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 뼈가 녹아내렸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둥근 안경을 쓴 치과 의사 선생님이 X-ray를 보며 이야기해 준다. 저게 내 치아일까? 앞니 바로 옆 치아 뿌리 쪽부터 해서 잇몸까지 동그란 무언가가 있다. 한눈에 봐도 크다.
"치아 뿌리 위쪽에 풍선 같은 거 말인가요?"
나는 치아가 뿌리 쪽 짚게로 풍선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치아가 이곳은 싫다고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어 하는 걸까.
"풍선이 아니고 염증입니다. 고름이죠 지금 뼈까지 타고 들어갔습니다. 여기 이 부분은 고름에 잇몸뼈가 녹아내렸어요."
잇몸뼈가 녹아내렸다니.. 뼈라는 게 그리 쉽게 녹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신경치료 바로 진행해야 합니다. 고름이 더 커지면 큰 문제가 됩니다. 오늘 치료하고 진료 예약해 드릴 테니 절대 빠지시면 안 됩니다. "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내 얼굴 위로 초록색 천이 올라오며 시야가 가려진다. 곧이어 기분 나쁜 깔끔한 냄새가 퍼진다. 치과의 인조적인 깔끔한 냄새는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는다. 뒤이어 드릴소리와, 철과 내 치아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아프다. 진짜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나온다. 내 치아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양치질을 잘 못했나? 바쁜 와중에도 양치질은 빠짐없이 했다. 1년에 한 번씩 스케일링을 통해 치석관리는 했었다. 치아 문제가 아닐 거야... 이건 어쩌면 내 몸 전반적인 문제일 거라 생각한다
약 7개월 전에 인턴이 되었고, 이전에 살았던 삶에서 보다 견디기 버거운 막중한 업무들이 부과되었다. 그리고 1개월 전부터는 전공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인지던트 (인턴+레지던트) 업무를 빠르게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들이 익숙해질라 치면 다시 새로운 것들의 연속이었다.
업무와 책임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 수면 부족은 늘 달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새벽에 눈을 언제 붙이든 콜 전화는 시시때때로 왔다. 병원의 수련의 생활은 처리해야 하는 하루 일과가 있고 그 중간의 틈에 새로운 일들이 추가되었다. 새로운 일들이 응급하면 기존의 일들은 미뤄지기 일쑤였고, 그 일들을 하기 위해선 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 몸은 한계를 자주 맞이했다. 잇몸뼈가 녹아내리게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몸의 생존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이렇게 무리한다고? 얼른 잇몸뼈라도 녹여버려! 아니면 다른 거라도 녹여버리던가! 빌어먹을 통증을 통해 이 망할 몸의 주인에게 신호를 알려야 해. 너 쉬어야 한다고!!'
그러면 지금 당장 그만 두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장 그만둘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로 인턴 동기들 때문이었다. 힘든 상황 속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마음씨 좋은 두 명의 인턴동기들 덕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들이었지만,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콜을 하면 자기 일이 바쁘더라도 찾아와서 일을 도와주었고, 정말로 힘든 날에는 맛있는 것들을 사 먹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달래주었다. 내가 중간에 나가면 두 명의 인턴이 내 몫까지 일을 해야 했다. 6~7개월 밖에 안된 동기들이었지만 우리는 전우애로 똘똘 뭉쳐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고, 스트레스를 겪음으로 인해서 더 이상 근무하고 싶지가 않았다. 동기들과 오랜 이야기를 거듭한 끝에 인턴 기간 1년을 하고 인턴 수료를 하고 난 뒤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남아 있을 동기들에게 미안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둑 컴컴한 동굴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빛이 있는 곳까지 4~5개월이 남아 있었다. 현실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은 매일이 어두컴컴했고 질척 거렸다. 나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D-150, D-149... 프로필을 매일 바꾸며 그날 만을 기다렸다.
끓는 물을 계속 지켜보는 게 더 오래 걸리는 법이다. 시간이 참 더디게 갔고, 오히려 더 애가 탔다. 하루하루는 살아내야 했고 버텨나가야 했다. 나가기로 정한 다음의 병원생활은 이상하게 더 고통스러웠다.
그만둔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이런 경험들을 배워서 잘 적용해야지, 그리고 밑의 인턴들이 오면 잘 알려줘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가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에서는 그런 동력이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오늘 내가 처리해야 될 '일 덩어리' 로만 여겨졌다.
여기서 하는 모든 일들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일 처리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내 일이 아닌 것이 추가가 되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가기로 마음먹은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었다.
혹시나 누군가 나에게 뭐라고 하면 환자든, 보호자든, 과장이든, 윗년차 선배든 욕을 하고 난 뒤에 사표를 쓰고 시원하게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반복했었다. (물론 실제로 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가기로 마음먹기 전에는 몸이 힘들어서 잇몸이 녹아내렸고, 나가기로 결정한 뒤에도 끊임없이 고통받는 내가 있었다.
여느 때와 비슷하게 환자,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던 나날. 당직실 침대에 누워서 이리저리 휴대폰을 통해 인터넷 세상을 이리저리 유영한다. 그러다가 하나의 유튜브가 눈에 들어온다. 단정하게 승복을 입으신 한 스님이 화사하게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https://youtu.be/SPYAHEwsvv4? si=kCzTGYwzVvx7-Uqk
스님은 괴롭지 않은 삶, 마음의 작용 등에 대해서 설파하고 계셨다.
터널 끝에만 보였던 빛이 내 옆에도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이후로 나는 남은 인턴기간 법륜 스님의 유튜브에 중독되게 된다.
대문 사진은 내 치아 사진이다. 앞니 옆쪽에 신경치료를 한 흔적인 관이 보인다. 그 위쪽으로 염증을 없애는 약물이 들어갔는데, 그 약물이 뼈와 합쳐지면서 만들어져서, 동그란 흔적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