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Japan 운동 이후 우리 집에서 사라진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합리적인 가격과 몸에 딱 맞는 편안함으로 수년간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아온 유니클로와 부드러운 거품과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 제가 가장 좋아하던 맥주 아사히 슈퍼드라이입니다.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시원한 아사히 슈퍼드라이 한 잔은 저와 아내의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즐거움을 끊어내는데 꽤나 고전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들을, 우리의 자존감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No Japan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벌써 5년이 되어갑니다. 유니클로와 아사히 슈퍼드라이 없이 제법 잘 버텼습니다. 그런데 일상에 살짝 균열이 생겼습니다. 출근 복장이 너무 후줄근하다고 아내가 유니클로 남방셔츠 두 벌을 사 왔습니다. 빈 손으로 나왔지만 사실 그 며칠 전에 외근 나갔다가 유니클로 매장에 5년 만에 들른 사람은 저였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인가 봅니다. 같은 가격대에 그만큼 편한 옷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5년이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일본 정부를 옹호하는 우리 정부 덕에 논리 회로에 이상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생선구이를 무척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꾸준히 먹게 될 수산물 먹거리가 걱정되어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한지 궁금했습니다. 부모로서 당연한 궁금증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를 대신해 우리 정부가 괜찮다는 캠페인을 합니다. 우리 정부는 우리 민심을 대변해 일본 정부에 질문해야 합니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정말 안전한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어렵습니다.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 캔맥주가 품귀 현상입니다. 한 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 대기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나마도 준비된 수량이 2시간 만에 완판되었습니다. 여전히 어느 할인매장에, 어느 편의점에 이 제품이 있으면 사람들이 몰립니다.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잠들었던 미각이 깨어났습니다. 부드러운 거품과 담백하고 알싸한 맛이 궁금해졌습니다. 혼자 No Japan, No Japan 외치면 뭐 해, 지금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데,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시원한 아사히 슈퍼드라이 한 잔이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8월 14일, 내일은 8월 15일 78주년 광복절입니다. 도저히 종 잡을 수 없는 세상도 저란 사람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값싸고 편안해서
우리 가족이 사랑한 유니클로
엄마는 이제 한 벌도 사지 않는다.
시원하고 담백하다며
퇴근하면 아빠 앞에 놓인 일본 맥주
더 이상 냉장고에서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사과를 원했을 뿐인데
염치를 모르는 일본은 복수를 택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No Japan을 외쳤다.
일본 제품은 사지 않는다.
일본 여행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은 일본 정부가 했는데
일본 국민이 고생한다.
일본인 판사 앞에서
안중근 의사가 외쳤던 동양 평화는
초등학생인 내가 슬쩍 들어도 이해되는데
일본의 높은 정치인 아저씨들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평화는 정말 어렵지 않은데.
사과도 정말 어렵지 않은데….
둘째 아이가 '안중근의사 순국 추모 전국 학생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던 시, '평화 어렵지 않은데'를 다시 읽어 봅니다. 제 손에는 제주 꺼멍 에일이 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