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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Sep 23. 2024

아내의 첫 번째 개인전

'철인 49호'에 초대합니다. 

첫 번째 개인전 일정이 확정된 날부터 아내는 더 까칠해졌습니다. 본디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가까이 가기만 해도 콕 찔릴 만큼 뾰족해졌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들지 못합니다. 모처럼 귀한 소고기 등심을 구웠는데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밤늦도록 TV 시청하는 눈치 없는 남편 때문에 더욱 날카로워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습니다. 숨 죽이고 지켜보는 수밖에요. "이것 좀 도와줘." 부탁할 때 후다닥 처리하는 게 고작입니다. 아, 설거지와 청소도요. 아무튼 아내만큼 저도 이번 개인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역시 브런치에 짧은 글 하나 올릴 때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하니까요. 당연합니다. 제 글을 누군가가 읽으니까요. '아, 이 글들이 그렇게 고민하고 썼다고?' 속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재주가 없는 터라 글 몇 줄에 오롯이 하루를 쏟아부은 날도 있습니다. 대범하지 못한 탓도 있겠으나 창작자란 무릇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독자에 대한 예의일 테고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첫 번째 개인전이니 온 신경이 거기에 몰려 있을 테지요. 일정이 바로 코앞인데 어떤 작품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그린다고도 합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을 테지요. 햄버거 하나로 대충 때우고 캔버스 앞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번 연휴에도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화실에서 보냈습니다. 피, 땀, 눈물의 결정이 부디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화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요. 


개인전 제목이 왜 '철인 49호'인지 궁금하신가요? 포스터에 등장한 로봇은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아내 작품의 소재는 '수영'입니다. 오래된 독자님들은 아실 테지만, 아내는 거의 20여 년을 수영했고, 지난해부터 '수영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번 개인전은 수영이라는 운동을 통해 알에서 깨어난 '인간 정영주'와 만나는 자리입니다.  

첫 번째 개인전의 제목을 ‘철인 49호’라고 지었습니다.
철인은 몸이 무쇠와 같이 강한 사람이라는 鐵人의 의미이자,
철학에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는 哲人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팔로 물을 제치지 않으면, 부지런히 발차기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0여 년 수영 인생을 통해 새삼 깨달은 삶의 지혜입니다. 

 

아내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정신도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림 볼 줄 모르는 저도 아내 그림 앞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쩌면 '특수 관계인'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람들이 왜 미술 전시회에 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은 타이레놀보다 더 효과 높은 두통약이 되기도 합니다. 아내가 제게 홍보 역할을 부여했지만, 이 글은 PPL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저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운털 박힌 남편보단 사랑받는 남편이 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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