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운전하기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by 조이홍

1종 보통 면허로 사고 없이 20년 이상을 운전해 왔다. 구불구불한 강원도 산길에서 시작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서울 강남 도로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철없을 때에는 (첫차 엑센트로) 스피드를 즐겼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는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어디에서건 운전만큼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제주의 도로에서 몇 번이나 당황한 적이 있다. 사실 당황이라는 표현도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말은 아니다. 차라리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고나 할까?


첫 번째 경험은 제주 한달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아내가 애월에 있는 그림책방에서 그림을 배우기로 되어 있어 오랜만에 (아내의 명령, 아니 제안으로...) 북쪽 제주 구경도 할 겸 모두 따라나섰다. 수업이 밤 9시쯤 끝나서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최적길을 선택해 집으로 향했다. 한참 큰 도로(아마도 1135 지방도)로 오고 있는데 갑자기 출구로 나가라는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녀의 말에 따라 운전대를 돌렸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길은 제2 산록도로 (1115 지방도)였다. 물론 처음 지나가는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날 밤안개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벌벌 떨게 했다. (물론 신계에 속한 한 분은 아주 곤히 주무시고 계셨지만) 보통 이렇게 늦은 시간이면 적당히 배가 부른 준, 큐 형제는 거의 정신을 잃고 곯아떨어지는데 이 날 만큼은 그 어떤 순간보다 말짱하게 깨어 있었다. 아빠가 혹시라도 졸지는 않을까 계속 말을 걸었다. 가시거리가 1m 정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깔려있는 데다가 어두운 밤이라 거의 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가로등은 없었다. 짙은 안개는 이미 대관령이나 미시령 고개를 넘어가면서 충분히 경험한 바 있지만 제주의 밤안개는 차원이 달랐다. 결국 차는 거북이걸음, 아니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보다 느리게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따라오는 차가 생기면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이런 날씨가 익숙한 도민 차들은 비상등을 켜고 비교적 잘 달리는 것이었다. 편도 1차선 도로라 마땅히 피할 곳도 없어 정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히 중간에 추월 가능한 도로가 나왔으니 망정이지 도로 한가운데서 기차를 만들 뻔했다. 그렇게 4~50여분 기어가다 보니 안개가 옅어지고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면서 가장 집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얼마나 긴장하고 운전을 했는지 온 몸에 땀이 흥건해 옷이 다 젖을 정도였다. 오늘 그림 수업에 따라나서지 않고 아내 혼자 갔다 왔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나중에 제주에 살고 있는 분께 들었는데 이런 날에는 제주 사람도 조금 돌아가는 해안도로를 이용한다고 한다. 제주는 때에 따라 최적의 길로만 안내하는 내비게이션만 믿고 운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밤안개는 날씨와 상관없이 기습적으로 찾아올 수 있으니 먼 거리 (1시간 이상) 야간 운전은 가능한 피하면 좋을 것 같다.


제주에서 가장 많이 이용한 도로는 아마도 제1우회도로 (1132 지방도)가 아닌가 싶다. 위미리에 있는 제주 집과 서귀포 시내는 거의 매일 왕복했는데 그때마다 이 도로를 이용했다. 대형마트, 한살림, 낚시용품점, 병원, 단골 식당이 서귀포 시내에 있는데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매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이 길에서 또 한 번 매우 당황스러운 순간을 만났다. 폭우 때문이었다. 제주 날씨의 변화무쌍함은 익히 알고 있어 비 예보가 있는 날에도 종종 놀러 나가곤 했다. 가는 길에 비가 내려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해가 쨍쨍했다. 그날도 날씨가 좋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외출을 했는데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와이퍼를 제일 빠른 속도로 올려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내리는 정도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차를 길가에 세웠다. 도저히 운전을 계속할 상황이 아니었다. 20년 운전 경력 중 비 때문에 차를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서있다 보니 비가 좀 그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말고는 멈춘 차가 없었다. 와이퍼로 아무리 닦아내도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제주도민은 이런 상황에도 익숙하구나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잠시 비를 피해 멈춰서 있을 수 있는 큰 도로에서 이런 상황을 만난 것이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1100 도로 (1139 지방도)나 5.16 도로 (1131 지방도), 산간도로에서 만났다면 아주 난감할 뻔했다. 뭍사람에게 제주의 날씨는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나 보다. 그러니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대해야 했는데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섣부르게 판단한 것이 실수였다. 아무튼 그날은 계속 비가 올 것 같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구름 사이로 해님이 얼굴을 드러냈다. 역시 자연은 위대하구나!


제주에서 운전하는 것이 어렵다거나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섬이라는 지형적인 특징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옛 직장 후배가 제주 사람은 차로 1시간 거리는 멀다고 생각해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 거리였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제주에서도 관광지나 해수욕장에 가려면 왕복 2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이런 아찔한 순간들을 만나고 보니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육지 운전자가 제주에서 운전하려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좋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