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드풀 Feb 20. 2024

인턴이 되었다. 괴로움이 온몸에 퍼졌다.

극심한 두통으로 잠에서 깬다. 


벼락이 양쪽 머리 옆 관자놀이를 관통한다. 찌릿찌릿함이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나타난다. 내 몸의 불쾌한 알림에 정신을 차린다. 한방 병원 당직실 안, 허리도 아픈 것을 보니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졌나 보다.  


옆에 동기 인턴 선생님이 코를 골며 자고 있다. 2인실 병실을 하나를 당직실로 만든 이 공간은 항상 물건들로 가득 차있다. 두꺼운 전공 책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있고, 여름옷과 겨울 옷은 분리되지 않고 침대 한편에 산처럼 올라와 있다. 그래도 결혼식이나, 갖춰 입고 나가야 할 반듯한 옷들은 옷걸이에 걸어져 있는데, 정글의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흩어져있었다. 당직실을 들어오면 그 옷들을 헤쳐나가는 게 일이었다.     


다시 왼쪽 관자놀이에서 벼락이 친다. 

 

'뭐지?' 


윗잇몸에서 욱신거림이 함께 몰려온다. 우측 앞니 윗잇몸이 가스가 오르는 것처럼 빵빵하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네 인턴 XXX입니다."

"선생님 빨리 오셔야 해요. 환자 상태가 너무 악화되었어요. 신경과 과장님도 지금 오고 계세요."


 원래 간호사 선생님들이 알려줄 때 환자 상태를 요약해서 알려준다. 그냥 오라는 말은 진짜 말 그대로 정말 환자 상태가 나쁘다는 소리다. 


클립보드에 현황판 하나와 볼펜 하나를 챙기고 뛰어나간다. 


내가 근무한 한방병원은 뇌졸중 환자를 주로 보는 곳이었다. 급성기 뇌졸중 환자들을 옆의 병원 신경과에서 급성기 치료를 하고 2~3주 이후 한방병원으로 재입원하는 식이었다. 이후 침, 뜸, 부항 치료를 통해 팔, 다리 관련 된 재활 치료를 시행한다. 병원과 병원 사이를 통창으로 된 유리다리가 급성기와 재활 하는기간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병실로 가서 내가 맡은 고령의 할아버지 환자를 다시 본다.


 "XXX 할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


 일단 환자의 지남력과 인지력이 어떤지 상태를 체크해본다. 


 "아까 전에 왔던 선생 아녀~ 왜 또 왔어? 근데 나 팔이 안 움직여"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 본다. 상태가 나빠졌는데 환자는 의외로 덤덤하다.  대화를 통해 지금 현재 상황을 물어본다. 인지력과 지남력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팔, 다리 운동을 체크해본다. 좌측의 편마비가 더 심해졌다. 중력에 저항하여 팔을 들어 올릴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들어 올리지 못한다. 뇌경색이 더 심해졌다는 징조다.


 "근데 선생~ 나 심장이 더 아파" 


환자는 왼쪽 가슴을 아파하며, 숨 쉬기가 버거워한다. 아주 나쁜 징조다. vital sign(생체 징후)를 체크하는 간호사는 혈압이 너무 높다며 다시 재고 있다. 180/100, 190/100 혈압은 치솟는다.


 입사한 지 7개월쯤 된 인턴은 이런 상황이 얼떨떨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클립보드에 현재 상황을 볼펜으로 적는다. 무언가를 적는다는 행위가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지만, 이 상황에서는 무언가라도 해야지만 내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때마침 가운을 다 잠그지도 않은 채 신경과 과장님이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다.


 나는 과장님께 시간에 환자 상태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보고 한다. 저녁 회진에는 Motor grade 3 정도로 팔을 들어 올릴 수 있었는데, 조금 전 연락을 받고 왔을 때는 꼬집는 감각에만 반응하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며, 현재 vital sign을 요약해서 알려드린다. 간호사 선생님의 최초 발견시간과 비교하여 현재 시간이 얼마 지났는지 알려드린다. 뇌경색 치료는 시간이 생명이다. 


 이와 더불어 심장 관련 징후와 과거 약물 목록들을 알려 드린다. 이 환자는 원래도 심장이 좋지 않았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신경과 과장님은 다 들은 후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결심한 듯 이야기한다. 


 "상태 악화 되었네요. 다시 신경과로 전과할게요, ICU(중환자실) 자리 있는지 봐주시고요, 그전에 제가 심장내과 과장님께 연락드려서 CAG(심장혈관 조영술) 지금 당장 하실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환자 보호자분께 이 상황을 다 전달드리고 오늘 돌아가실 수도 있으니 마음에 준비를 해달라고 해주세요." 


