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벌레를 대하는 우리 가족의 자세는 각양각색이다. 준은 벌레라면 기겁을 한다. 작은 날파리 한 마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니 잡는 것은 어림도 없다. 큐는 자칭 곤충 박사라 일단 대상을 관찰, 파악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종(種) 일 경우 채집통이든 유리병이든 잡아두고 본다. 좋아하지 않는 종일 경우에는 준과 다르지 않다. 나는 일단 뒤로 빠진다. 벌레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징그럽다고 느낄 뿐이다. 이럴 때 해결사는 역시 아내다. 휴지 두 장 꺼내 벌레를 잡아 돌돌 만 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거나 즉살시킨다. 그리고 이때마다 한 마디씩 꼭 한다. 집 안에 남자가 셋이나 있는데 쯧쯧쯧…….
제주 한달살이를 계획하고 집을 구할 때 이미 제주 생활을 해 본 선배님들의 후기를 보니 벌레에 대한 얘기가 종종 보였다. 특히 마당이나 정원이 있는 집은 벌레와 함께 사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주 생활의 로망 중 하나가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이었는데 좀 난감했다. (정작 바비큐 파티는 한 번도 못했지만.) 하지만 우리에게는 벌레 무적 엄마가 있으니 정원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작은 정원이 있는 예쁜 2층 집을 구하게 되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이라서 그런지 벌레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개미 몇 마리와 방충망이 있음에도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는 잠자리, 벌들은 우리의 친구이지 벌레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벌레에 대해 무감각해질 때쯤 제주가 그렇게 쉬워 보이냐고 으름장이라도 놓듯 그 녀석이 나타났다.
우리는 평소에는 1층에서 생활을 하고, 잠은 모두 2층에서 잤다. 1층 방에 아이들 2층 침대가 있었지만 둘만 자기에는 무섭다고 해서 모두 같이 자기로 했다. 그날도 잠을 자기 위해 함께 2층으로 올라가 불을 켰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 큐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깔아 놓은 이불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 문 사이로 숨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소리치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 나는 언제 문 밖에 있었지? 하지만 신계에 속해 있는 아내는 역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침대에 누웠다. 자기는 이미 바퀴벌레와 몇 차례 마주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기가 좀 작아야 무시하고 잠을 자지, 그냥 둘 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우리 셋은 아내한테 잡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아내는 잡고 싶어도 이미 사라져 잡을 수 없으니 소란 피우지 말고 그냥 와서 자라고 야단을 쳤다. 그 날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 녀석과 만난 후 이상하게 잘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집안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 녀석과 그 녀석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처음에는 약간 겁을 먹었지만 워낙 그 녀석의 충격이 컸던지라 다른 조무래기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벌레들과 동거를 하게 되었다. TV를 볼 때나 식사를 할 때 나타나는 놈들은 휴지 한 장으로 해결을 했다. 가능하면 죽이지 않고 창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하지만 그 녀석만큼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누구는 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다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쳐 그냥 뛰쳐나오기까지 했다. 여전히 문을 열다 그 녀석과 마주치면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그 녀석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매일 마주치는 것은 아니어서 언제 또 나타나서 놀라게 할지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며칠째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아내한테 지나가는 말로 요즘 그 녀석이 안 보인다고 했더니 자기가 현관 앞에서 마주쳐 생수통으로 즉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착한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현관 앞에서 생수통에 깔려 죽어있는 그 녀석을 직접 확인했다. 차마 아내도 그걸 치울 용기까지는 없었나 보다. 그렇게 그 녀석을 보내고 평화가 찾아왔다. 이후에도 그 녀석의 친구들은 가끔 눈에 띄었지만 완전히 무심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그렇게 한 달간 벌레와 사는 법을 온몸으로 배웠다. 사실 나는 시골 출신이라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서울이 고향인 아내는 내가 시골 출신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벌레와 가깝게 지내며 살았는데 어느새 도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제주는 이런 나를 어린 시절의 나로 돌려주었다. 적어도 벌레를 대하는 자세만큼은 그렇다는 것이다.
※벌레란?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