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주!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by 조이홍

제주 한달살이의 마지막 날이 왔다. 한 달 동안 일, 가사노동, 공부, 숙제 등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아보기로 작정하고 제주에 왔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생활했다. 언제 다시 이런 꿈같은 시간을 갖게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후회가 남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놀았다. 6학년인 준은 여름 방학 때 중학교 수학이라도 선행을 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학교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는 큐는 학원에라도 보내야 하나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제주를 선택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아이들 삶에 제주에서의 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간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 쉼표 하나를 찍고 싶었다. 물론 20년간 열심히 회사생활을 한 나와 17년간 우리의 소중한 가정을 맡아 지휘, 감독해 준 아내에게도 보상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제주에 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신나게 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제주 한달살이를 준비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반도 가지 못했다. 꼭 가고 싶었던 오름들 중 대부분은 가지 못했다. 숲이 가장 아름답다는 저지오름, 아무것도 없어 더 매력적인 용눈이오름, 해맞이와 해넘이가 모두 예쁜 다랑쉬오름, 전망 좋은 군산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만나지 못했다. 황우지 해변과 도리빨에서 꼭 스노클링에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찾아가 경치만 감상해야 했다. 금릉과 협재 앞에 한가로이 떠있던 비양도, 호종단의 배가 침몰했다는 차귀도도 이번에는 꼭 한번 찾아가고 싶었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준, 큐 형제와 아내에게 마라도 명물 짜장을 맛보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쉬었다. 신비로운 천년의 숲 비자림, 눈앞에 두고 가지 못한 수월봉 지질공원도 마지막 날에 더 생각났다. 하지만 그토록 무더운 날씨도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졌다. 이제 제주와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제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순간을 공교롭게도 제주인의 시작점이기도 한 삼성혈에서 맞게 되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발상지로 고씨, 양씨, 부씨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4300년 전 한라산의 신령한 화기가 이곳에 삼신인을 솟아나게 했는데 이 신인들을 을나(乙那)라 하고 탐라국을 개국했다. 수렵생활을 하던 삼신인은 오곡 종자와 가축을 가지고 온 벽랑국 삼공주와 혼인하면서 인간으로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로써 농경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삼공주가 타고 온 자줏빛 함이 도착한 연혼포,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인 혼인지, 신방을 꾸몄던 신방굴의 자취가 성산읍 온평리에 남아 있다. 제주의 전설의 체계적이고 사실적이기도 하다. 1699년부터 삼을나의 위패가 봉안된 삼성전에서 봄(4월 10일)과 가을(10월 10일)에 후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또 삼을나의 탐라개벽을 기려 1526년부터 매년 12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이렇게 삼성혈 전설은 제주인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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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내가 삼성혈을 마지막으로 찾은 이유는 이곳의 나무들 때문이다. 수령이 500년 이상 된 나무가 많은데 이런 나무에서는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제주를 떠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기에 이곳만 한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머물렀지만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놀았는데 그래도 부족했나 보다. 겨울의 제주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안녕,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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