면세에서 주문해 픽업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수화물은 20킬로씩 3명 총 60킬로, 기내는 7킬로씩 3명 21킬로여서 총 80킬로의 짐 싸기가 끝났다. 


 어떤 물건이 현명했고, 어떤 물건이 필요 없었는지는 적어도 반년 이상 살아 본 이후 위 글에 코멘트를 붙여야 될 것 같다.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방 친해지는 활달한 성격의 일곱 살 아이, 로숲이는 세계 일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스케줄 매니저로, 아빠는 짐꾼과 보디가드로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로숲 TV :: rosoup https://youtu.be/fpIR1AfLTq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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