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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속의 명상, 그 후에 남은 것

일상에 명상 백 일흔여덟 스푼

by 마인드풀

최근 들어 명상을 관성에 따라 했었다. 몸이 좀 피곤하다는 핑계로 깨어 있지 못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먼저 육체적으로 잠에 빠졌다. 잠에 언제 빠져드는 지도 모르는 채 명상을 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다가 정신을 차렸다.

정신적으로는 자꾸만 잡생각에 빠졌다. 명상을 했다기보다 몽상을 했다고 봐야겠다.

요 며칠 자꾸 반복되어 다시 내 마음을 돌아보니 명상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마음으로 행했다.

피곤을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머리가 복잡하니, 머리를 쉬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실 이 목적대로 보자면 잘 되었다. 긴장이 완화되니 잘 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하며 마음대로 몽상할 공간을 주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허전했다.



명상은 2개의 측면이 있다.

하나는 도구로서의 명상이고 두 번째는 본질로서의 명상이다.

도구로서의 명상은 약을 먹듯이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가고 싶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처음 명상을 할 땐 이런 도구로서 시작을 하는 게 자연스럽고 필요하다.


하지만 본질로서의 명상은 다른 결이다. 있는 그대로 이 순간에 존재하려 한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올라오는 생각, 감정 느낌을 바라본다.


이는 명상 자체가 하나의 길이 되는 것이며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명상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삶 자체, 일부가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도구로서의 명상이 약속하는 효과들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본질'로서의 명상 이름이 말해주듯 이것이 본질이다.


혈압을 낮추려고 애를 쓰면 오히려 낮추기 어렵고 실패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저 호흡에 집중하고 이 순간에 존재하면 존재할수록 혈압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도구로서의 명상은 명상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동기를 부여하는 보조수단이므로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키판에 의지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키판에 의지하지 않듯이.


본질로서의 명상은 원리는 단순하다.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생각마저 내려놓은 상태.


그렇지만 실천은 어렵다.

마음은 줄타기하듯 계속 오락가락한다.

너무 애쓰면 경직되고, 너무 느슨하면 금세 잠에 빠져든다.

자연스럽되, 깨어있음은 놓치지 않도록.


농구 선수가 골대에 공을 던지는 연습을 계속하듯

나도 명상 수행을 이어가 보려 한다.

공이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그저 계속해서, 이 자리에 앉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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