 한 사람의 생명이 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 과장님의 입에서 덤덤하게 나온다. 연륜과 냉철함이 한마디 말에 모두 들어있다.  


나는 데스크 컴퓨터로 가서 관련된 상황들을 차트로 남긴다. 그리고 한방병원 차트를 빼고 퇴원 절차를 진행하여 다시 신경과로 입원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전화를 걸어 보호자(아들)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요약해서 말씀드린다. 현재 한방 병원에서 퇴원 조치를 하고 ICU(중환자실)로 갈 예정이며, 심장내과를 통해 심장 시술을 받으실 수 있다는 말을 전한다. 보호자는 단 한마디도 없다. 아니 오히려 심드렁하다. 

그것을 믿을 수 없어서 그런 것인가? 혹은 양아들인가? 사이가 좋지 않았나?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단정적으로 했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 나오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제가 아버지 아까 저녁때 상태 봤는데, 그 정도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지금 가서 볼게요. 일단 제가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다시금 나는 신경과 과장님이 진료를 보았으며, 전과 비교해 보아서 뇌경색이 악화되었고, 심장 쪽도 문제가 있음을 알려드린다. 의료진의 판단하에 진짜 돌아가실 수 있는 상황임을 다시 한번 고지한다. 그러나 보호자는 다 듣고 한 마디만 한다. 


 "제가 지금 가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내 목소리 언성이 커질 수밖에 업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당신 아버지 지금 진짜 죽을 수도 있다니까요!" 


 내 목소리가 커지다 보니, 신경과 과장님이 전화 수화기를 뺐는다. 신앙이 독실하셔서 허허 웃으시던 과장님의 표정도 굳어 간다. 조용조용하게 이야기를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젓는다.


 "고집 불통이네요, 보호자 올 때까진 아무것도 못하겠습니다. 일단 기다리죠. 현재 상황 차트 정리하고 전산 정리만 완벽하게 해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내과 과장님도 데스크로 온다. 신경과 과장님이 인사를 하며 먼저 말을 건넨다. 


 "아이고 과장님 급하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뭐 하고 계셨어요"

 

 "아 조금 전까지 자다가 와서 괜찮습니다. 환자는 괜찮나요?" 


 "환자도 안 좋지만.... 보호자가 문제입니다."


 나는 심장내과 과장님께도 현재 상황을 알려드린다. 보호자분이 도무지 저희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가 올 때까지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했음을 알려드린다.


  심장내과 과장님과 신경과 과장님은 환자 상태에 대해서 논의하더니, 이 환자는 심장 쪽 문제가 더 응급하기에 신경과로 전과하는 것보다, 심장내과로 며칠간 전과하여 필요한 시술을 하고 경과를 본 뒤 신경과로 재 전과하기로 한다.  나는 다시 보호자가 오면 심장내과로 전달할 전산 정리를 해놓는다. 




 나를 포함하여 신경과 과장님, 심장내과 과장님은 환자 보호자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 서늘하고 뻘쭘한 공기를 신경과 과장님 톡톡 깬다.


 "자고 계셔서 피곤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허허"

 "아니에요, 괜챃습니다. 아 선생님 요새 아기는 잘 있나요? 힘드시죠?"


신경과 과장님은 얼마 전에 득녀하셨다. 


 "말도 마세요. 환자 보는 게 더 좋습니다. 허허허허허, 아기가 밤에 깨서 달래는 게 더 힘들어요."

 "맞아요 그때는 더 그렇더라고요. 차라리 당직이 더 나은 편입니다. "

 "저는 출근하고 와이프는 쉬니까, 와이프가 저보고 더 자라고 해서 아기 울 때 몇 번 안 갔더니... 와이프가 엉덩이를 때리더라고요. 딸이 저렇게 우는데 진짜 지금 잠이 오냐고 허허허 허. 나는 자기가 더 자라고 해서 잤을 뿐인데....."

 "그때 아내분 말 다 들으시면 안돼요, 두고두고 이야기합니다."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저도 나이가 꽤 많이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나아서 얼마나 피곤한지.... 인턴 선생님은 하루라도 빨리 젊을 때 결혼하세요"

 "맞아요. 선생님은 우리처럼 40되어서 아이 낳지 말고 얼른 결혼해서 아이 낳으세요 허허허"

 "네 알겠습니다."


 동이 트기 전 아주 깊은 새벽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신경과 과장님도 이렇게 심장내과 과장님과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게 처음인 듯하다. 전산상으로만 대화를 나누었지 타과와 이야기 나눌 일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태풍의 눈 안에 있는 것 같다. 아까 전의 폭풍은 잠잠해지고, 팽팽한 긴장감은 풀어진다. 두 분의 이야기가 자장가처럼 노곤노곤하게 들려온다.


