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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풀 Feb 13. 2024

라코스테 입으면 괴로움이 없어질 줄 알았다.

"와 이 가디건 예쁘다."

"오 이 악어 마크.. 라코스테일 텐데 비싼 거 아냐?" 

"오 잘 어울린다."


'응?'


뭐지 이 반응은. 


친형이 가디건 하나를 사고 얼마간 입다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내가 입게 된 검정 가디건 하나.


라코스테라는 브래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동기들에게 이러한 반응을 접하게 되니 얼떨떨했다.


더군다나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성실하다. 공부 잘한다. 착하다는 말만 주로 들었던 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퍼 마시듯,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의 목구멍에 물줄기들이 쉼 없이 들어온다.


더불어서 친구들이 보는 은밀하게 부러운 시선. 옷에 만족스러운 나와 그에 대한 반응이 섞여 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그들의 반응이 '종'인 것처럼 반응 했다. 


그 후 라코스테 브랜드와 가격에 대해서 공부했다. 용돈을 모아서 옷을 하나씩 샀고, 부모님에게 졸라서 옷을 하나씩 샀다. 그리고 추가되는 보상들..


"또 라코스테야?"

"우와 이 옷도 예쁘네"


물론 자주 옷을 입다 보니 아니꼽게 보는 반응도 있었다.


"야 근데 이거 마크 떼면 유니클로에서 파는 거랑 똑같은 거 아냐?"

"이 초록색 악어 모양 하나가 20만 원쯤 하는 거라고 봐야 하나? 하하"


이런 반응이 나올 때면, 내가 라코스테라서 고른 게 아니라 이 옷의 촉감과 질감이며, 내가 입은 핏이 얼마나 예뻤는 지를 침 튀기며 이야기했다.  


글을 쓰면서도 이때를 돌이켜 보면 상당히 부끄럽다. 실은 라코스테라서, 초록색 악어라서 이 옷을 골랐다. 옷이 예쁜 게 아니라, 라코스테 초록색 마크를 보고 당신들이 보일 반응을 나는 즐기는 것이며, 은근한 시기, 은근한 질투, 은근한 부러움 등 때문에 나는 이 옷을 산 것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기본적인 여름 티부터 겨울 파카까지 라코스테 옷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나는 초록색 악어 옷들이 이만큼이나 많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이때의 나는 부자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대놓고 보이기는 싫었고, 티 안 나게 은근히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티 안나는 지점들을 친구들이 알아봐 주길 원했고, 그 애매모호한 작은 지점들에 파블로프의 종소리들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그렇듯 임계점들은 존재한다. 


라코스테가 나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자, 친구들의 반응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라코스테를 입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나의 도파민을 더 분출하기 위해선 새로운 브랜드가 필요했는데, 라코스테를 입는 것만으로도 재정상태는 힘들었고, 그 위의 브랜드들은 가격이 상상 초월이었다.  


새로운 도파민을 갈구하며 의무감으로 라코스테 매장에 들락거리는 어느 날, 나는 빨간색 야구점퍼 옷을 하나 산다. 이때 옷을 사 들고 와서 거울을 본 나 자신이 상당히 어색했고 다른 사람 같았다. 


나는 빨간색 옷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옷장을 살펴보아도 빨간색 옷이 없다. 애교로 봐줄 수 있는 것이 핑크인데, 빨간색은 정말 싫어한다. 그런데 그 싫어하는 옷을 초록색 악어가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비싼 돈을 주고 사 왔다. 단 하나의 이유, 남들에게 보일 색다른 라코스테 옷이 필요해서였다. 



 내가 싫어하지만 남들에게 보일 모습이 중요해서 빨간색 라코스테 옷을 입고 등교하는 가을의 어느 날. 교실 한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아 너 또 양말 펑크 났는데 좀 안 사냐? 내가 한 10켤레 사줄까?"

 "아 내버려 둬~~~ 양말이야 뭐 대충 수선해 가지고 입으면 되지.."

 "부모님이 둘 다 의사에 병원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추레하게 입고 다녀? 부모님이 속상해하시겠다. "

 "우리 부모님도 양말 다 꿰매서 입고 사셔, 나는 양말 사서 아낄 돈으로 형이랑 맛있는 안주에 술 먹으려고 그러지~"

  

 학번 내 부자라고 소문난 친구 부모님이 둘 다 의사이시면서, 병원 건물이 있는 친구였다. 이 친구는 자기한테 입는 옷 보다, 사람들을 좋아했는데, 술자리 계산을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는 추억 쌓는 것을 인생의 모토로 여겼다. 수업을 째고 즉흥 술자리는 기본이었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들 몇 명을 모아 50KM쯤을 걸어서 갔다 오기도 했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으니 이 친구는 재밌는 추억이잖아 한마디뿐이었다. ㅎㅎ) 나와도 즉흥여행으로 흑산도와 홍도도 다녀왔다. 이 친구와 즉흥으로 다녀왔던 흑산도, 홍도 여행은 평생에 잊지 못한다. 


이렇게 학번 모든 사람들과, 술자리든, 여행이든 재미있는 경험을 쌓는데 자기의 모든 돈을 쓰고, 양말은 꿰매입고 옷은 신경 안쓰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고, 

한쪽에선 부자 흉내를 내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빨간색 옷에 초록색 악어가 그려진 옷을 억지로 입고 등교하는 내가 있었다. 



라코스테도 내 괴로움을 없애주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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