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Moment
intro
무슨 일 있어?
" 나 요즘 스트레스를 받나 봐, 기분도 계속 다운되고 무기력해."
"그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없을까?"
이건 나만의 방법이긴 한데
한번 해볼래?
나는 몸치다.
춤을 못 춰서 몸치라기보다 워낙 몸이 뻣뻣해서 어떤 운동을 해도 평균 이하의 실력을 보여준다.
남들은 나보고 "운동 참 잘할 것 같아요"라고 하는데, 오해다. 그건 순전히 나의 까무잡잡한 피부에서 오늘 편견이다.
필라테스, 요가, 골프 이리저리 열의 있게 시작은 하였으나 대나무 같은 내 몸뚱이와 부족한 유연성으로
운동에 흥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꾸준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나와 잘 맞는 운동을 발견했다.
아니지. 기계라고 해야 하나?
바로 러닝 머신이다.
나는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등록했다. 그리고 요즘 헬스장을 자주 기웃거린다. 예전에는 체력이 따라주질않아 운동하는 것이 너무나 피곤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운동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된 건, 헬스장을 등록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다.
덧붙여 이야기하면 -5kg이라는 목표가 생겼을 때부터인 것 같다.
하루는 회사를 마치고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에 갔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끝내고 러닝 머신 위에 올랐고,
일정한 속도의 빠른 걸음으로 무작정 걷고 또 걷기 시작했다. 20분쯤 지났을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얼굴엔 땀범벅이 되었다.
오잉?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나는 20분 걷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진짜 저질체력이다.
그리고 순간 생각했다
'그냥 눈앞에 있는 저 STOP 버튼을 눌러, 말어?'
러닝머신 위에 올려진 빨간색 STOP이라는 글씨가 그날따라 강렬하게 다가왔다.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기 전 비장했던 의욕과는 달리 급속도로 지쳤다.
"어휴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헬스장을 등록하고 일주일은 그렇게 2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다시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끝내고 러닝머신위에 올랐다. 걷고 걷다보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어김없이 내려가고 싶은 순간이 또 왔다.
'STOP! GO…STOP! Go….?'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수십번 고민했다.
그런데 그날은 포기하지 않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속도 버튼을 'UP' 시키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6.5, 6.6,6.7 …..8”
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리고 왼다리와 오른 다리의 간격이 훨씬 넓어지시 시작했다.
마치 황새 따라잡는 뱁새가 되듯이 후드득 뛰었다.
“헉 헉”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나는 지친 몸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달렸다.
처음에는 내 몸이 상, 하로 분절되어 뛰는 느낌이었다.
러닝머신 벨트에 내가 곧 씹혀 들어갈 것 같은 희한한 상상도 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속도는 더 빨라졌는데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은 한결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꿈틀꿈틀 몸에서 에너지가 발산되면서 깃털처럼 가볍고 경쾌해졌다. 그리고 달리는 게 지칠 줄 몰랐다.
마치 꽃밭 위에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을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 혹은 '러닝 하이(Running High)'라고 한다.
30분 이상 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데, 이는 마약성분인 모르핀이나 마리화나를 투약했을 때 유사한 의식 상태라고 한다.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도취감이다.
달릴 때 생성되는 엔돌핀의 영향인 것이다.
짧게는 4분에서 길게는 30분 이상도 지속되는 러닝 하이를 느끼는 순간,
"WOW"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땀이 인중에 맺히다 턱 밑으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냥 고작 달렸을 뿐인데, 기분 좋은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니!
이것이야 말로 나에겐 Healing Moment !
물론 러닝 하이에서 오는 엔돌핀의 영향이 가장 컸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입에서 감탄사를 연발한 건 러닝머신 벨트에 오르기까지의 나의 다짐부터 시작된다.
집에서 운동복으로 환복하기 - 운동화 신기 - 집 문 열기 - 헬스장까지 3분 걸어가기
릴레이처럼 매일같이 갈지 말지를 주저하며 고민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사점(dead point)이 왔을 때 멈추지 않고 끝까지 도달하고자 했던 나의 주체적인 자의식. 이 모든 걸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래서랄까 달리는 동안 더욱 황홀했다.
누구나 한계에 다다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
어떤 일을 하든 늘 오락같이 즐겁고 재미만 있을 순 없지 않나..달리는 건 그런 삶을 반영하듯 지침, 불안, 초조의 그늘에서 깨어나!라고 불호령을 내리는 스승과 같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일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당연한 노력의 메시지는 꽤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달리기는 속도 이상의 의미를 주었다.
러닝하이는 내가 포기하지 않은 정신과 노력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짧은 시간, 무기력한 일상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다.
여기에 보태어 집으로 돌아가 목욕물을 데운다.
물에 몸을 담가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물과 함께 흘려보내면 길었던 나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ps. 참고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달리기를 추천하지만, 자칫 러닝 하이의 중독에 빠져들 수 있으니
적당한 달리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