 내 고개는 점점 수그려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찰나..... 보호자가 왔다. 보호자에게 상태를 설명드리려고 하나 보호자는 말을 끊고, 자기가 아버지 상태를 눈으로 봐야겠다고 한다. 자기 아버지 상태는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해야 했다. 


 심장내과 과장님이 따로 보호자를 불러 현재 상태가 위중하고 응급한 상황임을 알린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보호자는 결심을 내린다.


 "선생님들 말 대로 할게요" 


이 말을 듣는 것이 참 길었다. 드디어 됐다. 고여있던 돌을 빼서 막힌 물줄기가 틀어지는 것 같다. 나는 그 말에 맞추어서 퇴원 정리를 하고 심장내과로 협진을 내고 전과를 한다. 심장내과 과장님이 차트상으로 입원을 받는다. 그리고 한방 내과 과장님께도 이 같은 상황을 인계해 놓는다. 


심장내과로 전과가 되자마자 한숨이 쉬어진다. 어느 정도 내 책임에서 벗어났다는 것일까. 온몸에 긴장이 풀어진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눈 좀 붙이세요."

 

 신경과 과장님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지나간다. 나는 다시 당직실안으로 터덕터덕 걸어간다. 거미줄과 같은 옷들을 지나 침대에 눕는다.


 실상 인턴이 하는 일은 과장님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되었다. 신경과 과장님이 모든 일을 처리했고 나는 뒤에 맞추어서 전산상의 처리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스트레스받고 힘든 것일까.  






그때 다시 벼락이 치는 통증이 머리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동시에  윗잇몸에서 욱신욱신 거리는 듯한 통증도 함께 밀려온다. 독가스가 내 잇몸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숨을 쉴 때마다 잇몸이 빵빵해져 온다. 타이레놀을 입안에 털어놓고 잠을 청한다. 통증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는 왜 힘든 인턴 생활을 굳이 지원한 거지? 나는 이런 수련 생활을 진짜로 원했던 게 맞나? 


 한의대를 졸업한 젊은 남자들은 대개 졸업 후 공보의 (군복무)를 간다. 그리고 군복무 하며 천천히 공부를 하고 취직자리를 알아본다. 학생 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같은 경우, 군복무를 미뤄두고 페이닥터 생활을 한다. 혹은 배짱이 두둑하고 학부생 때 공부를 많이 해서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바로 개원을 하기도 한다.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거나, 다른 한방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밟는다. 이때 한방병원은 대개 근골격계 관련 한방병원이 많다. 

 

 한의대 졸업 이후 어느 방향으로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한방병원 인턴에 지원하고 입사하게 된다. 간절히 바라던 한의대였고, 간절히 바라던 한의사가 되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기들보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나는 배짱이 두둑하거나 깡이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와중에, 다른 한방병원보다 힘들지만, 양, 한방 협진이 아주 이루어진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특히 뇌졸중 관련 질환을 있는 지금 이 병원(뇌졸중 전문 지정 한방병원)을 알아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그럼 내가 앞으로 뇌경색, 뇌졸중 재활 관련 분야에 뜻이 있어서 간 거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폼이 나 보여서 그랬다. '


 양방적인 내용을 잘 알아서 뇌경색에서 신경과에서 어떻게 치료를 하고 처치 한 뒤 한방적으로는 재활을 어떻게 접근하는지, 이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게 나에게 '폼'이 나 보였다. 동기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폼'나 보이는 것이 나에겐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신경과 과장님과 이런 위중한 환자를 두고 이렇게 논의한 적이 있으며 이런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고 싶었기에 이 병원을 선택했고 수련을 지원한 것이었다. 내 비슷한 동기들에게 없는 독특한 경험을 가지는 것. 이것이 내 선택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이야기들은 다른 종합병원의 인턴 선생님이나, 뇌졸중 전문 신경과 과장님, 뇌졸중 전문으로 재활을 하고 있는 한의사 선생님들에게 아주 작은 일중에 하나 일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데, 나는 빈수레에다가 종을 달고 흔들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나 보다. 


 공보의는 노는 것 같아서 싫고 

 페이닥터나 개원은 깡이 없어서 못했고 

 그냥 한방병원은 남들이랑 비슷할 것 같아서 못 가겠고 

 그래서 선택한 뇌졸중 전문 한방병원.

 

 나는 내가 좋다는 대로 선택을 다하고 있었는데, 괴로움은 지속되고, 괴로움이 정신을 넘어 몸까지 전파되고 있었다. 

 

  선택을 내리는 판단이 오직 남의 시선만 의식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더욱 문제는 그게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인턴을 했는데도 괴로움이 지속되었다. 


 

 

 



 


 


   


 


 


 

 



 

 



                    

이전 06화 라코스테 입으면 괴로움이 없어질 줄 알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